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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본 장례식

도보사랑 2012. 11. 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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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낙엽의 계절이다. 떨어지는 잎새를 보면 한 번쯤 종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의 가장 확실한 사실은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이 자연의 이치를 어길 방법은 없다. 어차피 도망치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죽음을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나는 죽음 예찬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다 가는 길인데 굳이 서둘러 떠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느긋하게 삶의 달고 쓰고 신맛을 다 맛보고 가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의 장례 문화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인생의 통과의례, 즉 태어나고, 결혼하고, 자손 낳고,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죽음은 소중하고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예외 없이 종합병원 영안실로 문상을 다니다 보면, 이런 생각을 피할 수 없다. 편리함도 좋지만 좀 더 아름답고 멋지게 퇴장할 순 없을까? 부조와 상조 회사가 중심이 된 오늘날의 장례 풍속도는 그야말로 프로세싱(처리)의 현장이다. 영정 사진과 종교적 절차만 바뀔 뿐이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절차와 국화꽃들에 둘러싸인 고인의 사진을 대하노라면 좀 민망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분에 관해 아는 게 없다. 그가 겪어낸 희로애락, 그 지난한 인생을 피상적이고 판에 박힌 형식으로 흘려 보내긴 아쉽다. 애틋하고 경건해야 할 예식이 상혼에 오염된 지도 오래다.

필자는 미국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처럼 병원 지하실이 아닌 깔끔하고 세련된 장례 전용 하우스에서 친지들은 망자와 조용한 이별을 했다. 유가족은 정해진 시간에 방문객을 받았다. 그리고 영결식은 슬펐지만 따뜻했다. 함께했던 추억을 추모시와 영상으로 나누고, 고인이 즐겨 듣던 비틀스 노래로 떠나보냈다. 아름다운 작별이었다.

예전에 우리 조상은 부모가 돌아가면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애곡을 했다던가? 좀 과하다 싶긴 하지만, 움막에서 살며 장자는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터득했을 것 같다. 죽음도 삶의 한 고귀한 부분이라는 것, 이 지혜를 가지고 산을 내려온 장자는 자손을 그렇게 훈육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례를 통해 조상과 죽음을 삶의 테두리 안에 품었다.

정신은 간 곳 없고 빈 쭉정이처럼 형식만 남은 우리의 장례를 21세기형으로 개조할 것을 제안한다. 영혼도 불러낼 듯 발달한 미디어 기술에 약간의 예술적 상상력, 무엇보다 구태의연을 깰 용기가 합해지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퇴장이 가능하다. 여기 한 예가 있다.

쾌청한 어느 가을, 나는 `천 년의 숲`을 찾는다. 아이들은 숲 학교의 `어린이 논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지난여름 열렸던 생태 교실도 반응이 좋았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나는 생태 공원 내 수목장지로 향한다. 어머니의 나무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나무마다 GPS를 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은행나무는 이제 노오란 옷을 입고 있다. 잠시 머문 후 나는 추모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들꽃 향기 은은한 오두막, 스크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만난다. 50대 초반부터였던가, 어머니는 최상의 자태로 `후대에게 보내는 지혜의 말`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돌아가기 1년 전까지 올린 영상물들이 어머니 파일에 빼곡히 담겨 있다. 나는 방문 리플을 달아 놓는다.

장례식은 어머니다웠다. 흰 국화를 싫어한 어머니는 빨간 장미 한 다발을 관 위에 놓도록 했다. 값비싼 수의는 거절하고 검소한 관을 주문했다. `후대에게 보내는…` 영상에 어린 시절 어머니 모습, 그리고 젊은 시절 우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더해졌다. 장례 디자이너가 잘 편집했다.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 했다.

이제 논어 학교를 마친 아이들과 숲을 산책하며 할머니 `노소영`의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숲 전체를 울린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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