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내 몸 어디를 만져봐도 뿌리가 없다 아니다. 내 몸은 뿌리로 엉켜있다 틈새마다
촉수를 뻗어 나를 간섭하는 뿌리, 버팀목을 자처하며 내 밑동이 되려 하는 뿌리,
나는 뿌리의 눈물과 함께 잠들고 뿌리의 뜻에 반反하여 깨어난다 뿌리를 캐낼 수
있는 칼은 지상에 없다 내가 지평을 넓히지 못하는 것은 뿌리를 무시하기 때문,
뿌리를 외면하는 심장은 가뭄을 탄다
뿌리는 뿌리로부터 오고 뿌리로 이어져 간다 뿌리의 실핏줄, 뿌리의 동맥 끝에서
소리 없이 꽃들이 피고 졌다 뿌리 속에 뿌리가 있고 뿌리 바깥에도 뿌리가 있다
갖가지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그 근본은 깊고도 질기다 내가 가꾼 숲이
실은 아득한 근원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 나를 지탱하는 줄기도 뿌리의 푸른
물길임을 알겠다 꽃이며 물관이며 동시에 뿌리인 나를 본다
- 허영둘, 시 ‘뿌리’
2023년이 밝았습니다. 올해도 든든한 뿌리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뿌리가 든든한 우리, 뿌리가 든든한 너와 내가 되어서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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