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키도타카요시의 로멘스

도보사랑 2018. 12. 25. 17:10

키도타카요시(木戸孝允)의 로맨스

 

메이지유신삼걸(明治維新三傑)중 한명인 키도타카요시(木戸孝允)는 막말(幕末) 가장 아름다웠던 로맨티스트였다. 그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교토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게이샤 이쿠마쯔(幾松いくまつ)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한편의 연애소설이다.

 

이쿠마쯔는 14세 때 무기(舞妓)로 데뷔해 뛰어난 미모에 머리도 명석했으며 노래도 잘해 쿄토에서는 손꼽히는 게이샤가 됐다. 그녀는 어느 날 연회석에서 쬬슈의 번사인 카쯔라코고로(桂小五郎かつら こごろう: 키도 타카요시로 개명하기 전 이름)와 만나게 되는데 코고로는 곧 이쿠마쯔에 반한다. 그러나 당시 쿄토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이쿠마쯔에게는 그녀를 편애하는 부호가 있었다. 코고로도 그에게 질수 없어 큰돈을 써가며 그녀와의 자리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결정적으로 코고로가 그녀를 차지하게 된 데는 그를 따르던 이토히로부미가 칼로 그 부호를 위협해 쫓아낸 것이 가장 도움이 됐다. 천하의 한량이었던 이토히로부미가 코고로 대신 눈치껏 연적(戀敵)을 제거해 준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두 사람은 격동의 막부말기에도 변함이 없었다. 당시 급진적인 존황양이의 선봉에 섰던 쬬슈번(長州藩)은 1863년 8월 18일 막부, 아이즈번과 시가전을 벌인 킨몬노헨(禁門の変きんもんのへん)이후 조적(朝敵)으로 몰리고, 코고로 역시 막부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1864년 막부가 검법의 고수로 구성된 신센구미(新選組)를 시켜 존왕양이파의 번사들을 습격해 살해한 이케다야(池田屋) 사건이 발생할 당시 코고로도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해 도주하고 있던 차였다. 코고로는 넝마를 걸친 걸인행색으로 다리 밑에 숨기도 했는데 이때 이쿠마쯔는 주먹밥을 가져다주며 헌신적으로 그를 보살폈다.

 

한번은 신센구미(新選組)의 곤도이사미가 쬬슈번 번사들이 은거한 아지트에 들이닥쳤다. 이쿠마쯔는 코고로를 의류와 침구류를 넣어두는 나무 상자인 나가모찌(長持ながもち)안에 숨기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은 표정으로 샤미센(三味線)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집안에 들어온 곤도 이사미가 나가모치를 열라고 하자 그녀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안에 아무도 없으면 곤도상은 책임을 지고 할복 하실 겁니까. 그럴 각오가 섰다면 열어보시오.” 너무나도 당당한 이쿠마쯔의 일갈에 곤도이사미는 움찔하며 발길을 돌렸다.

 

이후로도 몇 년동안 코고로는 가명을 써가며 고물상주인 행자승등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이쿠마쯔는 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기지를 발휘한다.

 

코고로는 메이지 원년인 1868년쯤 부터 이쿠마쯔와의 결혼방법을 두고 친구들과 상의한다. 당시 무사와 게이샤와는 신분차이가 있어 결혼에는 큰 장애였다. 그래서 그는 이쿠마쯔를 쬬슈지역의 번사인 오카베토미타로(岡部富太郎)의 양녀로 만든 뒤 토쿄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을 위해 일종의 신분세탁을 해준 셈이다. 이때 카쯔라코로로는 키도 타카요시로 개명한 상태여서 그녀도 이름을 아예 키도마쯔코(木戸松子)로 바꾼다.

 

결혼 직전 두 사람은 키노사키(城崎)온천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본최초의 신혼여행이다. 키도타카요시는 메이지정부에서 출세가도를 걷게 되는데 공사다망했던 그의 곁에는 늘 마쯔코가 있었다. 타카요시에게 마쯔코는 어려웠던 시절 늘 자신과 함께한 동지였고 결혼 후에는 자랑스러운 아내였다. 타카요시는 친구와의 모임에도 그녀와 동반했다. 마쯔코는 타카요시의 양복에도 신경을 썼으며 후배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할 정도로 세심했다.

 

1877년 키도 타카요시가 먼저 세상을 뜨자 마쯔코는 토쿄를 떠나 타카요시와 로맨틱한 추억이 남아있는 쿄토로 돌아온다. 그리고 불가에 귀의해 스이코인(翠香院すいこういん)으로 이름을 다시 고치고 남편의 무덤을 지키며 나머지 생을 살다 43세에 위장병으로 타계한다.

 

쿄토의 요정 이쿠마츠에는 그녀가 코고로를 숨겨줬던 나무상자 나가모치( ながもち)와 당시의 방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