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의 과일가게에는 수박을 비롯하여 코코낫,야자,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람부티등의 열대과일들이 지천으로 있었지만 차를 대고 물건을 흥정할 수도 없고 노점상을 믿을 수도 없어 그냥 지나갔다.
바탕카스라는 지역을 지나서 우리가 탄 차는 히든밸리로 점점 내려가지 시작한다.
도착시간은 11 :00경이었는데 입장료를 물어봤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비쌌다.
5명의 입장료가 무려 9천페소였으니 우리돈으로는 27만원정도였던 것이다.
1인당 5만원이 넘고 오다가 환전소에 들러서 환전해온 돈을 거지반 이곳의 입장요금으로 지불하고나서 안으로 입장을 했다.
여기의 요금에는 점심식사와 간식대금까지 포함이 된것이다.
이곳에서는 페소이외에는 미국의 달러도 소용이 없고 한국돈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의 교민들이나 관광객들 모두가 필리핀에 와서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이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태어나지 않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인데 그만큼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이나 생활여건, 심지어 치안만족도까지 겉으로는 맹비난을 하면서도 사실은 만족한다는 것이리라.
필리핀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아주 극심한데 잘사는 사람이야 훌륭한 교육을 받아서 영어도 하며 문화인으로 상류생활을 즐기지만 가난하면 아예 학교근처에도 못가보고 의무교육이라는 것도 없다.
학제(學制)는 국민학교가 6년이며 중학교는 없이 고등학교만 4년제인데 우리 나이로 16, 17세면 바로 대학생이 된다.
그러니 21세쯤에 대학교를 졸업하는데 여기에도 명문대학은 분명히 있으며 약칭으로 유피(UP - 유니버시티 필리핀)라면 일류중의 일류로 장래가 보장되며 그 보다는 못하나 속칭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대학교로 우리나라의 연,고대쯤 되는 라쌸대학이 현미네 기숙사 근처에 있어서 그앞으로 지나다니긴 했지만 연휴로 굳게 닫혀 있어 내부로 들어가보진 못했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기숙사를 현미네와 같이 쓴다고 하였다.
뱁스의 남편은 아마 최종학력도 뱁스에 비해 훨씬 못미친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이곳 남자들 가운데는 게이(Gay)가 많아서 자주 목격이 되었는데 여장(女裝)을 하였지만 목젖이 튀어 나오고 키가 비교적 크며 목소리가 걸걸하면 십중 팔구는 여장 남자인 게이로 보면 된다.
남자들끼리 부부처럼 살아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비록 여자가 벌어서 먹여살린다지만 남편이 직장이 있거나 부양능력이 있느냐보다도 게이가 아니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는 판이니 과연 이곳은 남자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천국(天國)이며 헤이븐 이스 히어 가 아닐까?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분명히 역사는 지속될것이며 한번 자신에게 씌워진 가난이란 굴레도 또한 기회의 상실 못지 않게 대를 이어 물려진다는 큰 숙제가 남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은 또 있었다.
정가(定價)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큰 상점이나 프랜차이즈음식점메 가면 가격표시가 되어 있지만 교통요금부터 이발,미용요금까지 가격을 협정(協定, 좋은 말인데 여기서는 흥정수준)에 의한다니 하는 말이다.
교통요금을 예로 들었지만 몰오프아시아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택시에 타고 현미네 집으로 갈 때와 7페소짜리 지푸니를 기념으로 탔을 때 이외엔 그렇게 많이 차로 돌아다녔지만 한번도 그냥 탄적이 없다.
반드시 먼저 흥정을 해서 서로 오케이를 해야만 이발,미용등도 비로소 써비스가 개시된다고 하며 그 이외에도 여기에 와서 한국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강도를 당하는 것보다도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란다.
여기 사람들처럼 모기에 내성이 생겨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면 그만이겠으되 아직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이 만약 모기에 제대로 한방(원펀치)의 헌혈을 하게 되면 벌에 쐬인 것처럼 아프고 퉁퉁부어서 며칠동안 고생을 한다고 들었다.
모기에도 국제적인 등급은 있는 모양인데 여기 모기가 슈퍼모스키토인가 보다.
히든밸리의 원주민 가옥에서 먹는 점심메뉴도 역시 부페였는데 아주 고급의 부페로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각종 양념에 찌거나 구워져서 나오고 죄다 먹을만 해서 무지하게 여러번을 가져다가 먹고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고생했다.
키타맨 두명과 여자가수가 나와 우리 옆에 와서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운운"하는 가수 김수희의 "애모(愛慕)"란 노래를 불러줬는데 그들과 포즈를 잡고 사진도 찍고 팁도 50페소(1,500원정도)를 주었다.
발음이 약간 어색했으나 풍부한 성량과 절묘한 바이브레이션으로 감동을 받게 한 순간이었으며 식사에 곁들여서 현미가 추천해준 "산 미구엘"상표의 5도짜리 맥주맛도 아주 일품이었는데 값은 별도로 청구하는 것을 보니 70페소(약 2,100원정도로 시중 가격의 두배)였다.
노래가사의 의미를 아느냐고 묻자 많이 들으면서 외우기만 했지 의미는 하나도 모른다고 하였다.
우리 옆자리에서는 노인과 어린이가 밥을 먹었는데 곁눈질로 살펴보니 우리처럼 고기를 많이 가져와서 먹는 것이 아니며 밥을 무지하게 퍼담고 그 위에다가 고기를 국물과 함께 겨우 몇개만 얹어서 먹고 또 밥을 그만큼 퍼담아다가 같은 방식으로 더먹는 것이었다.
밥에 무슨 걸신(乞神)이 들렸는가?
그런데 노인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어린애도 그렇게 밥을 많이 먹어댄다.
밥을 먹고 나와서 온천으로 이어지는 산책길로 나섰는데 길섶에는 갖가지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고 특히 보라색 나팔꽃처럼 생긴 꽃과 무궁회처럼 생긴 꽃, 칸나, 난(蘭)종류, 영산홍처럼 생긴 꽃과 공기청정기의 역할을 한다고 우리 가정에서 흔히 화분으로 심는 산세베리아는 잡초처럼 길가나 숲속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이름모를 과일 나무에는 어른 머리통만큼 큰 과일이 달려있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온천탕으로 걸어갔다.
이곳의 시냇물은 거의가 평지보다 15미터정도 낮게 깊은 계곡을 형성하면서 흐르고 있었는데 석회암지대라서 트러스트지형을 흘러가는 물길이 주변을 녹여 점점 더 계곡을 깊게 형성해온 것으로 짐작되었다.
야외온천장의 탈의실에서도 호텔에서처럼 디파지(Deposit)가 적용되었다.
나무옷장 하나를 사용할 뿐인데 웬 손상위험부담을 내라는 것인가 따지고 싶었지만 하라는대로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온천탕으로 약 50미터정도를 내려갔다.
온천탕은 한개만 있는 것이 아니고 3층으로 되어있고 주변의 다른 곳에도 여러 온천탕이 갖가지 이름을 달고 위치해있었다.
히든풀, 소다풀, 러버풀등이 개개의 온천탕 이름인데 아마도 온수(溫水)의 성분은 분명히 같을 것이었다.
아내가 수영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위쪽의 탕은 사용을 금지당하고 가장 아래쪽의 온천탕을 사용했는데 얼마나 물이 맑고 따뜻한지 피로가 죄다 풀리는것 같았고 어깨 높이의 물속에서도 바닥의 모래가 훤히 보였다.
주변의 자연수목과도 잘 어우러졌는데 흠이라면 이용요금이 다소 비싸다는 것과 자주 출몰하는 수풀모기였다.
가영이가 얼굴에 한방을 쏘였다는데 피를 빠는 암모기가 아니었던지 다행히도 상처가 남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평가를 하자면 별반 꾸밈이 없고 자연온천수만으로 이루어진 천연계곡인데다 주변의 원시림과 잘 매치가 되어 관광상품의 가치는 높더라는 소견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에 이런 정도의 관광자원이 있다면 큰 각광을 받게 되리라 싶었다. (제4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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