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사이판전투와 도조 내각의 붕괴

도보사랑 2023. 12. 9. 23:09

사이판전투와 도조 내각의 붕괴

"도조 수상은 필리핀 해전과 사이판 싸움에서의 참패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질 책임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히로히토 천황도 생각이 같으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천황이 자신에대한 신임을 공개적으로 표해 주기를 기대했다.

천황의 생각은 달랐다. 사이판에서 8만의 병력이 옥쇄했으면 책임이 무거웠다. 도조가 육군참모총장과 육군대신을 겸직했으므로, 도조 자신이 책임을 피할 길이 없었다. 천황은 도조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다.

도조는 천황의 공개적 지지를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자, 내각을 일부 개편하겠다는 뜻을 천황에게 상주했다. 그러나 도조에게 반대하는 원로들은 히로히토에게 부분 개각을 허용하지 말라고 건의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도조는 천황에게 사임의 뜻을 상주했다. 그리고 1944년 7월 18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사이판 싸움'에서 일본군 전원이 옥쇄했다고 발표했다.

'절대국방선'의 요충인 사이판이 미군에게 함락되었으므로 일본 본토가 위협을 받게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물로 씌어진 이름' 제3권 125페이지)

전쟁이나 평시의 국사(國事)에서 내각이 그 엄중한 결과에대한 책임을 지는 방법은 과거나 지금 모두 동일한 것 같다.

사람을 쓴다는 것은 책임을 지게하는 것. 그 책임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는 인물의 크기에따라 좌우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도 결정된다. 관동군 출신으로서 대부대 지휘경험이 없었던 도조는 내각수상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한 대함대 선봉장이었던 나구모중장은 사이판에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한국군중에도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군인들도 있다.

군인이 목숨을 쉬이 버리는 것에대한 여러 비판적 평가가 있지만 목숨은 내놓지 못 할 망정 부분 개각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도조 히데끼란 인물에 대해선 결코 좋은 평가를 줄 수 없다. 미군정은 자살하려던 도조를 살려서 기어코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했다.

사람을 잘 못 쓰고, 패전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지않고 숨기는 것,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했던 이유중 하나이다. 한국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사람을 잘 못 쓰고 각종 조작으로 진실을 호도함으로써 민심을 잃고 정권을 내어 놓았다.

실패와 위기가 닥쳤을 때 사심이 없는 뛰어난 인물을 등용하고, 진실에 대면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책!

20231209,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