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시니세와 라오즈하오

도보사랑 2018. 12. 25. 17:03

시니세(老舗しにせ)와 라오즈하오(老字號)

 

일본에서 오래된 점포, 내지 기업을 흔히 시니세(老舗しにせ)라고 한다. 한자 음독으로는 로호(ろうほ)라고도 하는데 시니세(しにせ)와 로호(ろうほ)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말인지 일본인들도 때로 궁금해 하기 때문에 퀴즈문제로도 종종 등장한다.

 

시니세(老舗しにせ)는 어떤 일을 하되 (예전의 것을) 흉내 내서 한다는 의미의 동사 시니세루(しにせる)가 에도시대이후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됐고 이것이 명사화된 것이다. 어느 정도 오래돼야 시니세(老舗しにせ)라고 하는지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대체로 100년 이상 된 점포나 기업을 지칭한다.

일본은 시니세(老舗しにせ)대국이다. 2016년 12월 토쿄상공회의소 리서치에 따르면, 100년이상 된 시니세는 3만개이상이다 도도부현(都道府県)별로 보면 토쿄에 4000개 오사카 2000개 아이치현 2000, 쿄토1000개 등이다. 창업 200년 이상의 시니세(老舗しにせ)는 일본전역에 3000개나 된다. 창업 200년이상 된 기업은 독일이 800개 네덜란드, 프랑스가 각각 200여개다. 상상할수도 없는 장구한 세월, 천년이 넘는 시니세(老舗しにせ)는 시텐노지(四天王寺)를 세운 콩고구미(金剛組), 꽃꽂이와 다도를 가르치는 이케바나화도회(池坊花道会いけのぼうかどうかい)등 7개나 된다.

 

일본에 이렇게 시니세(老舗しにせ)즉 장수기업이 많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상 숱한 전란이 있었지만 농민이나 상인들은 전화(戰禍)에서 비켜가 일상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전쟁은 전국시대 타케다 신켄과 우에스기 겐신이 맞붙은 카와나카지마의 전투(川中島の戦い かわなかじまのたたかい), 오다 노부나가, 타케다 신켄 연합군이 타케다 카쯔노리(武田 勝頼たけだ かつより)와 싸운 나가시노의 전투(長篠の戦いながしののたたかい),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통일을 이룬 세키가하라 전투 関ケ原の戦い)등에서 보듯 주로 계곡이나 삼각주, 넓은 평원에서 치러졌다. 다이묘들끼리 싸우는 전투에서 이기면 상태편 영지를 고스란히 인수하는 상황에서 논밭을 경작하는 농민에게 피해를 주면 나중에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다. 시가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점을 약탈하고 방화해야 민심만 들끓게 되고 아무런 실익이 없다.

 

막말(幕末)에 대정봉환이 이뤄지고 에도에 무혈 입성할 때도 같은 논리였다. 일반백성을 전화(戰禍)에 휩쓸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전국시대이래로 내려온 인식이 있어서였던 것이다.

 

일본에 시니세(老舗しにせ)가 많은 데는 사상적 종교적 배경도 있다. 일본역사 영속성의 상징은 천황제다. 반세이잇케이(万世一系ばんせいいっけい)란 전제를 깔고 있는 천황제에서 중국과 같이 왕조가 뒤바뀌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은 없었다. 또 종교적으로는 신도와, 불교, 유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했다. 따라서 피가 피를 부르는 종교전쟁도 없었다.

 

중국에서는 오래된 기업을 라오즈하오(老字號)라고 하는데 그 수는 일본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이다. 가장 전통이 깊은 라오즈하오는 1530년에 설립된 절임 음식 메이커 류삐쮜(六必居), 한약국으로 유명한 통렌탕(同仁堂1669)、항저우의 칼 전문점 장샤오취앤(張小泉1663年)정도다. 100년 이상 된 기업이 중국전역을 통 털어 1000개로 일본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왕조교체와 전란이 잦았고 전쟁이 나면 돈이 있어 보이는 상점이나 기업은 어김없이 약탈 대상이 돼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생존이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중국어 속담이 ‘부자가 삼대를 가지 않는다(富不過三代 fubuguosandai)’는 것이다.

 

중국의 혼란스런 역사 탓에 과거 중국인들이 상술은 주로 해외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전란을 피해 외국으로 나간 이들을 보통 화렌(華人huaren)이라 하는데 이들 중국인들은 초기에 싼바다오(三把刀)라고 일컬어지는 업종을 선택했다. 싼바다오는 세 가지 가위나 칼을 의미한다. 요리사, 이발사, 재봉사로 대표되는, 초기자본이 얼마 안 들어 개업하기 쉬운 생활밀착형 업종이다. 물론 싼바다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동남아시아에서 여러 업종의 사업을 크게 일으킨 화교기업가들도 많지만, 초기에는 싼바다오가 주를 이뤘다. 대표적인 사례가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들어선 聘珍樓(1884년 창업), 萬珍樓(1892년 창업)등이다.

 

중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 기업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본기업의 영속성과 명예의 상징은 노렌(暖簾のれん)이다. 보통 이자카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천으로 된 커튼을 노렌(暖簾のれん)이라고 한다. 점포 앞에 내걸어 해가 비치는 것 또는 외풍을 막거나, 영업 중을 알리는 간판용도로 쓰이는데 여기에는 보통 옥호(屋號)나 상호(商號)또는 가문의 문양을 그려 넣는다.

 

노렌(暖簾のれん)의 상징성은 크다. 원래는 커튼이고 간판이었지만 점차 기업의 신용, 전통의 상징이 돼 ‘노렝오 마모루’(のれんを守る)라고 하면 회사의 명예를 지킨다는 의미로 통한다. 한국에서 보통 냉면 등을 파는 한식집에 붙이는 옥(屋)도 일본에서의 뉘앙스는 각별하다. 혼다 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는 자신의 회사를 쿠루마야(車屋)라고 지칭했다. 일본에서 ‘屋’는 장인정신(Craftmanship)을 가진 이가 일하는 장소다. 대장간을 일본어로 카지야(鍛冶屋かじや)라 하고 칼을 만드는 이를 카타나카지야(刀鍛冶屋)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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