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작가의 서재

도보사랑 2023. 7. 31. 22:47

작가의 서재

보름전에 원주시 매지리에 위치한 박경리 작가의 집필실을 다녀온 적 있다. 마지막 한 줄의 글을 쓰기까지 혼을 불살랐던 작가의 집필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작가의 서재는 작가의 얼굴이고, 정신이며, 작품의 생명력이 탄생되는 곳이기에.

토지문화관 박경리 작가의 집필실은 그렇게 넓지않고 간소했다. 아마 생전 집필의 시기땐 수많은 책들, 특히 저술 참고서들이 서재를 꽉 채웠을 것이다. 공간은 3평 정도 남짓했고 책상은 앉은뱅이였다. 어느 곳(서울 정릉, 원주 박경리문학관, 토지문화관?) 서재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燈이 올려져 있는 앉은뱅이 책상에서 글을 쓰시고, 작가 주위엔 무너질 듯 책들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의 사진은 기념관 전시실에도 있었다. 박경리 선생님은 이런 집필 공간을 사랑하셨구나..
어느 관람객은 말했다. "앉아서 쓰시면 무릎이 다 상할텐데.."

오늘 도서관에서 '작가의 서재'란 책을 대출했다. 한 달 전인 6월 20일 초판이 나온 하나같이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일본 근대 작가 32명이 자신 또는 다른 유명 작가의 서재풍경을 글로 묘사한 책이다.  

"그들의 방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호기심에서 작가들의 서재를 탐닉해본다.

작가 중 한 사람 '쓰치다 교손'의 자기 서재 풍경의 일부이다.
"어느 방이든 책이 들어찰 만큼 들어찼다. 차츰차츰 복도를 잠식하던 책은 어느새 다른 방을 잡아먹더니 기어이 침대 아래까지 차지하고 말았다. 자나 깨나 책 더미에 파묻히는 상황이 썩 유쾌하지 않기에 깔끔한 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태평한 소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머릿속은 오로지 연구 생각뿐이다. 책뿐이다. 가족들만 딱하게 됐다. 어디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으련만. 그럴 리는 없겠지."

'서재와 빛, 서재 한담, 1.5평짜리 방, 서재가 중심인 집, 서재 망상, 램프 그림자, 책장을 덮고, 서재 여행, 사전의 객관성, 나와 만년필, 나의 책상..'
책을 구성한 32명 작가들의 서재풍경 글 제목들이다.

매혹된 책을 직접 전하고픈 마음에 두 언어 사이를 왕복하는 길에 들어섰다는 번역가 안은미 역시 작가다. 낯선 일본 근대문학을 알리기위해 '작가의 마감', '작가의 계절', '작가의 산책' 등 작가시리즈를 저술하고 있다.

작가의 서재들을 통해 생소한 일본 근대문학, 일본 작가들의 취향과 서재에 배어있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음 좋겠다. 그들 역시 마감을 앞두고 쓰지 못하는 괴로움이 한 편 한 편 절절했을 것이고, 때론 자기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몽상도 즐겼을 것이다.

20230730, Song s y

#작가의서재 #일본근대문학 #서재풍경 #책 #집필공간 #방 #책더미 #서재냄새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해 정란'을 읽고..  (0) 2023.08.15
창해 정란  (0) 2023.08.15
도토리묵  (0) 2023.05.22
Brunch  (0) 2023.04.16
튀르키예에 작은 정성(2023. 2. 17, 금)  (0) 2023.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