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새 청풍
경북 군위 출생의 정란 선생은 22세때 봉화 청량산을 시작으로 67세 사망할 때까지 이름난 조선의 산을 빠짐없이 주유했다. 처음엔 혼자 산행을 하다가 여주 마릉에 산행 거점을 마련한 이후엔 그곳 종마장에서 얻은 새끼 노새와 산행을 함께 다녔다. 노새 이름은 푸른 바람, '靑風'으로 명명했다. 노새의 수명은 통상 20여 년이라는데 청풍은 정란선생이 계획한 산행지를 다 다닐 때까지 30년 동안 푸른 바람처럼 이 곳, 저 곳 가림이 없이 충직한 걸음을 함께 했다. 청풍이 없었다면 정란 선생의 산행기록 '불후첩(不朽帖)'도 없었을 것이다. 한평생 산행의 도반, 청풍이야말로 정란 선생에겐 유일한 생명, 삶 그 자체였다. 일찍 18세때 사망하여 정란 선생의 가슴에 묻힌 아들, 기동이를 대신한 혈육이었을 것이다.
청풍의 죽음을 예견하고 청풍과 동해 바닷가로 마지막 이별 여행을 한 기록을 보면 깊은 정이 든 생명과의 이별이 얼마나 큰 슬픔을 가져다 주는지..
언젠가 삼척 가까이가면 이 동네, 청려동(靑驢洞)을 찾아 볼 생각이다.
- 이별여행을 떠나다 -
제주 거상 김막덕의 도움으로 한라산을 두 번이나 오르고 가까운 섬들도 둘러본 정란, 이제 여주 마릉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산행기를 책으로 엮을 준비를 하며 30년동안 함께 발걸음을 한 노새 청풍과의 이별 여행을 떠난다. 그의 나이 62세 때였다. 청풍이 유난히 좋아한 동해 바닷가로 가기전 청풍이 좋아하는 콩을 물에 불리고, 발굽도 깍아주고, 구리방울도 닦아 광내고, 갈기도 정갈히 손질해 주었다.
마릉 집을 나서서 천천히 가면서 말한다. " 청풍아 이번 길은 너와 내가 수 없이 다녔던 길이다. 너의 반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 이번 여정은 널 위한 여행이다. 네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던 강릉 단오절 난장을 구경하고, 네가 뛰어놀던 경포 바닷가에서 불린 콩으로 소풍이나 즐겨보자꾸나!"
청풍은 강릉 단오제를 즐기고 바닷길로 걸어내려오다 삼척에 이르자 기력이 떨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더이상 걷지못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란은 자식잃은 슬픔이상으로 통곡했고, 사람이 죽었을 때와 똑같이 제를 지내고 喪을 치러주며 제문을 읽었다.
"청풍아! 처음으로 나를 대할 때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피던 눈빛이 여전한데 이제 너를 떠나보내는 마음 애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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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선 천지 어디든 함께했는데 이제 누구와 길동무한단 말이냐? 두렵기도 하다. 마지막 가는 너의 눈빛에 조선 팔도 산하가 서려 있음을 기억하마. 내 산행의 도반, 청풍아! 고맙다."
제문을 읽는 소리가 애절했던지,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미물을 대하는 禮에 감복한 유림들은 이 고을 이름을 靑驢洞(청노새 동네)라 부르며 본보기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 아래 청풍을 탄 정란, 동자 그림은 조선의 괴짜 애꾸 눈 화가 최북이 그렸다.
* 최북은 "잘 그린 그림인데 헐값을 쳐주면 그림조차 모른다고 그림을 찢어버렸고, 못 그린 그림인데 값을 후하게 쳐주면 그림 볼 줄 모른다고 핀잔을 주며 그림을 찢어버렸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화가였고 술을 엄청 좋아했다. 정란과 금강산도 함께 주유했다.
20230814,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