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외국어
1954년 3월 태평양의 비키니환초(環礁)에서는 오퍼레이션 캐슬(Operation Castle)로 명명된 미군의 수폭실험이 있었다. 이 때 부근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의 참치 잡이 어선 후쿠류마루(福竜丸)호가 방사능 낙진을 뒤집어쓰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배에 탑승했던 쿠보야마 아이키치(久保山 愛吉)라는 40세의 무선담당 선원은 반년 만에 사망하면서 “원수폭(原水爆)피해자는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일본 반핵운동의 동기가 된 이 사건(정식명칭은 第五福竜丸사건)은 일본현대사에서 아주 유명하다.
필자는 영어로 이뤄지는 일본 현대사 수업에서 이 내용을 들은 바 있다. 기후대학에서 오신 교환교수는 “후쿠류마루 민즈 하피 드라곤”(fukuryumaru means Happy Dragon), 밧 잇 워즈 놋 하피(but it was no happy) “사든리 곳 샤와드 위드 뉴클리어 아시즈”(suddenly got showered with nuclear ashes)라고 설명했다.
일본인 특유의 발음에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오자 교수는 화가 났다. “아이 애무 놋 아뮤즈망”(I am not amuseman)
일본인들이 맥아더를 ‘마카사’. 맥도날드를 ‘마쿠도나루도,’ Something like that을 ‘사무싱 라이쿠 잣토’로 말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은 일본인의 어학실력을 깔보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광개토대왕함이 일본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사한 것을 둘러싼 논쟁에서 일본 자위대의 영어 발음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 것도 그 사례다.
사실 일본인들의 외국어 발음이 고쥬온쥬(五十音圖)의 한정된 모국어 발음에 갇히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분명히 약점이긴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보면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정치지도자만 봐도 그렇다. 현재 일본 외상인 코노 타로를 보면 뛰어난 국제감각과 함께 아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유창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 말을 위트있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언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의 성 아베(Abe)는 에이브러햄(Abraham)의 애칭 에이브라고 우스개소리를 한 적도 있다.
일본인들은 정치지도자의 어학실력을 큰 장점으로 높이 평가한다. 예를 들어 이와테(岩手) 현 사람들은 하라 타카시(原敬 프랑스어에 능통 : 카톨릭에 귀의해 세례를 받고 프랑스 신부로부터 배운 어학으로 외무성에 들어가 프랑스 관련 업무에 주력했고 불청(佛淸)전쟁시 톈진에서 활약>, 사이토 마코토(斎藤実 영어에 능통 :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워싱턴 공사관 무관으로 활약>, 요나이 미쯔마사(米内光政 러시아어에 능통 :현지에서 러시아어를 배워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라스푸틴 비록을 번역하기도했으며 전화응대를 할 수 있는 이가 요나이 밖에 없었을 정도로 능통>같은 이들이 젊은 시절 어학으로 국가에 봉사하다 나중에 총리에까지 오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세계를 이해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일본인들의 어학 학구열은 대단했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사전도 학습서도 없었다. 한학에서 시작해 난학을 거쳐 영어를 마스터한 와세다 대학의 설립자인 오오쿠마 시게노부, 한학과 중국어에 능통해 청나라의 삼궤구고두 요구를 좌절시킨 외교관 소에지마 타네오미, 클라우제비츠의 두꺼운 전쟁론을 일본어로 번역해 러시아와의 전쟁승리에 이바지한 문학가 모리 오가이 등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물론 일본인 특유의 고쥬온쥬(五十音圖)의 약점도 있다.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전설적인 스파이 아라오 세이의 경우 능통한 중국어로 정평이 높지만 권설음(Curled Tongue)이 제대로 안 됐었는지 스파이인 것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하면 복건성이나 절강성 출신이라 둘러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인의 중국어는 특색이 있다 워쓰르번렌(我是日本人woshiribenren)의 권설음 쓰(是shi)발음이 안 돼 열이면 열 ‘씨’로 발음한다. 중국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는 발음 포인트다.
또 러시아어에서 흐루쇼프(Khrushchev / Хрущёв)의 키릴 알파벳 ‘щ’를 일본어로 표기할 방법이 없어 ‘쉬챠’로 표기해왔다. 사실 ‘щ’의 음가는 Danish Cheese의 ‘shch’에 해당하는 발음이라 ‘흐루쉬쵸프’라고 침을 튀길 필요 없이 한국어로 옮기자면 ‘흐루쇼프’가 더 실제 발음에 가깝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흐루쉬쵸프라 표기해온 것은 일본의 영향이다. 한국의 서점에서 현대00어, 최신00어란 표제가 붙은 어학교재들은 대개 현대, 최신과는 정반대로 일본의 옛날 교재를 카피한 ‘구닥다리’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인들은 위와 같은 발음상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열심히 배운 어학으로 근대사에서 세계를 움직여왔다. 일본은 지금도 선조들의 국제 감각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한층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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