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스크랩] 좌충우돌 우리 가족의 필리핀여행기를 올리면서......(제1편)

도보사랑 2012. 9. 7. 08:28

2010년 연말을 맞아 우리 집의 귀염둥이  막내딸인 가영이가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생(京安高)이 되는 것을 기념도 할겸해서 우리 가족은 평소에 꿈꿔왔던 가족만의 해외여행길에 나섰더랍니다.  2010년도 다가는 12.29일부터  2011년 1월1까지의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이를 기념하는 여행기를 써봤기에 연작으로 블로그에 올려보고자 하오니  이곳의 방문객들께서는 필리핀을 우리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는 생각으로 어떤 부담감도 없이 그냥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충우돌가족의 필리핀 여행기 제1편. -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 가족들은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것처럼  실패의 연속을 겪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오는데 먼저 아내의 입장부터 말하자면 남편인 나를 잘못 만나버린 것 같으며, 애들도 아빠를 잘못 만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평소 불도깨비같이 화급한 성격에 앞,뒤 구분없이 일이나 펑펑 저지르므로서 가족들을 도탄지경에 빠뜨릴 뻔 했던 적도 있었고 이번 여행도 어쩌면 나 때문에 망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안고서 그 개연성의 시발점으로만 여겨지며 시도 때도 없이  자주 틀어댔던 방구소리에서부터  벌써 망쪼들 그런 조짐은 시작되고 있었는데  만약 나 때문에  즐거워야 할 가족여행이 좋은 추억이 되질 못하는 경우라도 생길까 봐서 미리 근신하자는 의미로 이번 여행기의 제목은 약간 자신을 비하하는   "충우돌 가족의 필리핀 여행기."로 명명했음을 먼저 밝히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아내와 함께 호두레라는 모임의 부부회원들과 어울려 베트남북부지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지 불과 한달만에 다시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도 비난일색이요, 거기에 시새움까지 섞여서  난리굿들을 피워댄다.  

 평소 점쟎은 편인 필기네 가족들마저도  "형님네는 참 잘나가시네요."라면서  부러운  눈치를  보내왔다.      

그리고 오죽하면 우리 경찰서장도 내가 해외여행 목적으로 휴가결재를 올리자 이런 연말 비상시국에 정말로 여행을 가는 것이 틀림없는 거냐는 확인전화까지 따로 해올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번 가족여행은 지난 여름부터 우리  큰딸 가을이가 직접 기획을 하고  현지조율및 인터넷에 조회를 하는등으로 비행기와 호텔까지 미리 예약을 하므로서  패키지여행이 아니고 순수한 가족만의 여행을 준비한것이니 내가 직장문제를 들어 여기의 일정에서 빠지겠다라고 한다면 가족의 성원이길 더이상은 거부하겠다는 것이나 매양 한가지일 터였다. 

 가을이는 몇년전에 캐나다로 언어연수를 가는데 있어서 비용절감도 할겸, 같은 영어권나라라는 필리핀에서 저렴한 가격에  미리 몇개월간을 머물면서 영어를 익힌다고  체재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1 :1로 영어교습을 담당했다던 필리핀 여성과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아왔는데 그 여성이 한국에 초청만 해달라는 것을 듣고  여러곳에 절차를 물어서 초청장까지 보냈었지만 여권발급시 우리 돈으로 1천500만원가량을 예치시켜야만 출국이 가능하다고 하므로 포기를 하고 그 대신에 우리 가족이 필리핀에 오면  관광안내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번 우리 가족여행의 시발점으로 되었던 것이다.   

예치금을 맡기는 이유라는 것도 알고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보다 훨씬 국민소득이 높았던 필리핀이 악덕정치가인 마르코스와 이멜다부부에게 국부(國富)의 태반을 도적질 당하여 나라가 가난속에 빠지게 되었고 공산게릴라에 의해서 불안해진 정정하에 필리핀 국민들이 모두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겠다면서 거의 엑소더스현상까지 일어나게 된  지경에 한국에 관광목적으로 초청을 받았다는 사람이 돈을 벌겠다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는 사례를  우려하여 위약금조로 미리 예치금을 받아둔다는 것이었다. 

그러길래 무조건하고 국가는 부강(富强)하고 볼일이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국민소득이 높았던 적이 불과 30년 이쪽 저쪽이며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필리핀이라면  막사이사이라는 걸출한 위정자의 이름을 딴 국제적인 상(賞)도 있고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술이름을 우스개소리로 막사이사이라고 말하며 비교적  잘사는 나라로만 알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그리고 서울경찰로 근무를 할때 가봤던 장충체육관이란 건물도 필리핀에서 당시 최빈국(最貧國)이던 우리나라에 무상으로 지어준 건물이기도 했으므로  국가의 인지도가 우리같은 장년층에겐 꽤나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군사혁명 과도정부시절에 박 정희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은 필리핀에 국가원수 자격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더라고 했다. 

그런데 마르코스는 공항에 직접 마중은 고사하고 장관급사절조차도  영접관으로 보내주질 않았다고 한다.

이는 국빈대접이 아니고 그저 가난한데다가 미래마저 불분명하며 신생독립국가의 군사혁명 과도정부 수반에 대해서 국빈대우를 사실상 거부해버린 처사였는데 그 배경은  일본(- Jap) 같은 호전적인 나라의 오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미래가능성마저  하챦게 평가해버린 것이기도 했다. 

내가 봐도 국토는 반동강났지, 국민소득은 겨우 80불정도 밖에 안되는 최빈국가 대열(最貧國家 帶列)이니,  어느 한군데 국가원수로서의 대접을 기대할만한 위치도 못되었다. 

박정희는 그런 수모를 당하고 나서  서독파견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흘린 땀과  간호사들은 독일인들의 시체(屍體)를 닦으면서 흘렸던 눈물에다가  베트남 파병용사들의 죽음의 용병(庸兵)댓가등을 착실히 국가 기간산업의 육성과 국력신장의  밑거름으로 투입하여  오늘의 한국이란 나라를 만든것이니  당시의 피눈물이 모여서 토대가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보면 될것이다.  

마르코스,이멜다 부부의 정경유착과 부패는 극(極)에 달하여  스위스은행에 비밀금고설치는 물론이고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릴 길도 없고 이멜다의 말라카냥궁을 최초로 접수했던  사람의  눈에 여자구두만 3천켤레나 되더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데 스위스은행의 비밀예치금들은 다행히도 국제여론에 밀려서 전액 필리핀 국민들에게 환수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박정희도 처음에 혁명을 일으켜서 시작했던 때와는 달리 말년에는 스위스에 비밀금고를 만들어 빼돌렸던 재산이  꽤나 많았다는데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후  이를 전두환이 맨먼저 청와대를 접수하고 비밀금고를 발견하여 한푼도 안주고 다 떼어먹으려던 스위스은행측과 비밀리에 협의를 한 끝에  겨우 반타작이나마 나눠가졌다고 하니 대통령자리를 오래 해먹으면 처음의 깨끗하던 초심이 오래 고인 물처럼 흐려지는 것은 당연지사인가 보다.

우리들의 이번 여행이 당초 가을이의 필리핀 체재당시 원어민 영어교사였던  뱁스(Baps는 애칭, 27세, 결혼 1년된 기혼녀)의 초청형식이라고는 했지만  당초부터 뱁스가 우리의 여행경비를 조달할 능력도 없으며 아마 우리가 그들 부부간의 동행경비까지 모두 조달해야만 될 참이었고 그것 또한 당연시 되는 것도 그곳의 풍토라는 가을이의 사전 설명이 있었기에 이해는 갔다.   

 필리핀은 7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져있고  따갈로라는 통일된 국내공용의 언어이외에도  각섬에서 사용하는 말이 섬숫자만큼인 7천여개나 되고  국민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치므로 각급의 학교를 다소라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마닐라(메트로 마닐라를 稱함)가 있는  가장 큰섬은 루손으로서 면적이 무려 10만 4천제곱킬로미터나 되며 그보다 약간 작은 민다나오도 남한면적에 육박하고 나머지 섬들의 함계도 역시 그만하다니 우리나라의 1. 5배 면적에 인구수는 1억명정도이고 메트로마닐라시(市)는 수도로서 뿐만이 아니고 필리핀을 대표하는 상징적 대도시인데다가 인구만도 1천만명이 넘는단다. 

우리가 어려서 배운 바로는 필리핀의 수도이름이 캐손시티라고 했는데  이는 거대도시 메트로마닐라 안에 있는 일정구역의 명칭일 뿐이다. 

아마 이번 여행은 루손섬내에서만 이루어질 것 같다. 

19세기 말경 일본과 미국간에 가쓰라, 테프트 밀약(密約)이라는 국제 비밀협약이 있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그 대신에 미국은 오랜 기간동안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점령하자는 약속이었는데 결과는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이가 벌어진 양국간에 있어서는  다시 일본 본토를 점령하느냐 마느냐하는 단계까지 갔고 덕분에 우리나라와 필리핀이 독립한 것이니 역사는 영원한 동지도 없고 적도 없으며 그때 그때마다의 시대적 이권에 따라서 돌고 돈다고 평가해야겠다. 

이후의 역사에서 필리핀 출신의 여자가 미스 유니버스에 등극한 적이 많으니 미국식민지 시절의 종자개량(種子改良)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뱁스부부간 이외에도 필리핀에 가면 여자 한명이 더 합류를 할것이라고 했다. 

가을이의 고등학교 2년 선배로 한양대학교 공대 교통공학과를 졸업한 김 현미양(27세, 필리핀 언어연수중)을 말하는 것인데 전에 우리 집에도 왔다 갔다 한적이 있어 내 귀에도  이름이 친숙하며 가을이가 한때는 현미에게서 영어, 수학과목을 배웠던 적도 있는 과외교사신분이기도 했었다. 

김 현미양은 우리 큰애인 종재와 동갑으로서 올해 스물일곱살인데 공부를 더하고 싶어서 다니던 직장에 사직원을 내고 언어연수및 대학원진학에 나선 것이라니 당찬 신세대여성이다. 

참으로 미래지향적인 의지가 강한 아이인데  다만 시기로 봐서 학업을 연장하는 나이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제 때에 학비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필리핀에 도착하면 급기야  7명이라는 대가족으로 불어나는데  우리 부부에겐 모두가 스물일곱살 이하(以下)짜리들로서  자식이나 같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준비사항 가운데 한몫을 톡톡히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으로 이름이 "디올"이였다.  

얘는 이름만 명품족(名品族)의 반열이며 영국의 종자개량전문가들이 탄생시킨 요크셔테리아종이지만 행실은 그야말로 개차반이다.  

 가을이 친구가 줘서 강아지때부터 5년간 우리집에서 길렀는데 2킬로그램도 안되는 체중이며 똥, 오줌도 못가리고 딴집에 가면  밤새 끙끙거려서 가족들을 피곤하게 하므로 돌봐달라고 남에게 부탁하기도 민망하다. 

그리고 연말에다가 연휴가 끼어서 동물병원에 맡기기도 힘들어  사료를 왕창 줘놓고 문은 열어놓은 뒤 과감히 집에 혼자 놔두고 여행을 갔다오기로 했다. 

아마 집에 와서는 발을 디딜 곳조차 마땅하지 않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구나,  이놈의  똥강아지 새끼야. 

 

 2010년 12, 28일의 밤샘근무가 종료가 되었다. 

아침에 서장에게 잘다녀오겠다고 보고를 드리고  집에 왔더니 가영이가 방학을 하는 날이라 빨리 올것이고 아내도 빨리 퇴근을 하여 합류하기로 했다는 가을이의 설명이 있었다.  

마침 집안을 둘러보니  음식물쓰레기가 있고 며칠전에 걸러냈던 매실열매찌꺼기가  눈에 띄어 얼른 갖다가 버리고 왔으며 치과예약이 되어있다는 가을이를 병원에 데려다가 준 뒤 바로 체육관으로 가서 두시간가량 운동을 바쳤다.  

집에 오니 온가족이 종재만 빼곤 죄다 모였다. 

가족 모두가  하는 일들이 다르다보니 집에  모이는 시간조차도 좀체로 힘들지만  오늘은 모처럼 함께 모여 웃으면서 여행가방의 내용물들을 최종점검했다.  

점심을 먹자고 하는데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가을이와 나만 빼곤 다들 식욕이 나질 않는단다.  

벌써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포만감을 초래하나 보다. 

집에서는 콜택시를 불러서 안산터미닐까지 갔고 터미날에서 날씨가 추운 관계로 스넥코너에 들어가 감자구이와 오뎅국물로 간단한 요기를 했는데 감자가 덜익어 입안에서 쌀캉거리는 것이 다소 입맛이 달아났지만 그러거니하고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요금은  44,000원이며  안산역,시화지구를 거쳐 정확하게 오후 6시에 공항에 내려줬다. 

 미리 예약한 항공편인데  좌석번호까지 배정된 것은 아니었고 오는 순서대로 좌석을 배정하는데 우리가 다소 늦어서 한꺼번에 앉질 못하고 겨우  24번줄의 두좌석과 29번줄의 두좌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비행기가 정원이 180명인 소형이며 30번줄까지 있으니 거의 꼬래비 수준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별수가 있겠는가? 

예전에는 국적기인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만을 이용했으므로 별로 신경을 쓸것이 없었는데 이번에 필리핀에 갈 때 이용할 비행기는 제주항공사 소속으로서 탑승장소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인천공항내부에서도 탑승구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가야하는데 전철로도 한구간은 착실히 되는 거리여서 그런 것에 익숙한 가을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낭패스러울 뻔 했다. 

그렇게 해서 114번 탑승구까지 가서 우린 저가항공(低價航空)이라 기내식이 안나올지도 모른다면서 미리 밥을 먹어두자고 하고 돈까스와 전주비빔밥을 시켜서 먹고 가영이의 고등학교 입학기념선물로 가을이가  레스포삭이라는 상표의 가방을 30퍼센트 면세할인된 10만원에 사서 선물하고 나서야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누가 봐도 소형(小型)비행기였으며 옆에 서있는 필리핀항공사의 비행기에 비해서 꼬마덩치로 보였지만  그나마도 승객일부가 늦게 탑승을 하는 바람에 정시보다  5분 늦게서야  동체를 출발시켰다.  (좌충우돌가족의 필리핀 여행기 1편은 여기서 종료.  2편으로 계속)

출처 : ♥오로라의 향연♥
글쓴이 : 냉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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