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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에대한 이만열의 시각

도보사랑 2018. 10. 29. 13:18
미국은 진정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원하는가
이 만 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어느 모임에서 국회의 대미(對美)활동과 관련, 미국 의회와의 소통과 전시작전권의 환수 및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에 국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남북·북미 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국회는 손을 놓은 채 정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는 잊을 만하면 한국의 방위비 부담을 높여야 한다고 윽박지르는데, 이 문제도 주한미군의 광대한 토지 무상점유부터 평택 기지, 전기·수도·고속도로 이용료 등까지 따져서 셈법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안전 보장은 제쳐두고, 완전한 비핵화만 강조

  최근 미국 유력인사들의 한국관에는 실망스러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남북관계와 대화는 북한 비핵화와 연계되고, 한국과 미국의 목소리가 일치해야 한다”며 남북의 철도-도로 연결 연내 착공 합의 등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주권국가를 존중하는 발언은 아니다. 주한미군 사령관 내정자 에이브럼스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남-북 간의 종전선언은 그들 사이의 합의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이 또한 미국 의회에서 용훼할 내용은 아니다. 이런 문무관의 발언에 이어 트럼프도 세 번씩이나 “미국의 ‘승인(approval)’ 없이는 한국이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여 듣는 이를 불편케 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보인다.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국제사회에서 견인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제재도 완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황청을 방문하여 내년 봄 교황의 북한 방문을 요청하고 교황으로부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라.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격려도 받았다. 그 시각 일본 총리 아베는 ASEM 정상회의 의장성명에 ‘북한 핵에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요구한다’는 문구를 삽입시켰다고 자랑한다. 국내 정치인과 언론인 중에도 아베의 입장에 화답하면서 ‘비핵화와 평화’를 동시에 이루려는 일을 도외시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트럼프의 ‘승인’론과 아베의 행동에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한마디 말도 없다. 그래도 되는 걸까.

  미국이 정말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성명의 진행 과정을 관찰하면서 나왔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양국은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견고한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사안들을 주제로 포괄적이고 심층적이며 진지한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트럼프는 북한의 안전보장을 약속했고, 김정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확고하게 약속했다. 이 성명에 따라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유골의 발굴과 송환’ 등의 4개 항을 도출했다.

  북미 간의 이 합의는 일방적이 아니고 쌍방적이었다. 그러나 진행 과정은 북한에 대한 거의 일방적인 ‘CVID’로 진행되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는 분명히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안전보장을 약속했는데도 이건 무시한 채 회담의 결론이 마치 ‘완전한 비핵화’뿐인 양, 미국 조야와 언론들은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들 또한 미국이 쏟아놓는 ‘완전한 비핵화’ 주장만 쓸어 담고 있다. 그래서 이 합의에 대한 기대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기지의 영구 폐쇄 조치를 자발적·선제적으로 보였지만, 한미군사훈련 중단 조치 외에, 미국은 종전선언이나 제재 완화에서 조금도 여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약속 이행을 머뭇거리는 쪽은 북한만이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은 정말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원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 다시 나온다.

일방적 주장보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줘야

  핵확산을 예방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노력이 북한에 대해서 일관성과 신뢰성을 주었는가. 1990년대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핵 개발에 나섰을 때 미국은 제네바 협상을 성사시켰다. 중수로 대신 경수로 발전소를 함남 신포에 건설키로 했다. 그러나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개발 의혹을 빌미 삼아 2002년 11월 부시 정권이 제네바 합의에 따른 중유공급을 중단하자, 한국도 11억 3천 달러를 고스란히 날린 채 신포 경수로 공사에서 손을 뗐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그 이듬해 1월 NPT를 탈퇴, 핵 개발에 나섰다. 그 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8월, 6자(남·북·미·중·소·일)회담이 시작되었다. 6자회담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무슨 심사인지 미국은 곧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걸어 북한의 자금동결에 나섰고, 북한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한 채 그 이듬해 제1차 핵실험으로 내달았다. 제네바 합의의 파기와 BDA 문제에서, 북한의 책임이 없진 않겠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을 예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내던져 버린 셈이다. 싱가포르 회담의 이행과정을 보면서 이 두 사건을 연상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더할 것이다.

  ‘6·12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약속하고 있다. 북미 사이에 제삼자가 모르는 내밀한 약속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북한의 완전비핵화과정만을 몰아치는 저간의 행태는 싱가포르회담의 약속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CVID는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와 함께 풀어야 한다. 김정은이 싱가포르 회담을 두고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라고 한 말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이참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동시에 행동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책임은 행동하지 않는 쪽이 져야 하지만, 강자에게는 관용이라는 책임도 있다. 그래서 또 묻는다. ‘미국은 정말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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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 만 열
· 숙명여대 명예교수
· 사학자(전 국사편찬위원장)

· 저서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지식산업사, 2014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지식산업사, 2010
〈역사의 중심은 나다〉 현암사, 2007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역사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
〈한국기독교의료사〉아카넷, 2003
〈우리 역사 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다출판사, 2000
〈단채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문학과지성사, 1990
〈한국 기독교 수용사 연구 〉 두레시대, 1998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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