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진해함 1박 2일 르포

도보사랑 2013. 3. 26. 14:54

2013.03.26 03:03


"영원히 천안함 잊지 않겠다" 곳곳에 사진·표어 붙여놓아
故민평기 상사 유족이 기증한 '3·26 기관총' 함미 양쪽 배치
전역 30일 남은 말년 병장도 "동료 두고 바다 떠날 수 없어"

지난 21일 밤 9시 22분 서해 연평도 남단 20㎞ 해상에서 진해함이 적(敵)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가정한 훈련에 돌입했다. 어뢰를 탐지한 함정은 TACM(어뢰 기만기)을 바닷속에 투하하고 전속력으로 어뢰 반대쪽으로 나아갔다. TACM은 함정보다 더 큰 소음을 내서 어뢰를 교란한다. 3년 전 천안함이 어뢰를 피하지 못하고 당한 뒤 서해 최전방 NLL(북방한계선)을 지키는 군함에 설치된 장비다.

3년 전 천안함 상황을 짐작해보기 위해 갑판 위로 나섰다. 순간 눈을 감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구름이 달을 가린 밤바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감(五感)으로 알 수 있는 건 발밑에서 올라오는 파도 소리와 체감 온도를 영하로 끌어내리는 바람뿐이었다. "천안함이 공격당한 직후가 이런 상황이었겠지요. 사방이 어둠뿐이고, 함정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바닥과 벽이 뒤바뀌었어요. 죽음의 공포만 남은 상황에서 그들은 망치로 문을 부수고 동료들을 구했습니다. 왜 58명밖에 못 살렸느냐고 하지만, 사실 58명이 산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김영규(42) 소령이 말했다.

1200t급 초계함 ‘진해함’에 승선한 해군 장병들이 21일 오후 함미에 장착된 ‘3·26 기관총’으로 훈련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같은 1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과 진해함은 1987년부터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를 오가며 NLL을 지켰다. 진해함에는 천안함 사진과 '우리는 영원히 천안함을 잊지 않겠다'는 표어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진해함 함미(艦尾) 양편에는 '3·26 기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은 총이 배치돼 있다. 3월 26일 고(故) 민평기 상사를 잃은 어머니 윤청자(70)씨가 막내아들 사망보상금을 기증해 마련한 총이다.

병사들 가슴에는 천안함의 흔적이 더 또렷하게 남아 있다.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고(故) 최한권 원사와 20년 지기인 김동환(42) 주임상사는 "20년 전 입대했을 때 그 무서웠던 선임 중에 따뜻하게 후배들을 대해준 사람이 최 선배였어요. 힘든 일 있을 때마다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 준 선배가 너무 그립습니다"라고 말했다. 진해함의 유일한 여군 최은영(28) 대위는 임관 후 처음 배치됐던 독도함에서 천안함 전사자 신원 확인 작업을 했다. 그는 "처참한 동료들의 시신, 오열하는 가족들은 내가 살아온 나라가 이런 곳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며 "세상을 떠난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이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라고 했다.

천안함은 '병장이 많은 배'였다. 수병(水兵) 전사자 16명 중 병장이 6명이나 됐다. 해군은 6개월 이상 배를 타면 육상(陸上) 근무로 옮길 수 있다. 한 번 출동 나가면 15일 가까이 바다 한가운데 좁은 배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많은 병사가 육상 근무를 지원한다. 그러나 천안함에 탔던 병사들은 끝까지 배에 남길 원했다. 왜였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 어뢰 대피훈련… 지난 21일 오후 9시 22분 진해함. 3년 전 3월 26일 천안함이 어뢰를 맞은 시각에 맞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가정한 훈련이 시작되자 장병들이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채승우 기자
천안함과 똑같은 함정인 진해함에 그 답이 있었다. 밤 11시, 진해함 함미에 있는 침실에 당직 근무를 마친 병사 4명이 들어섰다. 침실은 높이 2m의 3층 침대가 닭장처럼 가득 들어차 있고,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통로엔 빨래가 빼곡히 널려 있었다. 천안함의 이 침실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한 16명이 숨졌다.

전역일이 30일 남았다는 김규민(21) 병장이 침대에 과자를 꺼내놓자 다른 병사들이 침대 앞에 모여 앉았다. 왜 육상 근무를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김 병장은 "파도가 심해 잠을 못 자는 이등병들을 볼 때마다 내 이등병 시절이 떠오른다"며 "힘든 조건이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한 동료들이 있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리병인 조범희(21) 병장은 "천안함에 탔던 조리병들이 많이 죽었다. 우리는 같이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공동체인 셈"이라며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가족 같은 이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6시 30분 평택항으로 돌아가는 진해함 갑판에서 장재현(23) 일병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장 일병은 천안함 사건을 보고 해군에 지원했다. 장 일병은 "위험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며 "각오 단단히 했지만 첫 훈련 때는 정말 긴장되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바다 한쪽이 붉게 물들더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장 일병은 "해 뜨고 지는 것만 100번은 본 것 같다. 평생 볼 해돋이 다 보고 전역하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