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선진리성(船津里城)
시마즈 요시히로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조선 수군을 궤멸시켰고 노량해전에선 전선 500여 척을 이끌고 순천 왜성에 고립되었던 고니시를 도운 인물이다.
왜군은 임진, 정유재란간
웅천, 울산, 순천 등
주로 조선 해안지역에
약 30여 개의 성을 쌓았는데 칠천량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시마즈는 남해 창선에 왜선을 주둔시키면서 인근 사천 선진리에 성을 쌓았다. 그를 비롯한 왜 장수 10여 명이 주도하여 당시 토성이었던 선진리성을 돌로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늘 이 선진리성에 처음 와 보았다. 사천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5Km 이격된 위치, 야트막한 구릉에 그렇게 높지않은 축성이다. 서쪽은 도로를 낀 벼랑으로 사천만 바다와 접해있다. 배로 창선까지 수시로 전투근무지원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곳이다. 城에서 제일 높은 천수각에 서면 멀리 남해에서 사천만을 따라 올라오는 모든 선박들을 관측할 수 있다. 성내엔 벚나무가 무성하다. 식량이 될 수 있는 은행나무가 무성한 구마모토성과 다르다.
임진란 당시 사천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 선진리성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왜군이 성문을 열고 나와 조명연합군을 격파했다는 기록도 있다. 노량해전이 정유재란시 발생했으니 시마즈는 이 城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창선에 주둔한 왜선들의 전력을 보강하는 전략적 기지로 적극 활용했을 것이다. 순천 왜성에 고립된 고니시와 협공, 이순신의 칼에 죽지않고 둘 다 살아 남아 큐슈로 돌아간 것을 상기하면 이 선진리성이 그들을 구한, 왜적을 위한 왜적의 城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구나. 길지도 않은 성벽을 따라 걸으며 약 430여 년 전의 城 모습과 당시의 전란 상황을 상상해본다.
한국공군(제3 훈련비행단)은 지역에 위치한 이 선진리성의 존재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지 천수각이 있었던 자리에 조국영공을 지키다 순직한 보라매 전사들의 혼을 기리기위한 작은 위령탑을 세웠다. 영광의 역사든 오욕의 역사든 역사적인 사실은 그 자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교훈을 얻는 것이 지혜로운 행위다. 청의 홍타이지에게 인조가 치욕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삼전도비를 없애지않은 이유를 상기하면서 우리 빨간마후라들은 선진리 상공을 잘 지켜주면 좋겠다.
차제에 당면한 국가 위기와 관련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권력을 탐하고, 국민보다 집단이기주의 정치에 매몰되어 있는 반국가세력들에 대한 전국민적 경각심이 역사의 바다에 도도하게 흘러갔음 좋겠다.
20250128, Song s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