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龍馬)를 벤 남자 이마이노부오(今井信郎)의 회심(回心)
“사쯔마가 원하는 것은 쌀이고, 쬬슈가 원하는 것은 무기다. 서로 원하는 것은 다르지만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생각은 같다.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 합심해야 한다” 사카모토료마는 이런 솔직한 표현으로 앙숙이었던 사쯔마와 쬬슈 두 번(藩)의 연합을 성사시킨다.
스스로 권력욕을 가지지 않고 솔직한 정면 돌파의 협상력으로 삿쬬연합을 이룬 사카모토료마와 관련된 이들 가운데는 신기하게도 크리스천이 많았다.
자식이 없는 그의 가독(家督)을 이은 사카모토나오히로(坂本直寛)는 이상세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삶 밖에 없다면서 기독교에 귀의한 이다. 홋카이도 아사히가와의 유곽철폐 운동을 벌이며 후반생을 전도에 바친 나오히로의 아들 나오유키(直行) 역시 크리스천이다. 홋카이도 개간과 전도라는 나오히로 부자의 유산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홋카이도에 여행을 가면 흔히 선물로 사오는 것이 하나바타케보쿠죠(花畑牧場)의 생 캐러멜’, ‘로이스쵸콜렛’이지만 스테디셀러로는 단연 이시야제과(石屋製菓)의 ‘시로이코이비토’(白い恋人), 롯카테이(六花亭)의 ‘마르세이 버터샌드’를 꼽을 수 있다.
롯카테이의 포장지에는 꽃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화가이기도 했던 사카모토나오유키(坂本直行)의 작품이다. 나오유키는 홋카이도 토카치지방에서 농업을 하면서 농민의 생활과 다양한 꽃과 나무를 그림으로 남겼다.
사카모토료마와 관련된 인물로 크리스천이 된 이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례는 료마의 암살범으로 알려진 이마이노부오(今井信郎)다.
사카모토료마는 1867년 오미야(近江屋)에서 쿄토미마와리구미(京都見廻組)에 의해 암살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에는 암살범이 신센구미인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이후 하코다테(箱館) 고료카쿠의 전투(五稜郭の戦い)에서 정부군에 체포된 이마이노부오가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자기가 료마를 암살했다고 자백했다.
사카모토료마 암살사건은 지금도 막말 최대의 미스테리다. 이마이노부오 범인설에 따르면 이마이노부오는 당시 현장에서 망을 봤을 뿐이며 정작 암살사건에 직접 관여했던 이는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또 이마이노부오는 형부(刑部)와 병부(兵部)의 조사과정에서 암살을 자백했다고 하는데 혼자 죄를 뒤집어썼을 가능성도 있다. 또 쿄토미마와리구미는 막부의 임시 경찰기구였기 때문에 암살에 관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마이노부오는 료마 암살범으로 처형당할 수도 있었지만 극적으로 금고형에 그쳐 목숨을 구하는데 사면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이는 사이고다카모리였다. 다카모리는 료마의 절친이었는데, 그가 왜 료마 암살범인 이마이노부오의 구명에 나섰을까.
상식적으로는 미스테리인데 호사가들은 사이고다카모리가 평소 지론으로 내세웠던 경천애인을 (敬天愛人)실천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경천애인은 유교사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이고는 성경을 읽고 있었으며 주변사람들에게 그 가르침을 전파했다고도 한다. 실제로 카고시마 난슈오(南洲翁)자료관에서는 ‘사이고다카모리와 성경책전’이란 전시회도 열린 적이 있다. 일본의 크리스천들은 사이고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이마이노부오의 구명에 힘쓴 것으로 믿고 있다.
목숨을 건진 이마이노부오는 시즈오카현 마키노하라(牧之原)로 보내진다. 이마이는 하쯔쿠라무라(初倉村)에서 개간사업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시즈오카에서 1871년에 미국선교사에 의한 전도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때 막부는 이 선교사를 암살하기로 하고 료마를 벤 이마이를 적임자로 선택한다.
이마이는 선교사를 베기 전에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일단 알고나 보자는 생각에서 성경을 읽게 된다, 이때만 해도 이마이에게 성경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식의 황당한 이야기로 이해됐다. 그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는 선교사를 베는데 칼을 더럽힐 수는 없다. 혼쭐을 내서 쫓아 버리면 그만이라 여기고 암살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우연히 시즈오카의 특산물인 차(茶)를 운송하기 위해 요코하마로 건너간 그는 요코하마해안교회(横浜海岸教会)에 들른다. 원래는 교회에서 어떤 황당한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설교가 감격으로 바뀌었다. 지금 듣는 내용이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느낀 것이다. 그는 시즈오카로 돌아가지 않고 요코하마에 머무르며 선교사를 찾아 자신의 생각을 고백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어 세례를 받는다.
독실한 크리스천이 된 이마이노부오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전신에 흘러넘친 살기는 사라지고 주변사람들을 섬기는 온화한 인격체가 된 것이다. 그는 마을 촌장이 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사쯔마와 쬬슈를 화해하게 하고 메이지유신의 기초를 만든 사카모토료마와 그의 후손들이 크리스천이 된 이야기와 료마를 벤 남자로 역사에 기록된 이마이노부오는 일본기독교계에서 선교의 영감을 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일본근대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인 사카모토료마의 암살범으로 각인돼 있는 이마이노부오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신기하게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이마이노부오가 실제로 료마를 베었는지조차 미스테리인데다 그가 크리스천이 되고부터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새로운 연고지인 시즈오카현의 문화 교육발전에 힘썼기 때문이다. 시즈오카현에서는 그를 현창(顯彰)하는 움직임도 활발하고 후손들은 그의 명예회복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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