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개념이 사라진 국제관계와 한국인의 무지
현재 국제관계의 체스판은 수많은 블랙스완(Black Swan)이 헤엄치는 호수와도 같다. 적의 적은 우군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사라졌다. 서구진영과 공산진영이라는 두 블록(Block)이 대치하는 전통적인 모습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데다, 피아 구분이 재래식 안보에 사이버 안보가 더해졌고 경제, 무역, 금융 등 온갖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장 유럽만 봐도 포병, 기갑을 주력으로 유럽의 종심을 신속하게 깊숙이 타격한다는 OMG에 대항해 서유럽이 중거리 핵미사일로 대항하는 판도는 이미 냉전종식으로 오래전에 사라졌다.
트럼프의 외교스타일은 특징이 있다. 다자(Multilateral)구도보다 개별국가와의 양변(Bilateral)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NAFTA대신 미국, 멕시코, 캐나다협정(USMCA)을 체결한 스타일은 NATO에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트럼프의 특징이 또 하나 나타난다. 명분(de jure)보다는 사실(de facto)을 철저히 적용한다는 점이다. 거추장스러운 수식도 필요 없다. 상대국가의 현재 스탠스를 봐서 미국의 실리에 반하면 그대로 받아치고 있다.
트럼프는 2017년 1월 취임전에 이미 나토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28개 회원국 가운데 방위비를 제대로 부담하는 국가는 5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이 쓸데없는 부담을 진다고 했다. 또 독일의 메르켈이 수백만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실수를 했으며 대통령에 취임하면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독일자동차에 대해 3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2018년 7월에는 독일이 NATO에 GDP의 1% 밖에 부담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에 매년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면서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독일이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면서 이런 독일을 러시아로부터 지키기 위해 미국이 NATO의 짐을 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중국이 적이지만 무역부문을 보면 EU 역시 미국의 적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여기에 더해 NATO에 대해서도 불신을 계속 나타내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앞으로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인 유럽군(European Army)를 창설할 필요가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사이버공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극도로 반발했다
미국은 NATO회원국 가운데 독일, 프랑스와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친미에서 급선회해 이란, 카타르와 반미동맹을 맺은 터키에는 경제보복을 가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은 폴란드에 대해서는 반색하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는 러시아 위협에 대한 방어차원에서 미군의 영구주둔을 요청했다. 2017년 2월부터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순회하는 병력을 자국에 상주시켜 달라면서 이를 위해 20억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폴란드는 미군이 자국에 상주하면 주둔지를 트럼프의 이름을 따서 포트 트럼프로 명명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허울뿐인 NATO동맹의 틀은 이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이미 미국의 이익에 따라 개별국가와의 거래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안보의 중심은 이제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태평양으로 급속히 움직이고 있다. 영국을 위시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등 과거 영연방블록과 일본, 인도가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 일본의 가장 관심사는 현재 타이완 해협이다. 미국은 2019년부터 타이완의 연례 군사훈련인 한광(漢光)연습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할 예정이며 적극적으로 군사개입을 하고 있는 상태다. 냉정하게 보면 한반도는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려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미군철수가 현실화 될 것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어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또한 블랙스완이라 그렇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가안보는 최악의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보면 미국이 제2의 애치슨라인을 설정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2만 4천의 미군병력이 전원철수 할 수도 있고 일부를 감축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이 한반도에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이익이 커서 대한민국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확증편향일 수 있다. 현재 미국과 NATO와의 관계나 트럼프가 명분(de jure)과 객관적 사실(de facto)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는지의 스타일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트럼프가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의 공동의 적인 중국에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거대한 대중국 전략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것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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