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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사랑했던 다산 선생

도보사랑 2014. 1. 20. 08:46

법정 스님이 사랑했던 다산 선생

  나이가 들어가면 잠이 적어지는 지, 새벽이면 일찍 눈을 뜨게 되고 그런 때에는 가벼운 내용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2010, 문학의 숲 편집부)을 읽어가노라니, 그 책이 나온 뒤, 한 달도 채 안 되어 입적하셨던 스님께서 다산 선생을 매우 사랑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건강하던 때로부터 병고로 시달리던 때까지 오랜 시일에 걸쳐, 스님과 가까운 후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하여, 300여 권이 넘는 스님이 아끼던 책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책 50권을 골라냈다고 합니다. 그 책들의 좋은 내용을 요약하고, 해설을 달고 스님께서 직접 가필하여 출판한 책이 바로 표제의 책이랍니다.

  그 책의 부록에 실린, ‘법정 스님의 글과 법문에서 언급된 책들’에 300권 가까운 책의 이름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산의 『경세유표』,『목민심서』,『유배지에서 보낸 편지』,『흠흠신서』등의 저서들이 열거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스님의 마음을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랑한 책으로 꼽힌 50권 중에는 유일하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들어있습니다. 50권에는 5,6권에 이르는 국내의 책이 있는데, 그중에 다산의 책이 들어있음은 스님이 얼마나 다산을 사모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생동안 참선, 독서, 글쓰기로 생애를 마친 스님은 18년의 귀양살이 동안, 책과 붓으로만 살았던 다산에 대하여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스님의 글에는 다산이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글귀를 그대로 인용한 대목이 많습니다. “‘천지간에 외롭게 서 있는 내가 운명적으로 의지할 곳이라고는 오로지 책과 붓뿐이다.’ 그는 이어서 ‘너희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내 저술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술이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눈을 감고 흙으로 빚은 등신처럼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것이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이어주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깊이 새겨주기 바란다.’”를 인용하였으니, 다산의 독서이야기가 그렇게도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다산의 삶을 아름답게 기술했습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 아래서라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는 18년 유배생활에서 수백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재능과 출세를 시기하여 무고한 죄를 씌워 유배를 보낸 그때의 지배계층은 오늘날 그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귀양살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참과 거짓은 이렇듯 세월이 금을 긋는다.” (법정 저, 『물소리 바람소리』)

  고귀한 영혼의 법정 스님, 역시 스님은 고귀한 영혼의 다산을 알아보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그렇게도 다산을 사랑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