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을 읽으며 |
고 세 훈 (고려대 명예교수) |
추석 연휴에 플라톤의 『국가』(Republic)를 읽었다. 주로 이차자료를 통하던가,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만 접하다가, 이참에 통독에 나섰던 것. 대학원 시절 수강한 정치철학강의에서 멋진 인품의 교수가 자신은 매년 꼭 한 번은 『국가』를 읽는다던 말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지만, 시절이 수상한가, ‘기본’을 찬찬히 되새겨보자는 심리가 막연히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스승 소크라테스를 아테네 민주주의가 죽음으로 내몰고, 정치에 대한 그의 환멸이 가장 고조됐던 무렵에, 그가 가장 정치적인 책을 썼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시장적 욕망이 길들인 대중 플라톤이 꿈꾼 사회는 철인왕이 다스리는 공동체다. 도덕의 기본은 각자가 주어진 직분과 기능에 충실한 데서 출발하되(‘전문성의 원칙’), 대중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주된 책임은 도덕과 선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자 왕에게 주어진다. 가령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는 동굴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현실로 착각하며 평생을 사는 보통사람들과, 과감히 바깥세상으로 나와 태양이 비추는 만물의 실상(reality)을 경험하는 철인왕이 대비되어 있거니와, 가족, 재산 등 사적 삶을 포기한 채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추구해야하는 철인왕은 다시 어두운 동굴로 돌아가 미망을 벗어나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하는, 지난한 작업을 수행해야한다. 우리의 남루한 자화상 개체적 소비자가 부상할수록 공동체적 시민은 추락하기 마련이다. 이방 족속에 종살이하며 산지사방으로 쫓겨 다니던 때가 엊그제인데, 비교마저 민망한 한국의 난민수용 실태 앞에서도 상투적이고 구차한 변명으로 난민 반대를 선동하고, 장애인시설 하나 들어서려면 저마다 머리띠를 두르고 필사적인 ‘항전’에 나서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재건축대상 아파트주민들의 토론방에는 가격담합과 임대비율축소를 위해 뭉치자는 욕망들이 날 것 그대로 들끓는다. 약자에 대한 멸시와 강자에의 동경이 일상화되면서, 우리 의식은 자연스럽게 가해자 문화에 동화된다. 재벌행태를 비난하면서도 내 자식만은 대기업의 일원이 되길 불철주야 선망하며, 불로소득자를 향한 도덕적 질타는 일확천금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욕망들과 한통속으로 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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