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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방황과 질병의 고통을 이겨낸 다산

도보사랑 2016. 9. 13. 16:26

마음의 방황과 질병의 고통을 이겨낸 다산



  신미(辛未:1811)년 겨울이라는 연대가 기록된 다산의 편지 1통은 다산의 유배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생활이었으며 마음의 방황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해주는 좋은 자료의 하나입니다. 흑산도에 귀양 사는 정약전 형님에게 다산이 다산초당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신유(1801)년에 시작된 귀양살이이니 만 1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 무렵 『아방강역고』10권이라는 책의 저술을 마치고 형에게 자신의 심경을 아뢴 내용입니다.

  “이 10권의 책만은 우리나라에서 결코 업신여길 수 없는 것인데, 그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조차 찾을 길이 없으니 끝내는 이대로 티끌로 돌아가고 말 것만 같습니다. 분명히 이럴 줄 알면서도 오히려 다시 고달프게 애를 쓰며 그만두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습니까”(上仲氏)라고 말하며 좋은 책인가 나쁜 책인가를 구별해 줄 사람도 없고, 유용하게 활용할 아무런 방책이 없는데, 부질없이 저술에 몰두하는 자신의 애달픈 심정을 토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점차로 하던 일을 거둬들여 정리하고 이제는 마음공부〔治心〕에 힘쓰고 싶습니다. 더구나 풍병(風病)은 이제 뿌리가 깊어졌고 입가에는 항상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는 늘 마비 증세가 옵니다. 근래에는 또 혀가 굳어 말이 어긋나 스스로 살날이 길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한결같이 바깥일에만 마음이 시달리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다 보면 세간의 잡념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上同)

  알아준 사람도, 써먹을 곳도 없는 저술, 더구나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 멈추고 싶은 저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의 방황, 그래도 저술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다 보면 오히려 온갖 잡된 생각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불안, 그래서 결국 책 쓰는 일에 매달릴 수 밖에 딴 도리가 없던 다산, 그런 불행 속에서 이룩된 500여 권의 저서가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천재 학자였지만 일반 속인들과 별 차이 없이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고, 마음의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붓을 놓을 수 없던 불굴의 의지 때문에 다산은 끝내 대학자의 수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형은 어떤 답서를 보냈을까요. 전해지지는 않지만 분명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저술을 계속하라는 주문을 했으리라 믿어집니다. 형제지기이던 두 학자, 서로 의지하며 고달픈 귀양살이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 하던 두 형제, 한번 헤어진 뒤, 끝내 얼굴을 맞댈 수 없었지만 주고받은 편지로 서로를 위로받으며 불후의 명저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의 극복에서 조선 후기 실학의 꽃은 피웠는데 결실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통체로 개혁하자던 국가 개혁, 철저한 부패 방지, 만민평등, 지역차별 철폐, 기술 개혁 등 이제 후생들이 열매를 맺어야 할 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어떤 지도자가 나와야 그런 일을 해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