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구룡연외 2점

도보사랑 2024. 10. 26. 21:06

구룡연외 2점

외금강의 옥류동을 따라 서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좁고 긴 골짜기, 구룡동(九龍洞)이 나타난다. 주위 가파른 암벽으로 되어 있는 이곳에 높이가 74m나 되는 구룡폭포가 있다.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명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장대한 폭포 밑에는 절구통 모양의 폭호(瀑壺)인 '구룡연(九龍淵)'이 있다. 폭호란 폭포 아래 호리병 모양으로 깊게 파인 둥근 와지로서,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 위에서 돌부스러기들을 회전시켜 마모 작용을 하며 형성시킨 담(潭)이다.

구룡연의 명명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설화 하나.
"오랜 옛날 이름난 학자 정학이 세상에 남길 명시 하나를 짓고자 금강산을 찾았는데 이름모를 노인을 만나 이 폭포에 이르러선 노인의 명명 요청에 명주실 같은 흰 폭포수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같기에 '龍'하고 한자를 써 넣었으나 다음자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노인이 정학에게 저 용은 아홉가지 조화를 부린다고 말하면서 '저 흰 물살이 용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첫째 조화, 물 떨어지는 신비한 소리가 둘째 조화, 돌개바람이 부는 것이 셋째 조화,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 것이 넷째 조화'라고 말하며 그 다음 조화도 연신 언급했다. 정학은 무릅을 치며 아홉마리의 용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용자 앞에 '아홉 九'자를 써 넣었다. 쓰는 순서는 거꾸로 되었다 할지라도 구룡(九龍)이 되었다. 노인은 그럼 이제 이 폭포 이름은 구룡인가? 라면서 기뻐했다. 정학은 천하 명승지에 이름을 단 공적이 어찌 좋은 詩 한수를 짓는 것에 비기겠느냐며 가벼운 걸음으로 금강산을 떠났다".

단원의 그림엔 용의 아홉개 조화는 보이지 않지만 동그란 담(潭)에 돌부스러기가 회전하는 모습이 상상되고, 폭포 너머 암벽사이로 아득하게 보이는 이름모를 산이 마치 폭포수를 품었다가 뿜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우측 암벽과 그 너머 산 사이 채색없이 비워둔 흰 공간, 그 여백이 인상적이다. 마치 산안개가 산을 덮고 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도 준다. 정학이 보지못한 것을 단원이 대신해서 묘사한 것인가..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명성을 얻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 본인(본체)보다 주위 사람들(배경)이 그렇게 만든다. 자고로 유명해지고 출세할수록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어야 하는 것.

'은선대십이폭(隱仙臺十二瀑)'은 마치 설악산의 토왕폭 같다. 겹겹이 수많은 절리층을 이룬 금강 암벽뒤로 거대한 높이의 폭포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가히 하늘이 산을 품고, 산이 물을 품고, 물이 다시 하늘을 품은 느낌을 준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숨어있다는 느낌을 준다. 폭포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만물을 이롭게하는 물의 성질을 최고의 경지로 삼은 도가의 세계처럼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은선대의 물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투지말고 착하게, 순리대로 살아라고 으르렁 으름장을 놓는 것 같다. 그 으름장을 군말없이 고이 받아들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흘러가 생의 마지막엔 하늘(천국)에 오르거나, 포용의 바다에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단원도 그림 우측 상단 공간에 마치 그러한 세계를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하늘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푸른 채색을 했다. 단원에게 수직의 낙하 폭포와 수평의 하늘을 함께 담은 그 의도를 묻고 싶다.

'흑룡담망보덕암(黑龍潭望普德巖)'은 지난번에 그려보았던 분설담(噴雪潭) 오른쪽 약 30미터 벼랑에 매달리듯 자리해있는 암자다. 고구려 안원왕 때 보덕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덕암앞에 붙은 흑룡담은 만폭동에 있는 깊이 7.5m 정도의 소(沼)로, 일명 만폭8담으로 불리는 내금강 팔담(八潭)의 첫 시작이다. 옛날에 검은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물이 검푸른 색을 띠고 있다. '흑룡담망보덕암'은 단원이 이 흑룡담에서 보덕암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는 의미다. 기록을 찾아보니 1924년에 찍은 보덕암 사진이 있다. 높은 벼랑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내민 건물은 기둥 하나로 버티고 있다. 단원의 그림속 보덕암은 보일듯 말듯 아주 작은 모습이다. 그래서 임의로 노란색칠을 했다. 승려이름 보덕(普德)이 아닌 도와서 덕을 쌓는 보덕(輔德)이면 더 좋을 뻔 했다. 단원은 이 벼랑위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암자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치 비탈길을 오르내리듯 어렵게 사는 백성들의 행복과 만민평화를 위해 기도해주는 도량이 되어주기를 염원하지 않았을까..

며칠간 다른 일로 단원의 그림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다시 연필을 잡으니 손이 굼뜨다. 해왔던 일은 손발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정신은 계속 따라가야 그 굼뜸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몰입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음 좋겠다.

20241025,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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