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잠복과 색계, 타이완 해협의 첩보전

도보사랑 2018. 12. 25. 15:35


잠복(潛伏)과 색계(色戒) 타이완 해협의 첩보전

 

11월 24일 치러진 타이완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대패했다. 타이베이는 무소속이지만 친공색채가 강한 커원저가 차지했고 까오슝은 국민당의 한궈위가 당선됐다. 수도와 남부 제1의 항구도시인 까오슝을 장악하지 못해 2020년 민진당의 연속집권은 상당한 장애를 겪을 전망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여러 이슈도 공투(公投)에 붙여졌는데 동경올림픽을 타이완의 이름으로 참가하자는 동아오쩡밍(东奥正名)은 좌절됐다. 하지만 탈 원전 반대와 동성애반대는 통과됐다.

 

동아오쩡밍은 타이완에서 중화, 중국 등 대륙과 연계된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타이완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자는 제 3의 정치세력 시러다오연맹의 구호였는데 이번 투표결과로 급격한 독립의 움직임은 일단 좌절됐다.

 

타이완의 독립움직임을 주시하던 중국으로서는 일단 1승을 거둔 셈이다. 지방선거전 중국은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의 댓글부대인 이른바 쥐머공장(巨魔工廠)을 가동했다. 페이스 북과 유튜브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영상을 띄우고 댓글을 달았다.

 

타이완선거에서 민진당이 대패함으로서 차기 집권에는 빨간불이 켜지긴 했지만 중국의 무력침공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2020년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친중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커진 이상 당장 무력도발을 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타이완 해협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1954년의 9.3 포격과 1958년의 금문도 포격에 이어 실제로 전쟁까지 갈 뻔한 사례는 1996년이었다. 1996년에는 리덩후이가 타이완 최초의 민선총통선거에서 당선된 해였다. 당시 중국은 해협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는데 여차하면 실제 군사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준비했다. 실제로 시신을 담을 흰 포대까지 준비하고 해협중간선을 넘어서는 실탄사격과 잠수함을 동원해 도서를 점령하는 작전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이 같은 작전계획정보는 3개월전에 타이완 군정국(軍情局)에 흘러들어갔다. 중국인민해방군의 총후근부(總後勤部)부장 류롄쿤(劉連昆)소장이 정보를 넘겨줬기 때문이었다. 류롄쿤은 7년동안 타이완의 스파이였다.

 

류롄쿤이 넘겨준 극비정보는 미국에도 전달됐다. 미국은 필리핀 근해의 인디펜던스 항모전단을 파견했다. 그런데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페리는 1개 전단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페르시아만의 니미츠 항모전단까지 추가로 파견한다. 두 개 항공모함 전단이 타이완 해협에 파견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미국이 군사적 압력을 가하자 중국은 전쟁까지 불사한다던 기존 작전계획을 수정해 미사일은 타이완 본섬을 넘어가지 않으며 전투기와 군함은 해협중간선을 넘지 않는다는 3불 원칙을 정한다.

류롄쿤 소장은 이 같은 중국의 작전계획 수정안도 타이완 군정국(軍情局)에 넘겨주는데 리덩후이 총통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전쟁의 공포에 질린 타이완 국민을 안심시킨다면서 공개석상에서 중국의 미사일은 공포탄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리덩후이의 실언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방첩기구는 기밀누설자 색출에 나서게 되고 오랫동안 타이완에 정보를 제공하던 류롄쿤은 체포돼 사형에 처해진다.

 

류롄쿤은 타이완의 스파이가 될 당시 타이완군 소장계급을 부여받고 이에 상당하는 봉급까지 받아왔다. 그래서 그는 양안에서 동시에 소장(少將)대우를 받은 전설적인 스파이로 남아있다.

타이완 국방부 군정국(軍情局)에는 장개석의 특무대장이었던 다이리(戴笠)의 이름을 딴 다이리기념당(戴笠纪念堂)이 있다. 이 기념당의 2층에는 충렬당(忠烈堂)이라고 해서 첩보활동을 하다 희생된 이들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 있다. 2018년 이곳의 개수공사가 완공됐을 때 차이잉원 총통도 무명의 영웅들을 위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우리는 역사가 기록된 백지(白纸)‘란 휘호가 벽면에 적혀있는 충렬당에는 리덩후이의 실언으로 대륙에서 체포돼 처형된 류롄쿤의 위패도 봉안돼 있다.

 

중국이 심은 타이완 군부내 거물 스파이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타이완 국군의 통신전자정보처장으로 9년 동안 타이완과 미국간 군사네트워크 프로젝트와 육군의 광케이블 통신망 분포도를 중국에 넘긴 뤄센저(羅賢哲) 소장 사건이다.

 

뤄는 태국 주재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중국국가안전부의 동남아 소조의 미인계에 넘어가 거액의 달러를 받고 정보를 넘겨오다 미국 FBI에 꼬리를 밟혀 타이완에 넘겨져 2011년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고 무기수로 복역중이다.

 

타이완 해협의 전쟁위기를 막은 류롄쿤은 오랫동안 중국내에서 암약했다고 해서 국공내전시기 첩보전을 그린 TV드라마 쳰푸(潛伏)에 비유되고 뤄셴저는 미인계 협박에 중국스파이가 됐다고 해서 탕웨이가 주연한 영화 색계(色戒)의 현대판으로 불린다.

 

타이완 양안의 첩보전은 국공내전과 국민당의 타이완 패주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주 스토리가 다양하다. 시대가 흐르면서 달라진 것은 휴민트위주의 첩보전에 SNS를 적극활용하는 사이버전으로까지 영역이 확대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