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이병태 카이스트교수

도보사랑 2019. 3. 28. 09:14

조금내용이 긴 글이지만 우리의 지성인이 정확한 현실을 직시한 글입니다 꼭 읽어보십시요(퍼온글)

 

[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팩트 폭격기’ 李炳泰 카이스트 교수

 

“문재인 정권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권”

 

⊙ “민간소비 증가는 정부의 현금살포 덕분… 체질 개선한 게 아니라 정부에 의존하는 ‘좀비경제’ 키운 것”

⊙ “중소기업 일자리의 태반은 대기업이 만들어준 것… 경제 동맥인 대기업이 너무 적은 게 문제”

⊙ “문재인 대통령은 知力 떨어지고 이념 편향 너무 강해… 이미지가 온화하고 착해 보이니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일종의 민중혁명론자라는 걸 간과”

⊙ “가짜 분노장사치들이나 경제데이터에 대한 선동적인 왜곡들을 보고, 국민들의 경제IQ 높이기에 나서”

⊙ “우리 사회는 희생자 의식과 공격성이 지배하는 사회…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 자유에 대한 책임 일깨워야”

⊙ “無學의 小作農의 아들… 성공을 경험해본 사람은 보수주의자·자유주의자가 된다”

 

李炳泰

1960년 출생. 서울대 산업공학과·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미국 텍사스대 오스틴교 경영학 박사 / 신도리코 전산팀 팀장, 미국 애리조나대 조교수, 일리노이대 부교수, 카이스트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이사 역임. 現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소병훈(蘇秉勳) 의원은 지난 2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거의 ‘폭(삭) 망했다’ 수준으로 이야기하는데, 전 세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처럼) 2.7% 이상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나라가 몇 군데쯤 되는 거 같으냐. 미국이 아직 발표가 없었는데 현재 대한민국이 1위”라고 말했다.

이병태(李炳泰·59) KAIST 교수는 즉각 페이스북에 ‘뭐 한국이 2018년 OECD 국가 중에 경제성장률이 1등이라고?’ 하면서 OECD의 2018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올렸다. 이에 의하면 한국의 예상성장률은 36개국 가운데 21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병태 교수는 “정부·여당은 34개국 중 경제성장률이 집계된 4개국의 2018년 경제성장률을 갖고 OECD 1위라고 허풍을 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병태 교수는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팩트(Fact) 폭격기’라고 불린다. 정부나 좌파(左派) 지식인들이 경제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바로 통계 등을 찾아내 사정없이 반박한다.

이병태 교수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논란 때였다. 단통법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지원금 제도 때문에 비싼 휴대전화 살 때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불공평한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만들어진 법이다. 여론은 찬성 일색이었지만 이 교수는 홀로 “자유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단통법을 폐기해 단말기 지원금 및 가격경쟁에 대한 규제와 이통사의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이병태 교수는 시장에 대한 규제와 그러한 규제를 뒷받침하는 좌파의 왜곡된 경제 논리, 그에 대한 잘못된 논거들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활동을 해왔다. 많은 이가 ‘팩트’에 기반해서 좌파를 맹폭격하는 그에게 열광했다.

 

통계청이 공개한 ‘경기순환시계’마저 경기하강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정부는 홍보 책자까지 발간해 뿌리면서 ‘우리 경제는 양호하다’고 강변하는 상황에서, 이병태 교수를 만나 현 정권의 잘못된 논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발가락이 닮았다’

― 지난 1월 28일 이해찬(李海瓚)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민간소비증가율이 증가했다는 통계를 제시하면서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궤도에 올랐다’고 반색을 했더군요.

“지난 2년 동안 정부는 일자리 예산이라는 명목하에 지난해까지 52조원을 쏟아부었습니다. 금년에도 24조원을 투입할 계획이고요. 고용안정기금을 동원해 정부가 기업에 돈을 줬고, 기업은 그 돈을 월급으로 주었죠. 월급 받는 사람이 쓰니까 민간소비로 잡히지만 사실은 민간소비가 아니죠. 정부가 민간한테 돈을 줘서 하는 거잖아요?

지금 정부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드느라 대공황 때 케인지안(Keynesian·존 케인스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쓴 재정정책을 쓰고 있어요. 그것도 정부가 토목사업 해서 수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누리예산·청년수당·아동수당에 지방자치제가 만든 각종 명목의 수당까지 해서 현금살포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소비가 늘어나겠지요.”

이 교수는 “민간소비증가율이 높아진 이유 중 하나는 지난해 초에 수출이 워낙 좋았기 때문인데, 수출도 꺾이고 있다”면서 “경제 데이터라는 건 좀 오랜 기간의 추세를 보아야 알 수 있는데, 워낙 긍정적인 게 없다 보니 ‘발가락이 닮았다’는 식으로 단편적인 통계 하나 가지고 그렇게 내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그래도 여당 사람들은 ‘경제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라고 하는데요.

“그게 정부에 의존하는 ‘좀비경제’를 키운 거지 어떻게 체질을 바꾼 건가요? 세수(稅收)가 좋으니까 마구 돈을 쓰면서, 외국으로 말하면 양적(量的)완화 비슷한 정책을 편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지속 가능한 것인가요? 체질이 좋아졌다면, 기업이 많이 생기든지, 고용이 많이 생기든지, 수출이 잘 되어야 하잖아요. 그거는 전부 반대로 가고 있잖아요.”

“청와대 주위의 경제 知力이 다 그래요”

이병태 교수를 만날 무렵,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지금 50~60대는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동남아·인도로 가야 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김현철 보좌관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을 꺼내자, 이병태 교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청와대 주위의 경제 지력(知力)이 다 그래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자본시장 현장을 돌아본다고 거래소에 갔습니다. 증권업체 사장이 ‘증권시장 활성화를 위해 거래세를 좀 낮추어 달라’고 건의했어요. 이해찬 대표는 ‘내가 30여 년간 정치를 했는데 손해 보고 팔 때도 거래세를 낸다는 건 처음 알았다’고 하더군요. 국무총리도 지낸 분이…. 거래세는 팔든 사든 다 내는 것으로 자본소득세와는 다른 것이잖아요.

그런 정도의 지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집권세력입니다.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 공시지가 인상 등 아주 단선적이고 과격한 정책을 쓸 수 있는 게, 다 경제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 제가 아는 자영업자들도 그런 정책들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내 잘못으로 사업이 안된다면 자영업자들도 수긍하겠지요. 하지만 어느 날 정부가 정책이라는 걸 내놓았는데, 그 때문에 멀쩡하던 사업이 다 망하게 됐다면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건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 생각 없는 과격한 정책들이 억울한 국민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고 있어요.

원전(原電)폐기 정책만 해도 그래요. 두산중공업도 굉장히 어렵지만, 큰 기업들이야 어떻게든 버틴다고 해도 그 아래 하청업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잖아요.”

‘落水효과 없다?’

―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낙수(落水)효과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낙수효과가 정말 사라졌습니까.

“그런 소리 하는 분들은 ‘대기업 중심 경제로는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안 생긴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 같아요.

낙수효과가 없다면서 우리나라 기업도 아닌 GM이 나간다는데, 왜 거기에 공적(公的)자금을 투입해서 주저앉혀요? 왜 재벌들은 불러서 투자하고 청년고용하라고 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을 대통령부터 너무 서슴지 않고 해요.”

―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자영업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며, 대기업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틀린 말입니다. 삼성전자, LG전자에서 휴대전화를 만들어내고 마케팅 경쟁을 하니까 통신판매점에서 고용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애플도 애플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많지 않아요. 애플 덕분에 수많은 앱프로그래머와 애플스토어, 애플유통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대기업 덕분에 그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카운트하지도 않고, 대기업이 일자리 못 만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이병태 교수는 “‘왜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지 않느냐’고 비판하기 전에, 대기업이 왜 그러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청업체에서 만드는 것보다 대기업 안에서 만들면 좋지 않으냐’고 하겠죠. 삼성전자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을 모두 본사가 고용해 억대 연봉을 주면서 휴대전화 만들라고 하면, 국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절대로 못 만들어요.

일자리를 못 만든다고 대기업을 탓하기 전에 과도한 노동시장 규제를 먼저 따져봐야 해요. 우리나라는 고용인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사용대수가 세계 1위입니다. 세계 평균의 9배예요.

최근 20~30년 보면 기업들이 국내투자보다 해외투자를 많이 했어요. 과도한 임금인상이 이런 악영향을 끼쳐온 건데, 그건 따지지 않고 대기업이 일자리를 충분히 못 만든다고 비판하는 건 잘못입니다.”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문제”

― 여러 가지 경제지표가 악화일로인데도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정책실장, 여당 지도부는 “대기업 위주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가면, 우리 청년들이 기대하는 부가가치가 나오는 좋은 일자리가 나오나요?

중소기업 중심 경제라고 일부 인사들이 칭송해온 나라가 대만입니다. 대만은 지금 거의 모든 청년이 한국 청년들보다 더 심각하게 자기 나라에 희망을 잃은 나라가 됐어요. 제가 3년 전 대만국립대학 경영대 국제인증심사원으로 가서 학부생 30명과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대만은 일자리도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빨리 떠날까만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졸업하고 외국으로 가고 싶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전부 손을 들었어요.”

―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중소기업 중심 경제이다 보니 혁신 제품이 안 나오는 거죠. 대만은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부품경제 위주로 되어 있는데, 이제 그런 걸 중국이 더 잘 만드니까 와르르 무너진 거죠.”

이병태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인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을 억압하는 바람에 대기업이 너무 적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동맥’, 중소기업·자영업이 ‘실핏줄’입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하지만, 중소기업 일자리의 태반은 대기업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대기업이 여러 개 있고, 대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중소 영세기업 보호 위주로 하면서 대기업을 차별적으로 규제하는 바람에 대기업이 너무 적어진 게 문제입니다.”

― 대만 얘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들도 중국의 추격으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2009년부터 다시 희망의 싹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주한 박사의 분석에 의하면, 제조업 부문 고용은 1997년부터 계속 줄다가 2009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해 2016년까지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 아, 그렇습니까. 어디서 그렇게 늘었지요.

“우리가 아는 전자·조선·자동차·철강 같은 주력산업에서는 줄었어요. 반면에 우리가 주목하지 않던 화장품·의료산업 이런 데서 늘었죠. 대기업과 대비해서 이런 회사의 이익과 부가가치가 늘고,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도 줄어들었어요. 8년간 지속됐던 이런 트렌드가 2017, 2018년부터 꺾였어요.”

― 이유가 뭡니까.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죠. 2009~ 2016년 매년 30만 개씩 일자리가 늘어나던 것이 2017년에는 8만 개 증가하는 데 그치더니, 2018년에는 12만 개가 줄었어요.”

“기업은 전쟁을 하는 조직”

2018년 9월 6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 왼쪽부터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조선DB ―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관리)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연·기금을 이용해서 기업 경영권에 간여하는 연·기금사회주의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렇게 운영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는 사적(私的)연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공적연금은 보조적인 데 불과해요. 간여해도 사적연금을 관리하는 금융전문가, 펀드매니저들이 하지,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병태 교수는 “더 위험한 건, 기업이 부정을 저지른 것과 총수 개인의 도덕적 일탈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의 경우 문제가 된 것은 ‘땅콩회항’을 시키거나 물잔을 던진 거잖아요. 그게 기업 경영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한진이나 대한항공이 부정을 저지른 게 아니잖아요. 개인의 도덕적 문제들을 가지고 기업을 처벌하고 경영권을 빼앗는다는 게 있을 수 있나요?”

― 그래도 재벌의 ‘황제경영’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업은 전쟁을 하는 조직입니다. 경쟁하다가 생사(生死)가 좌우되는 조직은 군대하고 기업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황제경영을 해야 합니다. 그게 기업의 본질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소리 지르고, 사실 왜곡하고, 사정없이 야단치는 걸로 유명했잖아요?

분식(粉飾)경영 같은 기업부정을 했다면 몰라도 사생활에서 비롯된 걸 가지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하면, 목사나 점잖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만 기업을 경영하라는 얘기인가요?”

“이념폐쇄성 너무 강해”

― 현 정권은 경제에 대해 온갖 경고음이 나오는데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고집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 봅니까.

“먼저 개인적인 이유에서 찾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가장 지력이 떨어지는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닌가 싶어요. 대통령 후보 토론회 때에도 동문서답(東問西答)을 너무 많이 했잖아요. 잘못된 통계를 줘도 판별할 능력이 없고,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도 없는 분이다 싶어요.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일본대사는 자기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경제음치’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경제 문외한’이라는 말이죠.

둘 중 하나겠지요, 지력이 떨어지거나 이념편향성이 너무 강하거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분인 것 같기도 하고….”

이병태 교수는 “현 집권세력은 이념지향, 이념폐쇄성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 꿈은 주류(主流)세력을 교체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주류세력 교체’라는 것은 결국 혁명론이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가 온화하고 착해 보이니까, 그가 기존 질서에 대해 적대감이 있는 사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일종의 민중혁명론자라는 걸 너무 간과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임종석(任鍾晳)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서 전대협 의장단으로 청와대를 꾸미고, 분노를 팔아왔던 김상조(金尙祚·공정거래위원장), 장하성(張夏成·전 청와대 정책실장), 홍장표(洪長杓·전 경제수석비서관) 같은 사람들을 중용한 게 다 그래서겠지요. 불행히도 이념폐쇄성이 가장 강한 집단이 들어서 버렸어요.”

― 과거에는 좌파 성향인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권조차도 경제가 꺾인다 싶으면 경제팀을 바꾸고 정책을 전환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지금 정권은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념편향성이 이렇게 강한 적이 없어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학습능력이 있고 지력이 있는 분들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그동안 너무 억압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서 노조에 힘은 실어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 밑에서 정치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전라도 표를 가져오는 데서만 ‘노무현’을 내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이성적인 판단들, 한미FTA나 강정 해군기지, 노동유연성 도입 같은 것은 하나도 수용하지 않고 있어요.

현 정권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이 끝난 후 한때 스스로 ‘폐족(廢族)’이라고 할 정도로 몰리게 됐던 것이, ‘경제를 운영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타협해서 그렇게 됐다, 이번에는 어떤 경우에도 불퇴전(不退轉)의 각오로 혁명을 완수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야당의 지리멸렬

이병태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서 현 정권이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로 “야당의 지리멸렬(支離滅裂)”을 꼽았다.

“경제가 잘못되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국회의석을 다 빼앗길 것 같고, 다음 대선에서 야당에 정권을 빼앗길 것 같다고 한다면 저렇게 하겠어요? 전술적으로라도 그렇게 못 하겠지요.”

―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이 하는 걸 보면 설사 정권을 되찾더라도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다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다시 좌파에 정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쪽은 보수(保守)정권 시절에 정권을 흔들어서 승리를 맛본 경험이 있어요. 광우병(狂牛病), 한미FTA, 강정 해군기지, 세월호 등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정권을 흔들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경험을 해보았잖아요. 게다가 이제는 그런 구조가 더욱 강화됐어요. 전교조·민노총·참여연대 등은 더욱 기가 살았고, 사법부와 언론도 장악했고….”

― 대한민국의 역사와 가치를 변변히 대변할 정당조차 없는 걸 보면, 대한민국이 지난 70년간의 근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국가건설)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이션 빌딩이 실패했다기보다는 우리가 생각보다 부실했다는 것, 그리고 보수(保守)세력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룬 것들은 아주 뛰어난 지도자들이 거저 갖다 준 것이지, 우리에게 체화(體化)된 것은 없었구나 싶어요.”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만들어준 틀 위에, 권위주의적 정부와 뛰어난 고급 공무원들의 결합으로 왔는데, 1987년 이후 권위주의 정부가 해체되고 인기 영합적 정치인들이 전문가들 위에 놓이게 되었죠. 그러면서 상황이 계속 시장주의를 훼손하는 쪽으로 진행되어 왔어요.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의 동반성장 주장, 김종인(金鍾仁)씨의 경제민주화, 그리고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이 열광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양극화(兩極化)가 가장 심한 나라라는 거짓이 사실이 되어버렸지요. 이렇게 대중민주주의 쪽으로 흐르면서 저쪽에 유리한 지형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 실체를 알고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게 오늘날의 정체성(正體性) 위기를 가져온 원인입니다.”

“우리 사회는 진짜 포용사회”

문재인 대통령은 ‘포용성장’을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포용사회’라고 이병태 교수는 말한다. 사진=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부(富)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고 했죠. 도대체 뭘 보고 그런 소릴 하는 걸까요.

“1970~80년대 학생운동에서 배운 게 전부 그런 거잖아요.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니라 미제국주의와 그에 영합하는 대기업, 군부독재 치하에 놓여 있다고 하는….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재학습하고, 그게 개념 있는 거라 생각하고, 그 믿음에 대해서 한 번도 지식인·지성인으로서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아주 단순한 사람들, 지적(知的)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집권세력이 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데 편승해서 자기 책을 장사하고 명성을 쌓아오던 사람들을 마치 ‘현인(賢人)’이라도 되는 양 정치지도자들이 ‘모셔가는’ 사회가 됐잖아요. 장하성 전 정책실장만 해도 안철수(安哲秀)씨가 모셔가려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용했고, 김종인씨는 이쪽저쪽에서 다 현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잖아요. 그러면서 이성(理性)이 아니라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어요.”

―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들어 부쩍 ‘포용국가’ ‘포용경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프면 빈부(貧富) 막론하고 병원에 가는 걸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아버지의 직업이나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자녀가 다 대학을 가는 사회가 보편적으로 어디 있나요? 유럽에도 없어요. 유럽은 공공의료를 하는 데도 의사나 전문의를 보려면 6개월에서 9개월 전에 예약해야 해요. 역시 공공의료를 하는 캐나다에서도 수술을 못 받아서 미국으로 가거든요.

우리나라야말로 빈부나 직업,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의료와 교육의 혜택을 받는, 진짜 포용적인 사회죠. 우리가 얼마나 포용적인 사회인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 우리 사회가 이미 ‘포용사회’라는 말씀인가요.

“예를 들어 65세 되면 대중교통비 공짜로 주는 나라는 없어요. 유경종 한국과기대 교수가 추정한 바에 의하면, 이런 현물급여를 감안할 경우 상대적 빈곤율이 30% 정도 낮아진다고 합니다. 또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국민연금에 들면 최고로 많이 받아야 자기가 불입한 돈의 1.8배를 받는 데 그치는 반면, 저소득층은 4.8배를 받습니다. 이는 현재 소득에는 잡히지 않는 미래소득이지만,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이런 식으로 평등을 지향하는 수많은 제도를 축적해온 사회입니다. 이것을 다 부인하면서 특정한 한 지표를 꺼내서 ‘과거보다 1% 상위가 가져가는 소득이 많아지고 있으니 양극화가 재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념편향이고 이성의 마비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 그래도 복지에 대한 요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늘 ‘복지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당한 노력을 하지 않고 남의 돈을 가져가는 방법은 훔치거나 구걸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게 아니고 자신이 남을 도와준 것도 없는데, ‘내가 어려우니까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구걸심리·강도심리잖아요. 그런데 정부가 가운데 끼었다고 해서 그걸 ‘복지’라고 하거든요.”

― 너무 과격한 얘기 아닙니까.

“위험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것과 시혜(施惠)를 받는 것은 다릅니다. 일시적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이 다시 건강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복지의 역할입니다. 그게 생산적 복지죠. 영원히 복지로 먹고살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문재인 정부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만들었어요. 벌써 차상위 계층 사람들이 최저임금 받고 일을 안 하려고 하잖아요.”

“보수세력, 無賃승차 심리 너무 강해”

― 왜 그렇게 잘못된 생각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일까요.

“지식인·지성사회의 나태함과 타락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짓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많은 정통 경제학자는 가만히 있었어요. 낙수효과, 대기업에 대한 부당한 공격 등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알리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세력이 그렇게 미사여구(美辭麗句)로 국민을 현혹할 때에도, 장하성 교수가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분노하라’고 선동할 때에도, ‘국민의 영혼을 갉아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주류 지식인 사회가 대기업이나 정부 프로젝트를 받을 수 있을 때나 활동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세미나 하는 걸로 면피(免避)해온 것이 오늘날 이런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 지식인뿐 아니라 보수세력 전체가 다 그렇죠.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유를 누가 대신 지켜주기를 바라는 무임승차(無賃乘車) 심리가 너무 강하다는 거예요. 자신은 행동에 나서지 않고, 대신 총 맞고 칼 맞아 줄 사람이 나서주기를 바라는 의존심리가 너무 커요.”

― 그 점은 기업들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자기의 자유를 지키려는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정치권력을 너무 두려워해요. 미국 경영자들은 트럼프가 틀리면 틀렸다고 얘기하잖아요? 할리 데이비슨 회사 사장은 트럼프가 회사 옮기지 말라고 해도 유럽으로 옮겼잖아요? GM은 트럼프가 반대해도 5개 공장의 구조조정을 단행했잖아요?

사회가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야 이성적인 판단이 되는데, 권력이 두려워서 아무도 얘기를 안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이 있을까요.

“쇼트텀(Short Term·단기적)으로 내년 총선이나 2022년 대선에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좀 더 길게 본다면 가치도 정책도 없고, 그때그때 저쪽 진영이 잘못하면 이쪽에 공이 돌아오는 반사이익(反射利益)만 누리려는 정당, 그 정당이 어려울 때는 가만히 있다가 반사이익이 있을 것 같으니까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정당을 어떻게 가치 중심으로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더 넓은 지평으로 보면, 전교조·민노총·참여연대·민변에 대응하는 세력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도 고민해야겠지요.”

― 그 과정에서 본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까.

“제게도 ‘내년 총선(總選), 2022년 대선(大選)을 위해서 일하라’는 요구를 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건 긴 싸움입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단기적으로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 시대 흐름에 대한 혜안이 없었던 이명박(MB)이나 박근혜를 세워놓았다가 나라가 이런 꼴이 됐잖아요. 길게 보면서 원천적으로 근대국가의 시민이 무엇이고, 시장경제가 무엇이고,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고 계몽하는 일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설픈 차베스 정권’

― 문재인 정권을 한마디로 뭐라고 규정하겠습니까.

“어설픈 차베스 정권 같아요. 경제만 놓고 얘기하자면, 대한민국을 베네수엘라로 만들려고 하는… 이 정권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권이에요. 모든 걸 기존 질서는 적폐(積弊)고 착취의 관계로 보고 있잖아요? 가맹점주가 가맹점을, 고용주가 종업원을,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착취한다고 보는데, 그게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잖아요.”

― 사회주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유럽의 사회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인정하되, 공동체적 정신을 가지고 실직(失職)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위험을 분산·공유(共有)하자는 것이죠. 반면에 시장은 착취구조니까 시장을 교정(矯正)해야 한다고 하는 사회주의가 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그런 경우인데, 저는 그런 사회주의를 ‘질 나쁜 사회주의’라고 합니다.”

― ‘말하지 않는 사회주의’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문재인 정부를 보면 생산 수단을 국유화(國有化)하자는 얘기만 없지, 하는 걸 보면 사회주의예요. 모든 걸 공론화(公論化)해서 한다고, 대중의 힘 내지 민주주의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하잖아요. 시장의 기능 자체를 불신하고 있어요. 임금(소득)주도성장론만 해도 포스트 케인지안들 중 가장 이단적인 사람들, 즉 레프트 케인지안 내지 마르크시스트 케인지안이라는 급진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정권은 말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하는 겁니다.”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전체주의(全體主義)’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적폐세력’이라는 말이 상당히 전체주의적이고 위험한 얘기라고 보았어요.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게 아니라 세력을 겨냥하잖아요. 전체주의를 하려면 국민에게 분노를 심어야 해요. 그래야만 대중을 동원해서 전체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제도적으로는 지금의 청와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보다 더 권위주의적이죠. 모든 걸 자기들이 친람(親覽)하고 결정하는….”

“북한은 경제개발 할 수 없는 나라”

이병태 교수는 북한과 완전히 유리된 개성공단으로는 북한 경제발전이 어렵다고 보았다. 사진=조선DB ―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참 우려스럽습니다.

“북한은 제도화된 사회가 아니라 1인 독재고 압제체제잖아요? 그런데도 이 정부는 ‘묻지 마’ 식으로 하자는 거잖아요. 예멘이 사회제도나 가치의 통합 없이 통일했다가 내전(內戰) 상태로 가서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는 참사(慘事) 국가가 됐어요. 그런데도 제도적 통합 없이 한 민족이니 같이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종족주의죠.”

― 문재인 정권은 북한이 우리 경제의 활로(活路)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들 모르는 사이에 남북철도 연결 같은 걸 해서 돈을 얼마나 쓰겠다는 것인지, 그걸 통해 무엇을 이루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북한이 돈이 없어서 경제개발이 안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외국 원조를 많이 해줘도 경제개발 하지 못하는 나라는 못 해요. 시장경제를 수용할 만한 정치체제가 안 되면 아무리 돈을 때려 부어도 안 돼요. 북한이 시장경제를 수용할 거라는 구체적인 신호는 아직 어디에도 없어요. ‘김정은은 다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만 있을 뿐이죠. 북한에서는 아직도 ‘남한TV 보다가 걸리면 사형시키겠다’고 했다는데, 그건 시장경제를 수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거잖아요.”

― 문재인 정부나 여당은 개성공단에 대한 기대도 많이 피력하고 있더군요.

“제가 2009년 개성공단에 가보았는데, ‘여기는 경제개발 할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경제개발 시작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마산 수출자유지역을 만들고, 거기에 들어온 일본의 노동집약산업·공해산업체에 납품(納品)을 하면서 그 생태계(生態系)로부터 기업을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웠잖아요. 접대도 하고, 술과 음식도 팔면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거잖아요?

개성공단이 진짜 공단이 되려면, 거기 들어간 우리 기업에 북한 사람들이 걸레라도 하나 납품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은 완전히 북한과 유리(遊離)되어 있어요. 근로자들이 와서 일하고 임금만 받아 가지 연결이 일절 없어요. 남한에서 일하러 간 직원들이 개성 시내에 갈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개성공단 안에 있는 편의점은 남한의 패밀리마트뿐이었어요. 하다못해 그 앞에 와서 산나물 하나도 팔 수 없게 되어 있어요.

필리핀이 경제가 어려우니까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가 식모나 노동자로 일하면서 본국으로 송금을 하잖아요? 하지만 그게 필리핀 내부의 경제발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개성공단도 비슷해요.”

가짜 분노장사치들과 선동적 왜곡

― 페이스북 같은 데 글 쓰고 발언하기 시작한 게 5, 6년 되지요.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하게 된 것은 5년 전 단통법 논란이 계기가 됐지요. 그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해집단들의 주장이 강하고 경제논리가 안 통하는 사회인지 절감했어요.

지금은 어떤 나라를 가든 그 나라 사람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 골목 구석에 있는 작은 맛집도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 수단이 구글지도와 우버(차량공유서비스)예요. 이 두 가지가 모두 안 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이는 그에 대해 기득권을 갖고 있는 기업이나 집단 때문입니다.

혁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해집단, 인기영합 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저쪽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가짜 분노장사치들이나 경제 데이터에 대한 선동적인 왜곡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보면서 ‘이 땅의 지식인들이 해야 할 얘기를 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많이 놀랐습니다.”

이병태 교수는 경제 데이터에 대한 왜곡된 선동의 예로 연평균 근로시간 문제를 들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제의 논리를 가만히 보면, ‘OECD 연평균 근로시간 통계를 봤더니 우리나라는 2000시간, 독일은 1300시간’이라는 식이에요.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몰라요.

독일은 우리보다 경제참여율이 높고 파트타임 근로자가 많아요. 파트타임 근로자는 2~3시간밖에 일하지 않으니 평균 근로시간이 확 낮아지는 것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노동시간 규제가 강해서 파트타임 근로자가 별로 없고, 한 번 뽑으면 못 자르게 만들어 놓았어요. 그러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전일직(全日職)을 뽑아서 일을 많이 시키고 급여를 많이 주는 체제가 훨씬 유리하지요.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조차 그런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나라를 ‘근로자들이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다’는 식으로만 얘기하고 있더군요.”

국민들의 경제 IQ 높이기

이병태 교수가 만든 경제지식네트워크(FEN)의 홈페이지. 이병태 교수는 페이스북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활발하게 글을 쓰는 한편, 국내외 통계와 경제 관련 최신 소식, 좋은 칼럼 등을 소개하는 ‘경제지식네트워크 FEN’을 만들었다.

― 요즘 FEN 활동은 어떻습니까.

“올해 들어 ‘이병태 TV’라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는데, 2주일 만에 3만 6000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습니다. 경제철학이나 사고(思考)를 늘려주는 콘텐츠 외에 젊은이들을 위한 금융 IQ 높이기, 글로벌 비즈니스맨이나 리더가 됐을 때를 대비한 매너교육(품격경영) 같은 다양한 콘텐츠, CEO와 젊은이들과의 오프라인 만남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지금 하는 활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국민들의 경제 IQ 높이기입니다.”

―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아내는 뭐라고 안 합니까.

“제가 학자로서 소신껏 얘기하는 걸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현실정치에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강력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제 어머니하고 동맹입니다.”

― 이런 활동을 시작한 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2017년 7월 SNS에 올린 ‘헬조선이라고 빈정대지 말라’는 글하고, 같은 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참고인으로 나간 일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 ‘헬조선 논쟁’을 불러일으킨 그때 그 글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2017년 최저임금 논의될 때, ‘최저임금 올리면 재앙이 온다’는 글을 썼어요. 그랬더니 젊은 학생이 저에게 ‘사람을 똥값 치는 나라’ 운운하더군요. 우리 사회가 어느 사이에 지나치게 ‘빅팀후드 컬처(Victimhood Culture)’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빅팀후드 컬처가 뭡니까.

“희생양을 자처하면서 모든 것을 사회 탓이라고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생기거나 공격성을 띠게 됩니다. 인터넷상에서의 어마어마한 댓글 공격 같은 게 그런 것이죠. ‘에브리데이 새디즘(Every day Sadism)’이니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ression)’이니 해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우리가 훨씬 심하지요.”

이병태 교수는 “이 사회의 염세적(厭世的)인 생각과 공격성을 낮추려면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 자유에 대한 책임을 일깨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너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글을 쓴 것”이라고 했다.

“그 글이 뜻밖에도 들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한번은 어느 분이 ‘은퇴한 중학교 교장’이라면서 전화해,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흐느껴 우시는 거예요. ‘나라가 이렇게 되면서 상처받은 분들이 무척 많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無知에 경악”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국회의원들과 언쟁(言爭)하는 동영상도 무척 화제가 됐죠.

“최저임금 관련 참고인으로 국회에 갔는데, 국회의원들의 무지(無知)에 아주 경악했어요. 여당 국회의원이 제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 교수는 케인지안인데요’ 하는 거예요. ‘너는 자유시장경제론자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그는 농경제학을 전공한 분이에요. 그것도 서울대에서….”

― 이정미(李貞味) 정의당 의원하고 설전(舌戰)도 벌였지요.

“이정미 의원이 ‘꼴랑 170만원 주는 걸 가지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GNI(국민총소득)를 인구수로 나누어 보면, 우리나라는 기업주들이 부담하는 4대 보험 등을 제외하면 우리 국민이 집에 가져갈 수 있는 돈은 210만원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연봉 5000만원짜리 일자리, 7000만원짜리 일자리를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시급(時給) 1만원은 애초부터 거짓말이었어요. 시급 1만원은 줄 수 없어요. 그것은 ‘평균보다 높은 최저’입니다.”

이병태 교수는 국회의원들의 오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무식하면서 거기에 더해 오만하잖아요. 사람들을 불러놓고 호통을 칠 수 있다고 하는…. 지금 집권층도 똑같지요. 얼마 전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한 말도 정말 뻔뻔하고 오만한 거잖아요.”

― 그런 오만한 권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오는 겁니까.

“미국에서는 성과에 상관없이 한번 패스하면 영년직(永年職·Tenure·재임)을 보장해 주는 직업은 대법관과 교수뿐입니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특정 정파(政派)를 위해 일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수들에게 영년직을 보장해 주는 것은 ‘시대의 양심으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말하라’고 준 특권(特權)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수에게 65세 정년을 보장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말하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입니다.”

‘흙수저’

이병태 교수는 ‘흙수저’다. 그는 2017년 SNS에서 화제가 된 ‘헬조선이라고 빈정대지 말라’는 글에서 그의 집안 내력을 슬쩍 내비쳤다.

〈나는 부모 모두 무학(無學)의 농부의 아들이고, 그것도 땅 한 평 없던 소작농(小作農)의 아들로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등잔과 호롱불로 공부했다. 나보다 더 영특했을 우리 누이는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으로 취업해 갔고, 지금까지도 우리 어머님의 지워지지 않는 한(恨)이다.

나는 대학 내내 입주 아르바이트로 내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다녔고 때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면서 다녔다. 나는 돈 한 푼도 없이 결혼했고 집 없는 설움을 겪으며 신혼 초에 치솟는 전세값 때문에 서울을 전전하며 살았다.

단돈 300만원으로 가족을 데리고 유학을 가서 배추 살 돈이 없어서 김치를 만들어 먹지 못했고, 내 아내는 남의 애들을 봐주고, 우리 딸은 흑인 애들이 받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서 우유와 오렌지주스를 사 먹이면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회사에 취업해서 주 6일을 근무하던 때에, 입사 첫해에 크리스마스 날 단 하루 쉬어 보았다. 공장 창고의 재고를 맞추려고 퇴근 안 하고 팬티만 입고 냉방도 안 되는 높다란 창고 위를 기어올라 부품을 세면서 생산을 정상화하려 애썼다. 그렇게 야근하는 날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삼겹살인 줄 알고 살았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집안에서 최초로 들어간 그는, 197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KAIST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985년 신도리코에 입사(入社)했다. 신도리코에서 5년간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전산실장·신규사업팀장 등 임원급 임무를 수행했다. 1990년 미국 유학을 떠나 애리조나대학에서 경영정보학(MIS)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부전공으로 경제학(경제정보학)을 했다. 지금 경제 문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바탕은 이때 마련됐다. 이후 애리조나대학·일리노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KAIST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성공 경험해본 사람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 그냥 미국에 있지 왜 들어왔습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어머니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귀국을 선택했어요. 2001년 6월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똑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 사람이 내 나라에서 살겠다고 들어왔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왜 들어왔느냐’고 묻는 걸 보고, ‘우리 사회가 IMF사태의 충격 때문에 집단우울증에 빠져 있구나.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지나자 힐링(Healing)이 유행어가 되더라고요. 제가 학생들에게 ‘힐링이라는 건 네가 아프다는 얘기인데, 멀쩡한 젊은이들이 왜 스스로 아프다고 생각하느냐’고 야단을 쳤어요. 그렇게 아프다고 생각하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분노로 변하면서 나온 말이 ‘헬조선’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케어(Care)해 주겠다, 퍼주겠다, 나누어 주겠다는 세력들이 더 세(勢)를 얻게 되고, 결국 지금 같은 이단적인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게 된 것이죠.”

― ‘흙수저’ 출신이면서도 요즘 같은 시절에 자유주의의 최전선에 서서 싸우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성공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이는 자기 노력에 대해서 보상(報償)이 돌아오는 것을 체험해 보았다는 말입니다. 능력을 보여주면 조직이나 사회는 그에게 더 큰 리소스(Resource·권한·인력·재원 등)를 주면서 능력을 발휘할 더 많은 기회를 주죠. 자기가 능력만큼 노력해서 뭔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는 게 보수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 아니겠습니까. 성공을 경험해본 사람은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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