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끔찍한 테러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때마다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씩의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근래에만 해도 2015년 프랑스 파리의 폭탄 테러로 130명이 사망했고 2016년 브뤼셀 폭탄 테러로 34명이 사망한 데 이어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트럭 테러가 발생하여 최소 8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들은 모두 민간인이고 테러를 자행한 주체는 종교집단인데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이다. 니스의 트럭 테러범은 25톤 트럭으로 광란의 질주를 계속하며 ‘알라는 위대하다’라 외쳤다고 한다. ‘알라’는 무슬림들이 믿는 유일신이다. 그들은 알라의 말씀을 적었다는 코란에 따라 생활하므로 다소 독특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 할랄과 히잡 그들의 가장 독특한 생활 관습이 할랄과 히잡이다. ‘할랄’은 무슬림들이 먹어도 되는 음식을 말한다. 그들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죽은 동물, 피 흘리는 동물, 돼지 등 불결한 것은 먹어서 안 된다. 특히 돼지고기는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오염물로 분류된다. 먹을 수 있는 가축도 할랄 방식으로 도축되어야 하고 도축장 반경 5km 이내에는 돼지 농장이 없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나 술 등을 실었던 트럭에 할랄 식품을 운송해서도 안 된다는 엄격한 규정도 있다.
할랄과 함께 이들이 지켜야 할 엄격한 규정이 ‘히잡’이다. 히잡은 여성들의 신체를 가리는 독특한 의상으로 남편이나 가족이 아닌 남성에게 몸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히잡의 종류는 다양한데 눈을 포함해서 전신을 가리는 ‘차드리’와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가 가장 보수적인 의상이다. 이건 심각한 여성 차별이다. 프랑스에서는 부르카를 ‘옷감으로 만든 여성의 감옥’이라 부른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의 참정권이 없는 것은 물론 여성은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없다.
무슬림들이 그들이 믿는 신의 가르침에 따라서 할랄만 먹고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더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고, 어떤 신을 믿느냐도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유신론자가 무신론자를 비난할 수도 있고 무신론자가 유신론자를 비난할 수 있으며, 특정 종교의 신도가 타 종교의 신도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폭행을 가해서는 더더구나 안 된다.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쇠고기를 먹은 무슬림이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들에 의해 집단 구타당하여 사망했다고 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살육을 저지른 한 무슬림의 만행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알라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행위인가? 신이라는 망상(妄想) 지금까지 인류는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살육을 저질러 왔다. 사랑과 관용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종교의 이름으로 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가. 그렇다면 과연 신은 무엇인가? 옥스퍼드 대학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그의 저서『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신은 망상이다 … 그것은 유해한 망상이다”라 말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망상에 사로잡히면 맹목적인 성향을 띠게 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광기(狂氣)로 발전한다. 그리고 개인적 망상에 그친다면 그렇게 유해하진 않지만 그것이 종교적 집단 망상으로 발전하면 유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슬림들의 테러나 무슬림에 대한 힌두교도의 집단 구타 등이 그것이다. 이는 이슬람이나 힌두교뿐만 아니라 신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어느 종교의 경우에나 마찬가지이다.
종교란 기본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기 위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신을 믿고 종교적 신앙을 가지는 것을 누가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이 지나친 나머지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종교의 탈을 뒤집어쓴 범죄 행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