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과 장승업
난 앞글에서 "조선 3대 기인 화가는 김명국, 최북, 장승업으로 알려져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애꾸눈 화가 최북은 책 '창해 정란'을 읽으면서 알게되었으나 김명국은 전혀 알지못했다. 그가 그 유명한 '달마도'를 그렸다는 사실에 그의 그림세계가 궁금해졌고 오원 장승업의 작품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은 오원 장승업보다 243년 전인 1600년에 태어나 1662년 사망했다. 임진란이 끝난 시기에 태어났으니 한평생 피폐한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화가들이 다 그러하듯이 그 역시 도화서 화원이었다. 그 또한 천하가 알아주는 술꾼이자 천재화가로 숱한 기행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어려웠던 시대에 술로 자신을 달랬던 천재 예술인들의 운명을 보는 듯 하다. 김명국은 전후 시대 두 차례 일본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갔을 때 그의 신묘한 그림 실력을 접한 왜인들이 그의 그림 한 점을 얻고자 밤낮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두 천재화가는 글을 깊히 익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신묘한 그림 솜씨는 학문처럼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두 천재화가가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붓끝을 휘날린 것 같은 그림 두점을 모사(模寫) 해본다.
'기려도(騎驢圖)'는 눈발이 날리는 날 선비가 나귀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정경을 그린 김명국의 작품이다. '달마도'처럼 진지하지 않게 슥슥 선비와 나귀를 그렸고, 무표정의 선비와 눈발 속 일부 옅은 숲빛은 황량함을 더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선비가 들고있는 채찍은 고개숙인 나귀의 걸음을 재촉하는 듯 하다. 선비가 세상속으로 들어가는지, 세상밖으로 나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그림 평론가는 백석(1912~1996년)
의 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예로 들며 "선비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평한다. 기생출신 자야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백석의 詩(1938년 발표) 일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장승업의 '선인채지도(仙人採芝圖)'는 폭포 옆 암벽위 한 노인이 영지와 약초가 담긴 바구니와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그림이다.
벼랑 위에는 짧고 힘찬 가지가 촘촘히 달린 관목이 서 있다. 서 있는 암벽 아래쪽에는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감돌아 흐를 것 같다. 머리가 벗겨진 노인의 수염과 눈썹, 풍성한 뺨과 턱, 두터운 입술 등은 세상사에 달관한 모습이란 느낌을 준다. 인물에 중점을 두고, 산수 배경은 간략하게 묘사함으로써 노인의 세계에대한 상상을 더하게 해준다. 이 노인도 세상을 등지고 약초나 캐면서 신선처럼 살고자하는 것인지..
두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살았던 세상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본다.
김명국과 장승업은 긴 시간차를 두고 힘든 세상에서 살았다. 한사람은 전란이 가져다준 황폐한 세상에서, 한사람은 조선말 국운이 기울었던 세상에서 술로 시름을 달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난세에 기행을 일삼았던 神이 내린 손과 더불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과 절연하고 싶었던 인간사를 엿본다.
밤 산책에서 만난 그믐달에 두 그림이 새겨지는 것 같다.
20250630, Song s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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