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그리워지는 까닭

도보사랑 2012. 8. 31. 08:44

 

 

 

 

한국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 내수와 투자가 부진하고 믿었던 수출마저도 영 신통치 않다. 재벌 개혁, 빈부격차 해소 등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과거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우리는 국면을 바꾸는 승부수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1973년 중화학공업 진출 선언, 70년대 후반 중동 건설 진출, 77년 한국 최초의 고유 자동차 모델 포니 탄생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해소하고 우리 경제의 질적인 대전환을 가져 온 것은 1983년 2월 호암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투자 결정일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우뚝 섬으로써 삼성그룹의 지속 성장이 가능했고 우리 경제의 대도약이 이뤄졌다. 호암이 우리에게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이었다.

호암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금 우리사회는 첨예한 이념갈등, 계층갈등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호암은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뛰어난 경륜과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었다. 63년 5·16 이후의 사회적 혼란 중에 ‘우리가 잘사는 길’이라는 신문 기고를 통해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75년 ‘황폐한 국토를 다시 찾자’는 기고를 통해 국토 균형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82년 ‘미국을 다녀와서’라는 신문연재에서는 산업발전과 선진국을 향한 도전을 역설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원로로서의 충정과 탁견을 보여주었다.

호암은 자원이 빈약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에 달려 있다는 신념 아래 인재양성에 온몸을 던졌다. “기업은 사람이고 인재 육성은 기업의 본업이다”고 보고 인재경영을 경영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심되면 쓰지 말고 일단 쓰면 의심치 말라’는 인재 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다수의 유능한 경영인을 배출했다. ‘장(將)의 그릇과 병(兵)의 그릇’은 다르며, ‘저울 다는 사람과 전표 쓰는 사람’을 준별해 뛰어난 인재를 발굴, 중용했다. 경영자의 자기헌신과 무한책임을 사업성패의 키로 보았다. 특히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을 과감히 배제하고 오직 성실성과 능력에 따라 공정한 인사를 했다. 애니콜 신화의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 허태학 에버랜드 사장 같은 지방대 출신이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호암이 뿌리내린 실력 위주의 인사원칙 때문이었다. ‘회사를 부실하게 경영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상도 크게 벌도 크게’는 호암만이 남길 수 있는 명언(名言)이다.

호암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단계적인 기업성장 전략을 채택했다. 생필품→단순소재→소비재→첨단산업으로 이어지는 합리적 사업아이템 선정과 체계적인 사업확장을 추진했다. 특히, 기업 역량에 걸맞은 확장전략을 추구함으로써 무리한 사세확장을 극력 경계했다. 대부분의 실패한 기업이 과잉투자와 시대흐름에 부응치 못해 몰락했음을 꿰뚫어 보았다. 73년 1차 중동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오래 준비했던 조선소 준공을 과감히 연기한 것은 사업에는 착수하는 용기와 함께 물러서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반면에 시대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통찰해 과감히 반도체 진출을 결단한 것은 호암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업인(起業人)임을 잘 보여준다.

호암이 위대한 경영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 ‘과욕은 금물’이라는 뛰어난 절제력(節制力)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세가 기울거나 실패 시 과감히 정리할 줄 아는 용기와 결단을 최고경영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기업우선 원칙에 따라 감정과 사감(私感)을 절제하고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선택한 것이 삼성 경영의 성공 요인이었다. 호암은 사람이 능력만으로 성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운(運)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둔(鈍)한 마음과 운이 트일 때까지 버티는 끈기 근(根)이 잘 어우러질 때 좋은 운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호암이 늘 얘기하는 근둔론(根鈍論)이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나라가 어려워질 때 호암이 재삼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범용한 인간으로서 당연지사(當然之事)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