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분설담외 2점

도보사랑 2024. 10. 3. 21:57

분설담외 2점

오늘은 우리 민족에게 하늘이 열린 개천절. 태극기를 게양하고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기 전 단원의 '금강사군첩'을 열어본다.

‘원생고려국 친견금강산(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란 글귀는 조선 태종 이방원이 소환한 말이다. 태종실록엔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404년 9월 태종이 하륜 등 신료들과 정책을 논하던 자리에서 "중국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속언에 말하기를, 중국인에게는 고려국에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원(願)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라고 물으니, 하륜이 "금강산이 동국에 있다는 말이 대장경에 실려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대장경에 기록될 정도로 뛰어난 비경을 자랑했던 금강산을 보고싶어 했던 또 다른 일화가 있다. 1940년 무렵 성철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사에서 정진 중일 때 스님의 속가 어머니가 고향 산청에서 천오백리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다. “뭐하러 여기까지 찾아왔는교?” 어머니가 답한다. “나는 니 보러 온 거 아이다. 금강산 구경하러 왔다” 이 일화는 세간에 널리 회자되었는데 난 성철스님의 어머니가 그 먼 길을 걸어서 금강산 마하연사까지 찾아간 것은 출가한 아들이 보고싶기도 했지만 실로 아들과 함께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금강사군첩' 수록 순서대로 단원의 그림을 모사 하려다가 성철스님의 일화를 접하고 마하연사를 먼저 그리고 싶어졌다. 2007년 6월, 조계종 성지순례단은 남북 불교교류 차원에서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순례단은 표훈사~만폭동~8담(흑룡담·비파담·벽파담·분설담·진주담·구담·선담·화룡담)~마하연사~묘길상을 보고 다시 표훈사로 회기하여 백화암부도~ 삼불암~명연~장안사까지 시범 관광을 가졌다. 그래서 난 이번엔 이 순례단의 길을 따라 마하연사로 가보기로 한다. 사찰에 이르기 전 단원이 그린 3개담(진주담, 분설담, 선담)중 내가 아직 모사하지 못한 2개담(분설담, 선담)을 먼저 그리고 마하연사를 찾고자 한다.

만폭동(萬瀑洞) 계곡은 만물상과 함께 금강산 최고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을 '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용의 초리'라고 읊었다. 진주담 윗쪽에 위치한 "분설담(噴雪潭)'은 이러한 만폭동 계곡수가 흘러 고이는 8담 중의 하나다. 그림속 분설담은 수 많은 층암 절벽 사이로 흘러내린 수정 같은 벽계수가 넓고 경사가 있는 암반위에 형성된 폭포에 이르러 이름 그대로 흰 눈(雪)처럼 물을 뿌리고, 소(沼)는 그 물을 온전히 거두어 나뭇잎 보다 더 푸르고 깊은 빛깔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다. 8담 모두 이러한 비경의 모습이겠지만 특히 분설담은 오른편 법기봉 자락에 고려말에 세웠다는 국보급 유적인 보덕암이 위치하고 있어 더 유명하다고 한다. 높은 절벽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보덕암 뒷마당에 서면 향로봉과 오봉산 등 만폭동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소개되는데 단원의 그림엔 보덕암이 보이지 않는다. 법기봉이 소(沼)에서 멀리 떨어져 단원의 눈에 보이지 않았는지, 아니면 단원이 분설담만을 화폭에 담고 싶어서였는지 난 알 수가 없다.

'선담(船潭)'은 구연동 입구에 있는 합수목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소 아래 바위벽에는 '船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소의 모양이 배(船)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는데 단원의 그림에도 각각 누운 위, 아래 소(沼)가 흰 물(水) 돛으로 연결된 배모양처럼 보인다. 망망대해 금수강산에 떠 있는 한 점 돛단배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아래 제일 큰 소의 좌측 큰 바위위에 앉아 푸른 비단폭 같은 폭포수를 바라보는
세 선비도 그러한 상상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한국 조계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마하연사(摩訶衍寺)'는 만폭동 8담 중 마지막인 화룡담을 지나면 나타난다. 일제 때까지 사찰 건물이 일부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옛터만 존재한다고 한다. 이 마하연사 뒤 청정 계류를 따라 오르면 고려시대 불상 중 최고 명작이자 동방 최대의 마애불인 묘길상을 볼 수 있고, 묘길상에서 6㎞ 정도 더 올라가면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이 나타난다고 한다. 최고 비로봉 아래 최대 불상을 모신 마하연사는 근세 한국불교 선승들의 사관학교 같은 곳으로 ‘한국 불교의 못자리’로 불리운다. 경봉, 만공, 청담, 성철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객들이 앞다퉈 몰려들어 선풍을 갈고 닦았다는데 지금의 마하연선원터엔 잡초 속 돌계단과 주춧돌, 깨어진 기왓장만 나 뒹굴고 있을 것 같다. 단원의 그림속 마하연사는 이름 모를 높은 봉우리 3~4부 능선상에 자리하고 있고 사찰에 이르는 길도 잘 닦여져 있다. 우측 계곡은 만폭동 인 듯 세찬 폭포수가 푸른 색을 띄며 흐르고 있다. 산과 물, 인간의 길을 모두 담은 마하연사는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 하다. 단원도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산수와 인간의 길 모두를 화폭에 담지 않았을까? 마하연사 기록을 찾아보니 일제 조선총독부가 찍은 사진이 있어서 함께 올려본다.

20241003,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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