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몽촌토성

난 지난 해 3월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을 때 멀리 한강(漢江) 이남 지역을 바라보면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최초로 언급한 한성백제의 왕성인 하남위례성에 관한 상상이었다.

한성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개로왕이 참수당하면서 멸망하였다. 약 500년간 존속되었다. 이후 웅진백제가 64년, 사비백제가 122년 존속되었던 것에 비해 500년이나 존속되었으니 한성백제야말로 백제역사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비교적 고대의 역사이고 기록이 거의 없기에 생생하게 기억되지 않을 뿐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엔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아악(負兒嶽, 지금의 북한산 백운대로 추정)에 올라 왕궁지를 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남위례성으로 언급된 그 위치에대해 사학계에선 지금까지 크게 3군데(하남 춘궁동 이성산성, 송파구 풍납토성, 몽촌토성)중 한 곳이라 거론해오다가 1980년대 들어와서 풍납토성에서 엄청난 량의 고대백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인 위례성이다고 보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석촌고분군에서 비교적 가깝고 풍납토성과는 달리 구릉지에 조성된 몽촌토성을 위례성으로 보았던 설이 강했다.

오늘 친구들과 갑진년 신년하례식 명분으로 그 몽촌토성을 걸었다. 토성 전체와 사잇길을 포함하여 약 1만보의 걸음이었다. 토성내의 공간도 생각보다는 넓었다. 난 걸으면서 또 상상하였다. 고구려가 거의 산성에 도읍하였고, 돌로 성을 쌓았는데 고구려와 부여의 후손인 온조는 왜 낮은 평지나 구릉지에 토성을 쌓았는지? 그래서 하북에 위치한 아차산성이 위례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개로왕이 아차산성 아래에서 고구려군에 참수되었다는 기록이 그러한 상상을 더 짙게하였다.

한편으론, 평지에 그것도 한수(漢水) 바로 옆에 축조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다면 더 왕성다운 조건을 갖춘 이 몽촌토성은 어떤 성격의 성이었다는 것인지 의문이 더해졌다.

한성백제박물관에 가니 나의 이러한 의문에 어느정도 답을 주는 것 같은 기록이 있었다.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정궁, 몽촌토성은 별궁'이었다는 기록이다. 두 토성이 합쳐져서 위례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토성의 크기, 축조 시기, 발견된 유물의 종류와 양, 한수(漢水) 이용과 방어의 용이성 등을 고려시 그러한 기록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납토성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3.5Km 길이의 풍납토성보다 약간 짧으나 자연하천을 이용한 해자를 둘렀고 구릉지에 위치하여 방어에도 유리하고 왕성의 별궁이었다면 정궁을 보호하는 별궁의 용도에 맞는 공간을 가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토성에서 바라본 높은 롯데타워, 주위 빽빽이 들어선 고층빌딩들, 바로 인접한 88올림픽 경기장들.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무너졌던 한성백제가 1,550여 년이 지나 오늘의 진정한 한성의 심장부가 되어있다.
한 때 국력이 왕성하여 고구려 평양성까지 점령하여 고국원왕까지 참살하고 한수를 따라 대륙이나 왜까지 진출했던 그때의 백제가 되살아난 느낌도 들었다. 한성백제 500년의 역사, 그 흔적의 토성을 걸으면서 역사의 승자가 되는 조건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2016년 3월에 웅진백제 공산성을 걸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땐 금강이 감싸흐르는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비록 짧았지만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 무령왕, 성왕 등 5대 64년 동안의 고마나루 유역의 웅진역사를 상상했었다. 시간적으론 짧았지만 공간적으론 결코 작지않았던 웅진백제의 역사.

일본인들이 우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웅진백제의 역사가 함께 겹쳐진 영욕의 한성백제 몽촌토성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오늘의 걸음. 몽촌에서 바라본 부아악 삼각산이 멀리 아득하게 보이기에 폰을 댕겨서 담았다. 역사는 아득하지만 소멸되지않고 영원히 이어지는 것!  

20240116,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