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알아보자.
이들은 매일매일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최고라는 인식이 지배하며 달리 표현하자면 에브리데이 버라이어티의 삶이라고 축약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축을 한다는 일도 무의미하겠고 미래를 향한 설계라는 말은 개똥같은 이야기일 뿐이며 그날 번돈을 갖고 그날 얼마나 재미있게 즐기느냐 하는 것만 문제될 뿐이니 저금통장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은행에 가서 저금통장을 만들자면 최소한 2천페소를 예치해야 하며 그 정도는 늘 평잔(平均殘高)으로 유지를 해야하는데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란다.
뱁스의 남편도 아내가 버는 수입만으로 사는 무직자라는데 그런 자신의 처지가 걱정되는 표정은 아예 흔적조차 없었고 자기아내의 돈많은 한국인친구가 가족들과 함께 와서 돈을 쓴다니 따라다니면서 같이 즐겨준다는 식이다.
뱁스는 남편이 뭘하느냐고 묻자 하룻내 농구를 하며 지낸다고 하였는데 그런 것이 하나도 걱정이 되질 않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우리 말로 푸시기(마구 퍼주는 사람)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지천에 널린 것이 담배행상이나 지푸니등을 운전하는 일감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놀면서 아내가 버는 돈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남자로서 쪽팔리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은 아닐까?
오늘 빌려서 사용하게 된 렌트카의 비용명세서를 보기로 하자.
총 3,600페소(약 10만원가량)인데 차량비용이 2천페소, 기름값이 1천페소, 운전기사 팁이 500페소, 운전기사 밥값이 별도로 100페소이며 이용시간은 08 : 00부터 20 :00까지이다.
그리고 고속도로이용료나 기타의 잡비등도 물론 우리가 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돈가치로 환산한다면 별것도 아니겠지만 필리핀 현지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분명 큰 돈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을 상대로 1 : 1수업을 하는 교사라면 분명히 정신노동자이며 고임금소득자일텐데 그들의 1시간 강의료가 55페소에서부터 70페소까지라고 한다면 알만하지 않는가?
사람들의 피부색도 거의가 검은 편인데 태어날 때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지금같이 추운 ? (지금이 겨울에 해당하며 평균 27 -29도 정도) 때가 아닌 한여름철에 작열하는 태양광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면 검은 쪽으로 탈색이 쉽게 진행되어버린단다.
그러니 지금도 부자들은 에어컨을 켜놓고 집안이나 찻속에서만 지내기에 피부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색깔이 하얀사람을 보면 거의 부자라고 생각하면서 맹목적으로 존경해버린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가수나 배우도 덩달아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의 연속극이 영어자막과 함께 케이블TV로 방영되면 거기에 매료되어 사죽을 못쓴다는 것이다.
현미는 방영되는 연속극이 우리나라와는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나므로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알아낸 내용을 알려주어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체류기간이 겨우 한달째이면서도 주위의 필리핀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했다.
그리고 필리핀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경찰국가(警察國家)라는데 경찰이나 이민국에 밉보이면 아주 거덜이 나버릴 정도로 참혹한 피해를 본단다.
한국인상대(相對) 어학원 어떤 곳이 가령 밉보여서 경찰이나 이민국에서 단속하는 것을 보면 기가 질릴 정도라는데 영업허가를 취소하거나 종사원을 구속시켜버리는 것 정도는 다반사이고 심지어는 포클레인을 가져다가 학원건물을 죄다 부숴버리는 경우도 있고 한국인 학원생까지도 잡아다가 학원이 문제가 있으니 너희들도 범법자라는 이유를 대면서 며칠씩 영창까지 보내버린다는 것이다.
필리핀은 국토면적이 결코 작지 않지만 농산물등의 1차산업이 주업이며 공산품은 거의 수입을 해다가 쓴다는데 차량은 주로 일본제품이며 간혹 우리나라의 차량도 들어와 있고 길에 나가면 현대나 쌍룡의 간판도 가끔 눈에 띤다,
하지만 도로를 새로 만들어주면서 그에 대한 옵션으로 차량을 끼워서 팔아먹는 일본의 상술에 비하자면 아직까지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일본차는 오토바이와 함께 거의 필리핀 전역을 점령하다시피하고 있다.
혼다, 도요타가 압도적으로 많고 미쓰비시, 한국의 현대차량이 뒤를 따르는 형국이니 차량만 본다면 여긴 필리핀이 아니라 일본과도 같다.
오늘 새벽에는 기억이 어슴프레하나 호텔에서 자다가 얼핏 닭우는 소릴 들은 것도 같은데 웬 총소리는 그렇게 자주, 그리고 크게 들리는지를 모르겠다.
현미의 말로는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날때까지는 계속해서 폭죽놀이를 하거나 공포탄을 쏴댄다는 것이니 그것도 축제의 일환이라면 여행시기를 잘못 선택한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겠다.
공포탄소리와 함께 어딜 가나 들리는 것은 캐롤송이다.
아니, 필리핀의 고유한 명절도 아니겠고 수입명절에 불과한 크리스마스가 끝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캐롤송이란 말인가?
히든밸리로 가는 길에는 고속도로를 경유하기도 하는데 구간이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는 모르나 통행요금으로 편도 87페소(2,600원가량)를 지불하였다.
어찌나 빨리 차를 몰고 추월도 자주 하는지 처음에는 운전기사가 화를 내는 것인가 싶어서 불안하기도 했는데 고속도로를 벗어나서도 기회만 생기면 추월을 하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자주 있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 금새 만성이 되어 버렸다.
원인은 교통기관의 종류가 가지각색이며 오토바이나 지푸니, 테디캡, 버스까지 뒤섞여서 편도 1차선의 길로 달리므로 구조적으로 교통체증이 날수 밖에는 없는 탓이었다.
거기에다 오전 10시경부터는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차창밖으로는 농촌풍경이 나오는데 논에서는 무릎크기로 자란 벼들이 넘실거렸고 대부분의 땅들은 나무가 멋대로 자라거나 풀이 무성한 황무지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몇시간을 달려도 산(山)이 보이질 않는 평야지대이지만 문외한인 내 눈으로 보기에도 땅을 이용하는 효울성은 거의 제로 상태로 보였다.
필리핀에서는 주로 대가족제도가 많이 운용된다고 하며 도시에서는 편의상 핵가족이 있기도 하나 아직도 시골쪽으로 가면 가족이 2 -30명씩 모여서 한집에 산다고 하였다.
그러니 장남 한명만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가족은 장남에게 의지하는 형태로 살아가며 장남은 그런 댓가로 평생을 가족 부양의무를 지는데 시급(時給)으로 55페소를 받으면 자신은 15페소만 쓰고 나머지 전액을 고향으로 무조건 송금부터 해버린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삶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서 늘 웃는 표정이며 가족간의 정리는 전형적으로 동양적인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도통 바쁜 것을 모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태평하다가 보니 개나 고양이마저도 사람들의 행태를 닮고 심지어는 집에서 기르는 닭들도 마찬가지였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겨울철에 먹을 것과 입을 것, 땔감등을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생활방식의 기초적인 인식마저 다른 것이다.
개도 내리는 비를 다맞으면서 뛰는 법이 없이 게으르게 걸어다니고 고양이는 멈춰선 차량밑에서 쓰레기 봉지를 물어다가 놓고 먹을 것을 뒤지다가 그걸 베게삼아서 잠을 자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며 닭들은 비를 맞으며 비맞은 장닭꼴로 나무 밑에서 졸고 있다.
주변환경을 종합하자면 갑자기 멈춰버린듯한 정물화나 풍경화의 그림형태로 보인다.
이건 현미의 술회인데 메이커제품인 스타벅스커피를 기호품으로 자주 즐겨서 한국에서도 자주 사마셨고 여기에 와서도 버릇이 되어 150페소를 주고 자주 사서 마셨는데 하루밥값에 해당하는 커피를 마시는 현미를 보면 동네거지들이 "럭셔리, 리치."라고 외치면서 줄줄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특정의 커피상표가 부자(富者)라는 인식으로 아예 체화(體化)되어 있는 것이리라.
현미도 여기에 와서 이제 겨우 한달째인데 벌써 택배로 오게 되어있는 물건을 배달받지 못하는 배달사고의 피해까지 당한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우편배달이 제대로 전달되지도 못하며 심지어는 비행기 수하물속에 들어있는 노트북이 감쪽같이 사라져도 원인규명이 안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사람조차 없다.
히든밸리로 향하는 길목에는 토란대 비슷한 식물, 머위종류, 칸나꽃이 흔하게 서있고 가로수는 거의가 코코낫,야자, 바나나등으로 되어있었다. (제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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