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봄비

친구가 보내준 사진 한 장. 남쪽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는 봄소식이다. 입춘(2.4)을 맞이한지 꼭 2주째인 오늘 하루종일 봄비가 내렸다. 지난 겨울동안 입었던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고 솜털 같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찾아온 봄비다.

책을 읽다가 괜히 자주 창을 열어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빗속의 바람은 봄꽃 향기를 몰고 왔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연의 소리와 향기.

어젠 인문학 기행으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로마 문명이 전시되고 있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쐐기문자 문명, 신화의 세계와 인간 세상의 닮은 모습을 그려낸 그리스 로마 문명. 두 문명의 공통점엔 신과 인간이 있었다. 특히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신과 신화를 만들어냈다. 두 나라는 신화를 통해 인간이 사는 세상과 사후의 세계에대해 깊은 사유를 했다. 이러한 사유는 동양에서도 동일했다. 옆 방에 전시된 반가사유상도 그러한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유의 방' 입구에 새겨진 Time to lose yourself 라는 의미심장한 글귀. 찬찬히 들여다보니 신과 신화의 이야기도 반가사유상의 세계속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이 내린 시간에 기어코 우산을 들고 공원을 찾았다. 아파트 벽돌 길 사이를 비켜 공원으로 이어지는 흙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연못에 오니 물오리 한 마리 보이지 않고 가로등 불빛만 물을 적시고 있다. 수로에 서서 물소리를 담아본다. 묵직하면서도 잔잔한 소리.

우산을 받쳐들고 저수지를 돌면서 온전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머릿속은 어제의 상념에 빠진다.

자신을 버리는 시간(Time to lose myself)을 대하면 고요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짊어지고 있는 짐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다. 좋건 싫건 특정 상황속에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일이 허다한 인생길에서 봄비는 잠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인생 60대 중반을 넘어서서야 오롯이 내 가슴속에 담아보는 봄비. 앞으로도 이런 봄비를 맞이해보자.

20240218,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