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긍재와 단원

도보사랑 2025. 5. 20. 12:15

긍재와 단원

긍재 김득신은 단원 김홍도(1745~1806년)보다 9년 늦은1754년에 태어나 단원과 약 52년간 동시대를 살았다. 긍재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 있어서 김홍도의 화풍을 가장 충실히 계승한 화가로 평가받았기에 긍재의 그림을 모사(模寫)하다보면 필히 단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긍재의 화첩에서 목동을 소재로한 그림, '목동오수도(牧童午睡圖)'를 보니 작년 8월에 모사해보았던 단원의 그림 '목동섭우도(牧童涉牛圖)'와 '목동귀가도(牧童歸家圖)'가 생각난다. 소(牛)를 타고 홍수가 난 듯한 개울물을 건너는 시골 아이의 태평한 모습, 가을 들녘을 옆에 두고 소를 타고 다리를 건너 귀가하는 목동의 한가한 모습의 그림이었다.

'목동오수도(牧童午睡圖)'에서 긍재가 묘사한 오수를 즐기는 목동의 모습도 거의 비슷하다. 한마리 소를 마음대로 방목해놓고 아무 관심이 없는 듯 바위옆 풀섶에 누워 태평스럽게 오수를 즐기는 소년 목동. 살랑살랑 부는 한여름의 바람과 그늘을 얇게 드리운 수양버들이 목동을 단잠에 빠지게하고, 홑겹의 옷이 배(腹)를 노출시켜도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귀가할 시간이 되었는지 오히려 소가 가까이 다가와 소년을 깨우려는 듯 코를 내밀고 큰 눈망울을 굴리고있다. 풀밭에 오물을 잔뜩 싸놔 냄새가 진동해도 소년의 잠을 방해하진 못한다. 말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달콤한 오수! 깊은 잠에 빠진 소년이 부러운 듯 힘없는 날개짓하며 저편으로 날아가는 한마리 기러기가 외롭고 가여울 정도다. 소년과 소(牛)의 세밀한 묘사는 영락없이 단원의 화풍이지만 더 조용하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긍재의 '밀희투전(密戱鬪餞)'은 단박에 보아도 단원의 '투전도'보다 도박에 임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투전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단원의 투전 그림은 긴박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주 흥미로웠다. 돈(錢) 앞에서 욕심이 읽혀지는 사내들 모습들로서, 패를 등뒤로 감춘 표범조끼를 입은 사내와 담뱃대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패를 감추는,  수(手)가 높은 듯한 사내의 포커페이스 얼굴, 패를 힘있게 바닥에 내리치는 의기양양한 사내와 웃으면서 여러 패를 한꺼번에 쥐고 있는 사내는 조금 수가 낮아 보이고, 그러기에 빨간 두건을 쓴 옆 사내가 옆에서 손으로 훈수를 두고 있는 재미있는 그림이었다.

긍재의 '밀희투전'에 등장하는 4명의 사내 표정은 무덤덤하고 투전분위기도 긴박감을 주지 않는다. 큰 손동작이 없고, 사내들의 얼굴 표정에서도 속임수를 읽을 수 없다. 아마 판돈이 크지않고 그저 심심풀이용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돈에 욕심이 투영된 노름이 아닌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긍재는 단원보다 노름에 큰 관심이 없었던가 보다. 그때가 1800년대 초로 보이는데 안경을 쓴 사내와 넷 사내 모두 망건을 쓰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조선의 망건은 모두 말총으로 만들어 튼튼하고 인기가 높아 중국으로 많이 수출되었다. 4인이 살벌하게 투전하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그러한가? 등잔불이 없고 술병만 있는 것도 낮에 잠깐 재미삼아 노는 투전이 분명하다.

두 그림을 통해 긍재와 단원의 성격, 생활습관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긍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함에도 이렇게 마음대로 상상해보는 것에 대해 두 거장의 화백이 꾸중을 주지말았음 좋겠다. 상상의 자유를 허용해주면 참으로 고맙겠다.

20250520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