총을 들었던 여전사 니이지야마에
총을 들었던 아이즈의 여전사(女戰士) 니이지마야에(新島八重)
에도말기부터 쇼와까지 가장 치열하게 살다간 일본여성을 꼽자면 단연 니이지마야에일 것이다.
1845년에 태어난 니이지마야에(新島八重)는 어릴 때부터 아이즈번의 포술사범인 부친 야마모토곤파치(山本権八)와 병학과 난학에 능했던 오빠 야마모토가쿠마(山本覚馬)에게 총 쏘는 법을 배웠다. 총기분해와 조립을 할 수 있었고 체력도 좋아 13살 때 60킬로그램에 이르는 쌀가마니를 들 정도였으며 남성처럼 성격도 활달한 여장부였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즈번에 충성을 다하고,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리고 훌륭하게 죽는 것을 배우며 성장한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신식 총기와 탄환이 대량으로 유입되는데 야마모토가(家)는 당시로서는 포술의 최첨단으로 데지마의 네덜란드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다카지마류포술(高島流砲術)을 습득해 총기를 수월하게 다뤘다고 한다. 아이즈번(会津藩)을 끝까지 지키려 분투하다 집단 자결한 뱍코다이(白虎隊)소년병에게도 포술지도도 했었다.
대정봉환으로 권력이 토쿠가와 막부에서 천황에 반납되자 토쿠가와가(家)에 충성해왔던 아이즈번(会津藩)은 조적(朝敵ちょうてき)으로 몰리게 되고 쬬슈, 사쯔마가 주축인 신정부군은 아이즈번을 공격한다. 이렇게 벌어진 전쟁이 보신전쟁(戊辰戦争)의 일환인 아이즈전쟁이다. 아이즈번의 무사들은 쯔루가성(鶴ヶ城つるがじょう 통상적으로 쯔루가성은 다른 지역에도 동명의 성이 있어서 이를 구별하기 위해 아이즈와카마쓰죠会津若松城 라고도 함)에서 농성을 하며 한달 동안 격렬하게 저항한다.
니이지마야에는 보신전쟁초기의 전투인 토바후시미전투(鳥羽・伏見の戦い)에서 전사한 동생이 유품으로 남긴 옷을 입고 신식 7연발 스펜서 총을 움켜쥐고 적들과 싸운다. 포술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총기부대를 직접지휘하며 쯔루가성(鶴ヶ城つるがじょう)의 산노마루(三の丸세번째 방어진)의 총안(銃眼)을 통해 적에게 사격을 했다. 니이지마야에는 이밖에도 병사들의 밥을 짓고 포탄을 만들며 부상자들을 간호하는 여성의 몫도 다했다. 이 때가 23살이었고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나들었다.
쯔루가성 공방은 하루 2천발의 총탄이 빗발치는 격전이었는데 니이지마야에는 밤마다 성을 빠져나가 기습공격을 하고 적 지휘관들을 저격했다. 특히 훗날 일로전쟁의 만주군총사령관이 된 오오야마이와오(大山巌) 원수가 이 전투에 사쓰마군 포병대장으로 참전했는데 쯔루가성에서 날아온 총탄에 우측대퇴부를 맞고 졸도해 후방으로 이송됐다. 니이지마야에가 총포부대를 지휘했고 스스로 명사수였던 만큼 오오야마이와오가 그녀에게 저격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이즈번은 신정부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결국 백기를 내걸고 투항했다. 니이지마야에는 훗날 분투에도 불구하고 백기를 내건 일을 이를 갈며 분개(切歯扼腕せっしやくわん)했다고 회고했다.
전쟁이 끝나자 아이즈번은 멸번(滅藩)처분을 받았다. 무사들은 혼슈북부나 홋카이도를 개척하라는 명령을 받고 강제로 이주당해 고향을 등졌다. 그녀는 오빠인 야마모토가쿠마가 쿄토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이주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에도막부에서 시대가 메이지로 바뀌듯 그녀의 생활도 바뀐다. 영어를 배우고 서양식 복장에 모자와 구두를 착용한다. 또 서구식의 남녀평등의 이상을 가지고 미국유학에서 귀국한 니이지마죠(新島襄)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의 전신인 도시샤영어학교(同志社英學校)를 설립한다. 그녀는 죠(襄)와 교토에서는 최초로 기독교식 결혼을 하는데 니이지마야에로서는 재혼이었다. 야에는 21살 때 카와사키쇼노스케(川崎尚之助)란 이와 결혼한 적이 있지만 전쟁의 와중에 헤어진다.
남존여비사상이 여전이 강했던 메이지시대에 그녀는 남편을 서구식으로 ‘죠(襄)’라고 불렀으며 인력거를 탈 때도 ‘레이디 퍼스트’라고 하는 남편 말에 따라 먼저 탔다. 미국에 밀항하고 공부해 독실한 크리스천이 됐던 니이지마죠는 인습을 타파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아내를 ‘핸섬 우먼’(ハンサム・ウーマン)이라 칭찬하고 격려했다.
다소곳한 일본식 기모노를 벗어 던지고 모던한 서구식 여성으로 변한 니이지마야에에게 당시 보수적인 인사들은 그녀에게 일본 전설속에 나오는 요괴 ‘누에(鵺ぬえ사람 얼굴에 사자의 몸을 한 상상속의 요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니이지마야에는 남편 니이지마죠가 일찍 세상을 뜨자 일본적십자사에 들어가 일청, 일로전쟁에 간호사로 종군한다. 그 뒤에도 여러 사회복지 활동에 힘을 기울여 일본의 ‘나이팅케일’로 불린다. 또 그 공적을 인정받아 황족이외의 여성으로는 최초로 서훈을 받는다. 에도와 메이지, 다이쇼, 쇼와에 걸쳐 격동적인 삶을 살며 만년에는 다도에 열중했던 니이지마야에는 1932년 87세로 도시샤묘지에 영면한다.
아이즈의 여전사 내지 에도말기의 잔다르크, 도시샤 대학의 창설자, 일본의 나이팅게일 등 여러 수식어로 불리며 강인하고도 불굴의 삶을 살았던 니이지마야에(新島八重)의 이야기는 2013년 NHK에서 야에노사쿠라(八重の桜 やえのさくら)란 제목의 대하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연중 계속 방송되는 장편 대하드라마의 역사인물로 NHK가 니이지마야에(新島八重)를 선정한 것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초토화된 후쿠시마현 주민들에게 재난의 역경을 딛고 일어나라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다. 여걸 니이지마야에(新島八重)의 출신지인 아이즈번이 현재의 후쿠시마현 일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