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러시아어 원어민 교수, 례프 메치니코프(Лев Мечников)
‘생명연장의 꿈’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유산균 음료 가운데 메치니코프가 있다. 한 번쯤 들어본 카피인데 일리야 메치니코프(Илья Мечников)는 유산균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인이다. 메치니코프는 5형제가 있었는데 노벨상을 받은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형 례프 메치니코프(Лев Мечников)는 일본과 기묘한 인연이 있는 이다.
1838년 제정 러시아의 수도 쌍뜨 뻬쩨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례프 메치니코프는 대학 세 군데를 전전하며 4개학부에서 공부했지만 대학졸업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천재적인 인물로 유럽의 다양한 언어에 터키어, 페르시아어(이란어), 중국어, 조선어까지 무려 13개 언어가 가능했고 발표한 논문도 400편이상이다. 그는 귀족계급이었지만 도탄에 빠진 농민들을 보고 제정러시아 타도에 나섰고,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무정부주의와 민족독립 운동에 투신하며 유랑했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유럽에서 과격한 인물로 낙인이 찍히자 필명으로 글을 썼고 여러 나라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망 다녔다. 그러던 그가 지긋 지긋한 도주생활에 잠시나마 마침표를 찍은 곳이 머나먼 극동의 나라 일본이었다.
메치니코프는 메이지유신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착각하고 일본을 “동방의 여명 그 빛에 온기를 느낀다”고까지 할 정도로 일본을 동경했다.
메치니코프는 일본으로 가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유럽에서 도주생활을 하던 중 그는 망명자의 천국이었던 스위스 제네바에 머문다. 1872년 메치니코프는 마침 제네바에서 유학중이던 30세의 일본육군 대좌 오오야마이와오(大山巌)를 만난다. 오오야마이와오는 나중에 일로전쟁(日露戰爭)에서 만주군총사령관으로 일본의 승리에 공헌한 인물이다. 당시 오오야마이와오는 유럽에서 보불전쟁의 과정과 유럽의 선진 군사학을 배우기 위해 와 있었다. 오오야마이와오와 메치니코프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고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하던 메치니코프에게 오오야마이와오는 일본어 스승이 된다.
오오야마이와오가 메치니코프와 제네바에서 함께 하던 시절 마침 이와쿠라토모미(岩倉具視)、키도 타카요시(木戸孝允)、오쿠보토시미치(大久保利通)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제네바에 왔고 오오야마는 이들에게 메치니코프를 소개했다.
메치니코프는 오오야마덕분에 쟁쟁한 메이지의 원훈들을 한꺼번에 만난 셈인데, 이가운데 나중에 메이지 정부의 문부대신이 된 키도 타카요시는 1874년 메치니코프를 일본에 정식으로 초청해 토쿄외국어학교에서 러시아어로 교편을 잡게 해준다.
메치니코프는 토쿄외국어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친 최초의 러시아인 교수다. 메치니코프 이전에 한 폴란드인이 러시아어교관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 폴란드인은 러시아어가 아닌 폴란드어를 러시아어라고 속여 가르쳤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메치니코프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는 일본 근대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우키구모(浮雲)를 쓰고, 뚜르게녜프의 작품 ‘아샤’를 ‘하츠코이(初戀첫사랑)으로 번역 소개한 문호 후타바테이시메이(二葉亭四迷)도 있었다. 당시에는 러시아어 교재가 없어 필사로 교과서를 대신했다. 톨스토이단편을 읽고 시낭송등 주로 말하기 위주의 수업이었다. 학생들도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는 식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문어체보다 구어체에 익숙해졌다. 후타바테이시메이가 일본근대소설의 문을 열면서 언문일치를 주장하게 된 것도 러시아어수업의 영향이 크다.
메치니코프는 일본에 있는 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며, 지식인들과도 자주 교류했다. 그는 일본지식인들에게 뾰뜨르 대제(Пётр Вели́кий)의 개혁을 거론하며 메이지유신의 의미와 결부시켜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은 200년 동안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던 정체상황을 거쳐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이 나라가 유례가 없이 변모한데 대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완전하고도 급진적인 혁명”이라고 메이지유신을 평가했다.
메치니코프는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수학과 역사도 가르쳤고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메이지유신회상’(回想の明治維新), ‘러시아인혁명가의 수기’(ロシア人革命家の手記), ‘망명러시아인이 본 메이지유신’(亡命ロシア人の見た明治維新)등의 저서로 남겼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외국어 교육은 부국강병(富国強兵)과 탈아입구(脱亜入欧)로 근대국가를 목표로 한 뛰어난 인물들의 선견지명에 힘입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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