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길상외 2점
표훈사에서 만폭동 계곡을 따라 올라 8담을 구경하고 마하연사에서 이른 단원은 선승들이 그러했듯이 꽤 오랜기간 체류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행장속 그림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나온 행로를 반추하고, 금강산의 깊고 오묘한 세계에 푹 빠져들었을 것 같다. 어딜 가나 절경을 자랑하는 금강산! 어디서 어떤 모습을 화폭에 담을까? 고민하는 단원의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단원은 고려시대 불상 중 최고 명작이자 동방 최대의 마애불로 소문난 '묘길상(妙吉像) 앞에 선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묘길상에 대해 "통일신라에 석굴암이 있다면 고려에는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이 있다"고 평했다. 단원의 그림속 마애불은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이다. 3단 축대위 거대한 바위에 암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이 잔잔한 미소로 무언의 평화를 주고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마애불은 뭔가를 속삭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여기서 더 가면 금강산의 주인인 비로봉을 만날 수 있지만 그만 걸음을 멈추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행복은 찾아나서는 길에 있지 않고 늘 머무는 그 자리에 있기에 왔던 길을 다시 가슴에 품어보라고..
장안사에서 북동쪽 1km 지점에 선돌 형태의 화강암 절리가 넓게 발달해 있는데 높이 50∼60m 정도, 너비 10m 이상되는 절리들이 비경을 만드는 '명경대(明鏡臺)'다. 바위면이 반듯하고 적갈색을 띠고 있어 마치 거울을 세워놓은 것 같고 바위 밑 계곡물에 비치는 그림자가 거울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변에는 단풍나무 처럼 보이는 수림이 울창하다. 그림속엔 큰 화강암반 위에 여섯 사람이 앉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명경대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다 비추어서 죄의 유무를 가려내므로 배석대에 올라가 꿇어 앉으면 십왕과 판관이 이를 보고 판결을 내린다. 그러면 사자가 죄인은 좁은 지옥문으로 보냈고 죄없는 사람은 넓은 극락문으로 보냈다. 배석대의 우묵한 곳은 죄인의 무릎자리이고 홈은 죄인들이 흘린 눈물 자리다"라고 한다. 그림속 넓은 화강암반이 배석대인 모양이다. 앉아 있는 여섯 선비 중 누가 죄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명경대 물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면서 속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죄인이지 아닐까. 나머진 속죄의 눈물이 아닌 비경에 취한 벅찬 감흥의 눈물을 쏟아낼 것 같다.
표훈사로 내려오는 물줄기 중 3시 방향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 백천동(百川洞) 계곡엔 약 3㎞에 걸쳐 돌탑들이 수없이 솟아 있는 백탑동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백탑동의 어귀에 있는 높이 20m의 탑처럼 생긴 2개의 바위가 마치 돌문기둥을 세워놓은 것 같다 하여 ‘문탑(門塔)’이라고 부른다. 이 문탑의 동쪽에 있는 높이 약 30m의 바위가 '증명탑(證明塔)'이다. 겉면이 인공적으로 다듬은 듯이 매끈하여 등불과 같이 밝게 빛나는 탑이라는 뜻에서 증명탑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바위에는 예서(隸書)로 ‘證明塔’ 이라는 글이 새겨져있다 한다. 단원은 문탑과 증명탑 모두를 화폭에 담았다. 난 폭포수 같은 물이 흘러내리는 증명탑을 먼저 그려본다.
백천동 계곡내 수많은 돌탑 중에 제일 높은 이 증명탑이 이름그대로 맑고 매끄러운 면을 가진 돌탑일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탑아래로 제법 세찬 물이 흘러 더욱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단원이 내금강내 수많은 비경 가운데 유독 돌탑을 수미탑까지 포함하여 3점이나 화폭에 담은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단원이 염원했던 세상, 그 세상을 화폭에 담고싶었던 그의 뜻을 돌탑에 새기고자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화폭에 담긴 증명탑이 그 답을 주었음 좋겠다.
20241008,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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