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바다(2023. 1. 21, 토)
구정 하루 전 오늘은 미세먼지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짙은 청록색의 가덕도 바다는 고기 비늘처럼 햇살에 반짝인다. 가덕도엔 2년 전에 이어 두번째 왔는데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어릴 적에 외가 친척들과 함께 한번 온 적이 있다.
가덕도 연대봉(459m)에 올라본다. 가덕도 바다를 보면 왜군이 바다를 건너오는 모습과 부산포, 안골포, 칠천량 해전이 상상되고 일제 강점 하 역사의 흔적도 찾아보고 싶어진다.
임진란 당시 바다를 건너오는 왜군들을 최초로 발견한 곳이 이곳 연대봉의 봉수대이다. 임진장초엔 1592. 4.13일(음력) 연대봉 감고 서건과 응봉 감고 이건이 "왜선이 몇십 척인지 대략 보이는 것만도 90여 척이 대마도를 나와서 추이도(사하도)를 향하는 바, 까마득하여 그 척수를 상세히 헤아려 볼수는 없었으나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라는 보고 공문이 기록되어있다.
일제는 한반도를 강점하기 전 러일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외양리에 해안포진지도 구축했다. 수심이 깊고 대마도와 함께 대한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고향인 녹산면 송정리(지금의 부산시 강서구)는 가덕도 바로 건너편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있다. 지금은 부산신항과 녹산공단이 들어서서 옛모습은 전혀 찾을수 없다.
光山 김씨 어머니는 방앗간과 염전을 하신 부잣집 둘째딸로 태어나셨다. 외할아버지는 산과 논, 염전을 가지고 계시면서 풍요롭게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아들 외삼촌마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는 말씀을 들은 적 있다. 난 어릴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가끔 외가에 온 적이 있는데 김밭을 하시던 어머니 이종사촌이 김(海衣)을 씻어 김발을 너시는 모습과 사촌 형들과 하루종일 갯벌에서 게를 잡던 기억도 난다. 어느 봄날엔 부모님, 외가 친척들이 봄놀이를 간다며 배를 타고 가덕도에 온 기억이 있는데 그곳이 지금 와서 보니 아마 천성항이나 눌차항 지역 같다.
어머니는 당시 김해에서 기자생활을 하고계셨던 아버지를 중매로 만났다. 외할아버진 가난했던 아버지를 사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는데 어머니의 오빠인 외삼촌이 사람됨됨이 하나보고 아버지를 매제로 삼았다고했다. 그러한 외삼촌과 외숙모님도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이후 외삼촌의 자녀들(4남 3녀)을 어머니가 많이 돌보셨다. 나에겐 외사촌 형님, 누나들이다. 어머닌 뇌졸중으로 쓰러진 외할머니도 모셨다. 아버지의 박봉에도 검소, 절약하시면서 외가의 조카들을 돌보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셨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에대한 나의 기억은 무수히 많다. 난 유년기 땐 말도 못할 정도로 개구장이였고 동네에서 사고도 많이 쳤다. 그런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선 공부에 취미를 붙여 성적도 전교 1~3등을 할 정도로 좋았다. 월례시험을 앞두곤 등수에대한 욕심, 압박감 때문인지 가끔 자다가 일어나 훌쩍거렸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큰방에서 건너오셔서 나를 안아주거나 등을 두드려 주시기도 했다.
내가 고교졸업 후 집안형편 때문에 사관학교를 가고자 했을 때 어머니는 "입고 있는 속옷을 팔아서라도 너 하나 공부 못시키겠느냐"며 반대하셨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경제적 사정보단 6남매 중 외동아들을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않았던 어머니 마음이었다는 것을 난 잘 알고있다..
나의 기억에 어머니는 생전에 딱 두번 우셨다. 한번은 내가 사관학교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정식 입학식 때 부모님께 경례하는 나를 보고 눈물을 훔치셨고, 두번 째는 97년 내가 사단 참모를 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주검앞에서 "철이가(집에선 나를 윤철이라 불렀다) 왔다 "며 목놓아 크게 우셨다.
강인하시면서도 자식에게 한없는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한톨의 쌀도 함부로 버리지않는 검약을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 그러하신 어머니가 오늘은 너무나 보고싶다.
가덕도 앞바다는 어머니의 바다다. 진해 옥포바다까진 불과 9해리 정도의 거리다. 오늘은 두 바다가 만나 하나의 바다가 되어 두분이 회포를 풀었음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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