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무라카미의 사케

도보사랑 2019. 1. 6. 11:12

무라카미(村上)의 사케(鮭)

 

겨울에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황태덕장의 풍경과 비슷해 보이는 일본의 풍경을 들자면 단연 니이가타현(新潟県) 북부의 무라카미시(村上市)다.

 

이곳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는 사케(鮭サケ:연어)다. 일본어로 연어는 술(酒)을 의미하는 사케와 발음이 같다. 사케(鮭サケ)는 영어(salmon)를 음차해 사-몬(サーモン)이라고도 하는데 연어의 고장 무라카미에서는 현지 방언으로 이요보야(イヨボヤ)라고도 한다. 이요보야는 원래 물고기, 어패류를 모두 일컫는 ‘거시기’와 비슷한 표현인데, 무라카미를 먹여 살리는 대표어종 연어를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고 한다.

 

벼농사가 흉년이더라도 무라카미 사람들은 연어 덕분에 아사하지는 않았고 헤이안 시대부터 조정에 세금대신 납부한 어종이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생선인데 무라카미 주민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세계최초로 사케(鮭サケ:연어)의 인공번식에 성공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에도시대 중기 에치고노쿠니(越後国:현재의 니이가타) 무라카미(村上)번의 사무라이였던 아오토 부헤이지(青砥 武平治あおと ぶへいじ)라는 이가 사케(鮭サケ:연어)를 자세히 관찰한 결과 붕어나 잉어와는 달리 부화한 곳으로 회귀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당시 사케는 무라카미 번의 재정을 뒷받침하는 자원이었지만 남획으로 고갈직전이었다. 부헤이지는 반드시 사케자원을 되살려야 한다고 결심하고 야마가타현 경계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미오모테가와(三面川みおもてがわ)에서 사케 증식 작업을 시작한다. 사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별도의 물길을 만든 뒤 적당한 지점에 쯔타(蔦ツタ담쟁이 넝쿨)와 시바(柴しば 장작용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가두고 산란을 유도했다.

 

이를 타네가와(種川たねがわ)라고 하는데 1763년부터 30년 동안 대공사를 계속해 어획량을 획기적으로 늘려 나갔다. 이 같은 타네가와 시스템(種川の制)은 메이지 시대 홋카이도의 이시카리가와(石狩川いしかりがわ)에서도 채택돼 일본의 연어생산에 크게 일조했다.

 

무라카미시는 사케를 상당히 중시한다. 역대로 지역주민을 먹여 살린 일종의 은혜를 베푼 어종으로 취급한다. 사케를 맛있게 모든 부위를 감사하게 먹는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무라카미사람들은 다양한 부위를 이용한 조리법을 고안해내 그 레시피는 백가지를 넘는다.

 

심지어는 고마운 “사케를 셋푸쿠 해서는 안된다”(鮭を切腹させてはならぬ)고 해서 연어의 배를 가를 때 전체를 한꺼번에 가르지 않고 배지르러미 부근에서 한번 멈춰 중간부분은 그대로 두고 뒷부분을 다시 가르는데 이를 ‘止め腹’라고 한다.

 

니이가카현 무라카미시에서 사케와 관련된 대표적인 풍경을 만드는 것은 시오비키사케(塩引き鮭)라고 해서 죠카마치(城下町)를 중심으로 처마에 止め腹방식으로 배를 가른 사케를 머리부분을 아래로 주렁주렁 걸어 차가운 북서풍으로 말리는 것이다.

 

초겨울에 잡은 사케를 1주일정도 소금에 절이고 다시 담수로 세척해 약 3주 동안 그늘에서 말린 뒤 대략 12월부터 처마에 걸어 삭풍에 숙성시킨다.

 

사케는 기본적으로 시오비키사케(塩引き鮭)형태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데 요리방법도 무척 다양하다. 우선 염장으로 건조된 사케의 살을 얇게 썰어 만든 (鮭の酒びたし사케노사카비타시)가 있다. 일견 베이컨과 비슷한 모양인데 술에 적시면 부드러워져 술안주로 일품이다. 또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샐러드나 피자, 파스타의 토핑재료로도 쓰이는데 일본에서는 상당히 대중화된 사케의 가공식품이다.

 

무라카미의 사케요리에서 버리는 부분은 거의 없을 정도로 요리도 다양하다. 숙성 스시인 이즈시(飯鮓いずし)는 사케의 살을 얇게 썬 뒤 여기에 알이나 머리연골 (氷頭ひず), 누룩(麹こうじ)등과 곁들인다. 또 사케노메훈(鮭のめふん)이라고 해서 신장을 소금에 2년 동안 담근 것도 진미로 헤이안시대부터 조정에 바친 것도 있다.

 

내장(内臓なわた)은 한입크기로 잘라 무와 파를 넣고 미소시루로 만들고, 심장(心臓どんびこ)은 꼬치로 만들어 소금구이로 먹는다. 가운데 몸통을 토막으로 삶아 뼈(中骨どんがら)까지 먹고 치어(しらす白子)를 사시미로 즐기기도 한다. 알을 재료로 한 요리로는 간장조림(はらこの醤油漬)이 있다.

 

사케 전체를 거의 버리지 않고 요리재료로 활용하는데서 더 나아가 ‘鮭焼き’라는 먹을거리도 있다. 鮭焼き에서 ‘鮭’는 사케의 무라카미 방언인 이요보야(イヨボヤ)로 읽는데 이는 한국식으로 하자면 붕어빵, 즉 사케빵이다. 이요보야야키(イヨボヤ焼き)는 연어를 본 따 만든 틀에 밀가루반죽을 부어 만든 빵인데 속에는 차의 재배 북방한계선인 무라카미에서 생산된 녹차나 크림을 넣는다.

 

무라카미에서 사케(鮭サケ:연어)는 지역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지에서 사내아이가 5살이 되면 하카마기(袴儀はかまぎ : 하카마는 일본전통의 겉에 입는 바지)라는 의식을 치루고 온가족이 축하하는 행사를 하는데 ‘강의 흐름을 거슬러 회귀하는 사케(鮭)처럼 외지에 나가더라도 굳세게 성장해 고향에 돌아오라’는 의미로 사케요리를 마련한다. 또 11월이면 연어로 만든 거의 모든 종류의 요리를, 설의 세시음식으로는 사케(鮭)이즈시(飯鮓いずし)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