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외 1점

도보사랑 2025. 6. 20. 10:13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외 1점

러시아 황제 대관식 선물로 건너간 오원 장승업의 그림 4점 중 나머지 2점을 찾아 모사(模寫)해본다. 두 점 모두 재미있는 고사(故事)를 내포하고 있어서 기록을 찾아가며 좋은 공부도 되었다.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는 동자가 큰 오동나무 곁에 놓인 탁자를 밟고 올라가 손에 든 수건같은 것으로 오동나무를 닦고 있고, 나무 아래 평상 모양의 바위 탁자에 기댄 어른은 이를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있는 모습의 그림이다. 동자가 딛고 올라선 탁자옆에는 물 항아리가 놓여있고, 평상에는 책과 서화 두루마리, 가는붓 통이 놓여 있다. 평범한 그림 같지만 이 그림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

오원은 중국 고사(故事)의 주인공 이름(號)을 따서 전해내려오는 원나라때 그림 '운림세동도(雲林洗桐圖)'를 참고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 운림은 원나라 유명 시인이자 서화가인 예찬(1301~1374년)이 살았던 곳으로 세상일에 어두워 ‘예우(倪迂)’라고도 불렸고, 살림이 넉넉하여 고서화 등을 모으며 풍류적인 은둔생활을 했으며 명나라 초땐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일(隱逸)과 방랑 속에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기행으로 갖가지 일화를 남겼는데 특히 결백증이 심하여 틈나는 대로 손을 씻었고, 물과 수건을 든 시녀가 늘 그의 뒤를 따라 다녔으며 걸핏하면 목욕을 하고, 세수할 때는 물을 몇 차례나 갈아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의복도 하루에 서너 번씩 갈아입고, 노비에게 정원에 있는 괴석이나 나무를 종일토록 씻고 닦게했다고 한다.

결벽증의 압권은 침이 튄 오동나무를 씻게 했다는 일화로써 '고사세동도'가 그 일화를 설명해준다. "어느 날 그가 숨어사는 운림에 한 절친한 벗이 찾아왔다. 그런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던 그 벗이 무의식중에 침을 뱉었고, 그 침이 주변의 오동나무에 묻었다. 오동나무를 지극히 좋아했던 예찬은 그 벗이 돌아간 뒤 오동나무에 묻은 침을 동자로 하여금 물로 씻게 했다" 이 이야기는 ‘운림세동(雲林洗桐)‘이라는 고사로 전해지고,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어떠한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는 고결한 선비의 결벽이 오원에겐 좋은 의미로 다가왔는가 보다. 오원이 최소 3점 이상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술을 좋아하고 돈과 명예, 권력을 멀리한 오원에겐 운림의 결백증이 서로 통하는 내면가치로 작용되어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어느 연예인은 심한 결백증으로 이혼까지 했다는데 단점이라 생각되는 것을 장점으로 봐주면 만사형통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오원의 작품!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는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가 목이 유연하게 변하는 거위를 보고 서예의 영감을 얻었다는 고사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은 단순한 구도로 왕희지로 보이는 선사가 누각 난간에서 아래 강풀섶에서 놀고있는 거위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정자와 시동으로 보이는 아이는 일부 모습만 그렸고, 뒤로 보이는 산들은 채색을 달리하여 원근감을 주고 있다.

거위 아(鵝)자를 보니 경남 산청 경호강변에 있는 정자인 환아정(換鵝亭)이 생각난다. 왕희지 고사의 실제 장소는 중국 소흥 외곽에 위치한 난정(蘭亭)이란 이름의 정자다. 고사 내용은 이러하다.
"난정은 왕희지가 지역 인사들과 유상곡수(流觴曲水 :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 보내면 그 술잔을 받은 사람이 시를 지어 화답하는 놀이)를 즐기던 곳이다. 왕희지는 351년 이곳에 부임했는데 어느날 한 도사가 그의 글씨를 흠모하여 많은 예물을 보내 ‘황정경(黃庭經)’을 써주길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 후 이 도사는 왕희지가 흰 거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손수 거위를 그에게 보냈다. 왕희지가 흰 거위를 보고 매우 즐거워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사는 즉시 글씨를 쓸 좋은 비단을 준비했다. 이번엔 왕희지도 거절하지 않고 즉석에서 ‘황정경’을 써 주었다."
청탁과 꽌시의 나라 중국에선 흰 거위와 글씨를 바꾸다는 뜻의 4자성어(白鵝換字) 이야기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오원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마 '고사세동도'와 마찬가지로 그의 성품, 가치관에 기인된 것으로, 허세와 세속의 욕심을 멀리한 오원에겐 한마리 흰 거위가 값비싼 비단이나 금전보다 훨씬 더 좋아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그린 귀한 그림들을 한 잔의 술로 자주 바꾸어 마신 오원이었으니.. 진정 아름다운 인간 내면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생각케해주는 오원의 또 다른 작품!

그나저나 '환아정'을 찾고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난다. 촉석루,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누정으로 꼽히는 환아정은 1395년 산음현감 심린에 의해 창건되어 한석봉, 송시열의 흔적이 있는 곳. 한 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3년 전에 복원되었다고 하니 진주 내려가는 편에 꼭 들러보아야겠다. 시원한 경호강바람이 불어오는 한여름때면 더욱 좋겠다.

20250620,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