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마무리
어떤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 의욕이 넘쳐 시작한 일도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면 중간에 거둔 성과의 가치가 바래질 수 있다. 정조의 명을 받고 관동과 금강산의 비경들을 화폭에 담아온 단원은 금강산 단풍이 지는 늦가을을 맞이하면서 아직 화폭에 담지못한 5~6곳을 서둘러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기록을 보면 이 무렵 단원의 스승 강세황은 서쪽 외금강에 위치한 회양(淮陽)에 머물고 있었다. 연로한 스승이 회양을 찾은 이유는 당시 회양부사였던 그의 첫째 아들 강인을 보고자 한 것도 있었지만 그림을 완성하고 한양으로 돌아올 제자 단원을 왕보다 먼저 회양에서 맞이하고 싶었던 생각도 가졌으리라.
그 시기 단원의 마음을 그의 그림을 통해 상상해본다. 거의 막바지에 이른 금강산 탐방, 비경 몇 점만 더 그리면 회양을 거쳐 한양으로 돌아가 왕에게 그림을 바치고 가족들을 만나게 될 단원. 기한이 없었던 여정이었지만 스승이 회양에 와 계신다는 소식을 들은 단원은 빨리 그림을 마무리지어 스승을 뵙고 그간의 행적을 고(告)하면서 그린 그림들을 검수받고 싶었던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기록엔 회양에서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으로 들어온 스승 일행(스승 강세황은 사대부들이 큰 자랑으로 여겼던 금강산 유람을 속되다는 이유로 금강산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아 회양에 계속 머물렀다)을 만난 단원은 장안사,
명경대, 그 골짜기의 문탑, 증명탑, 영원암 등을 그렸다. 내가 이미 모사해 보았던 그림들이다. 이 기록이 맞다면 그림속에 등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스승의 일행들이다. 난 이전에 추정해 본 단원의 걸음 행로(고성~통천~동쪽외금강~내금강~서쪽외금강~회양~금성~한양)를 따라가 남은 그림 중 3점(효운동, 취병암, 맥판)을 그려본다. 이 중 취병암과 맥판은 회양에 위치하고 있다.
'효운동(曉雲洞)'은 반야대의 북쪽 두 개울의 합수목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안무재에 이르기까지의 구간으로, 개울가에 새벽안개 피어오르는 경치가 볼 만하여 효운동(曉雲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반야대와 안무재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내금강에서 외금강으로 넘어가는 고성과 회양의 경계쪽에 있지 않았을까? 찾아보니 안무재는 '내금강의 마하연과 외금강의 유점사를 넘나드는 고개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단원은 마하연을 그리고 효운동을 그렸을 것 같다. 단원의 '효운동' 그림엔 개울 위 미끄럽게 보이는 암벽에 외다리가 사다리처럼 걸쳐져 있고, 두 선비가 외다리를 타고 올라 수목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보이진 않지만 수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돌아 더 올라가면 산과 산사이 안무재 고개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길 아래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합수(合水)의 모습은 아니지만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수없이 들었을 단원은 귀가 아닌 가슴으로 물소리를 받아들일 정도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단원이 회양에서 그렸다는 '취병암(翠屛巖)'은 말그대로 푸른 병풍바위다. 그림엔 골짜기에서 흘러 내(川)를 이룬 공간에 수 많은 조각바위들이 좌우로 즐비해있다. 내(川)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는데 그 중 너럭바위 같은 큰 바위에 4사람이 앉아 있다. 너무나 작은 크기의 사람 모습이기에 자세히 보지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 바위에 앉아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분들 역시 강세황의 일행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푸른 색을 띈 좌우 병풍바위를 감상하는 듯한 사람들을 화폭에 담은 이유는 회양에서 스승을 만났다는 징표를 뜻하는 것인가?
'맥판(麥板)'은 현재 北의 강원도 남동쪽 창도군(昌道郡)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예전 "한양에서 함흥을 잇는 경흥로상의 금성과 회양 사이에 송포진(松浦津)이라는 나루가 있었는데 그 송포진을 맥판진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맥판진 근처엔 '맥판'이라는 험준한 벼랑길이 있는데 "돌길이 울퉁불통, 구불구불하여 어떤 곳은 말(馬)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곳이 있고, 길가 4~500보 아래엔 산골물이 매우 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단원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벼랑길이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벼랑길끝 정상에 두 사람이 서 있다. 계곡물을 건너는 외다리 양 옆엔 민가도 몇 채 보인다. 단원이 이 맥판 그림에도 사람을 넣은 의도를 상상해본다. 그림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함께 그렸다는 것은 지금껏 비경의 자연속에 있다가 이제 인간이 있는 세속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단원이 다시 평범한 백성들 세계로 환속하는 것, 서민적 냄새가 짙은 그의 본연의 그림 세계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갖게된다.
이제 금성에 있는 '피금정'을 마지막으로 그리면 단원의 그림 유람은 끝이 난다. 왕명을 받들기위해 평창 '청심대'를 시작으로 먼 길을 걸은 단원. 회양에서 스승과 회포를 풀고, 한양가는 길에 금성을 들리면 끝이 난다. 나 또한 '피금정'과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그려보고자한 '오대산중대'를 그리면 나의 단원 그림세계 탐험도 막을 내리게된다. 마무리를 잘하여 지금까지의 상상이 더 큰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삼척 '무릉계'와 금강산 '오송대'는 금강사군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어서 그리지 않았다.
20241110,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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