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스크랩] 좌충우돌가족의 필리핀여행기 제 6편.

도보사랑 2012. 9. 7. 08:39

호텔로 오는 택시도 100페소를 달라는 것을 흥정끝에  겨우 70페소를 주기로 하고 왔는데 만약 미터기를 꺾었더라면 기본요금인 30페소 정도의 거리란다. 

이제 시내전체가 본격적인 명절분위기인데  사방에서 쏴대는 공포탄소리와 시끄러운 폭죽터지는 소리가 뒤섞여서  사람을 온통 불안스럽게 만든다. 

호텔로 돌아와서 현미와 애들은 같은 방에서 쉬고 우리부부도 쉬러 들어왔는데 애들의 방엘 갔다가 돌아온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뭔가에 의하여  잔뜩  삐져서 왔던 것처럼 보이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안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울고있는듯 싶다. 

이건 순수한 내 짐작일 뿐이지만 가을이 외에는 저 사람을 울릴만한 재간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뭔지 몰라도 엄마에게 속상한 말을 했으니까 저러는 것 같은데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할 뿐이다. 

여기서 만약 원인규명을 한답시고 따지고 들다간 일만 일파만파로 확대가 되고 해결은 더욱 난망해진다. 

내일 아침이면 그냥 시간이 흘러가므로서 자연히 해결될 것이며 이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므로 나는 아무 눈치도 모르는 척, 여행기만 계속 쓰는 중이다.  

가을이도 원래 나쁜 뜻으로 했던 말은 아닐 터이지만 분명히 뼈가 있는 지적을, 그것도  현미가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해대므로서 엄마의 속을 상하게 한것임이 십중 팔구는 들어맞을 것이다. 

내가 어제부터 자던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든척하고 있었더니 그때사 아내가 나와서 이불도 아니고 호청같은 것을 머리까지 둘러 써버린다.  

그래, 그까짓 것 다  좋다,  애들이나 여자들은 싸워야 큰다더라.  

여기에 오기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듣던대로 치안이 불안하다거나 도서(島棲)지역에서는  공산게릴라들의 치하에 있는 곳이 많다고 알았기에 정정이 불안하다는 정도는 익히 아는 것이지만   이제 부익부빈익빈의 실체까지도 눈에 보이는듯 하다. 

건물마다 출입구엔 반드시 두세명의 가드들이 총을 들거나 수갑을  꽁무니에 매달고 서있다.  

만약 쇼핑몰이라면 더욱 극심한 경비원들의 배치가 눈에 띄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불문곡직하고 출입자에게 금속탐지기따위를 들이대고 총이나 수류탄,폭발물등의 테러용품 반입을 차단하거나 색출하는 것이지만  만약 내가 마음을 먹고 테러용품을 쇼핑몰의 내부로 반입하기로 한다면 이 정도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겠다.   이 또한 실업자구제책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렇게라도 사설경비원을 많이 채용하여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좋겠지만  듣자하니 이마저도 극심한 이직율로 사정은 여의치가 않은 모양이었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하기가 싫어지면 인수인계도 안하고 출근을 안해버려서  임시고용원의 알량한 신분을 면키는 어려워 보였다. 

도대체가 근로의욕이 성(盛)한 것도 아니며 먹고 입는 것 정도는 아무런 일을 하더라도 가능하므로 제일 쉬운 구걸이나  행상,  특히 담배를 낱개피로 파는 사람이 길거리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담배 한갑의 값을 두배로  확실하게 늘릴 수가 있으니 잘만하면 많은 돈도 벌수가 있겠지만  부지런하게 일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담배행상들은 차도 한가운데서 옆에는 차들이 씽씽달리는데도 불구하고 낱개피로 담배를 지푸니 승객이나 운전사에게 태연하게 판다. 

심지어는 승객이나 기사에게 친절하게도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준다. 

길거리에서는  아무나 담배를 피우는데 얼른 봐도 청소년같지만 술도 한잔 걸쳤는지 얼굴색깔도 불콰하며 담배도 수준높게 폼까지 잡아가면서 피우는 모습도 더러 눈에 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담배를 갑째로 살 여력은 없는 것 같고 포장마차에서 담배를 파는 노점상에서도 개피로 풀어서 담배를 팔고 있다.  

어떤 담배노점상은 천막으로 되어있으며 안에서는 남여가 모여 담배한대씩를 사서 피워대느라고 공기조차 밖의 공기하곤 색깔조차 여~엉 다른데도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하거나 싫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아침 7시가 되자 아내는 애들을 깨우려고 갔다.  

내원 참, 글쎄,  이렇게 될줄 알았다니까.

여기서 아침을 먹고나면 체크아웃을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의 짐을 현미네 방에 갖다두고 오늘의 관광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가는 판세를 보니 시내에 온통 바퀴달린 것은 죄다 기어나올 것이 분명하고 사람이라고 생긴 것들도 모두 나와서 연휴의 마지막을  즐길 것이라는데 자칫하면 공항에 나가는 교통편이 체증이 되거나 시내에 갇힐 우려마저 있어 보였다. 

그러니 일정을 조속하게 마무리하고  최대한 빨리 공항으로 나가는 것이 상수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죄다 놀자판이라 렌트카대절도 쉽지 않고 값도 평소의 두배를 부르는 것이 보통이라니 천상  택시를 이용하는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다. 

이제와서야  가을이가 털어놓는 것을 들어보니 캐나다에 가려고 비행편을 예약했는데 단 몇분간만에 간발의 차이로 예약했던 비행기를 놓쳐서  캐나다에 가는 비용만 50만원을 더들여야만 했다던 이야기를 한다. 

아마 내 불도깨비성격에 그때 당시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도저히 칭찬이나 격려따윈 해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을 여기에서 약간 낮춰서  좌충우돌가족이라며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상은 질서정연한  기러기의 행열이나 같으며  앞에서 내가 날개짓을 힘차게 하므로서 뒤에 따라올 가족들의 공기저항(空氣抵抗)을 줄여주고 부력(浮力)은  오히려 늘려주는 것이  가장(家長)된 자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자정이 지난 시간에 출발할 비행기이지만  여섯시쯤엔 공항으로 떠날 예정이며  시간을 보내더라도 공항에서 보내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시간이 7시 20분인데 밖에서는 간간히 공포탄소리가 들려온다. 

무기의 소지가 불법이 아닌 자위수단이라선지 몰라도  폭죽대신 저렇게 어지럽게 공포탄을 쏴대는 것이며  공포탄이  내가 알기로는 상당히 고가일텐데 저렇게 사방에서  어지럽게 쏴대는 것을 보면  흡사 1년 가운데 며칠만 살아버리고 말겠다는   미친 놈들 같다. 

권총 공포탄 한발이면 담배를 최소한 갑째로 두갑은 살수가 있고 50페소짜리 식사정도는 몇끼니를 해결할 수가 있을 터인데  말이다. 

이게 어떻게 축포(祝砲)라는 말인가? 

사람이 놀라서 특히 관광객들이 자리를 뜨게 만드는데 이건 분명히 축하가 아닌 공포수준이다. 

 연이은 총소리에 잠을 설치게 하는데도 마냥 연말과 크리스마스의 연장행사라고만 둘러댈 것인가? 

거기에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머플러를 개조하여  굉음이 나도록 만든 오토바이까지 설치고 다니니까 도로가 마치 전쟁의 와중이나 같은데도  이 나라의 경찰들은 손을 놓고만 있다.  

관광객들이 돈을 쓰도록 하는 것이 도리일텐데도  무서워서 밖에조차 나가질 못하게 만드니 이게 과연 될법이나 한일인가? 

이러면 천혜의 관광자원도 뭣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너희 필리핀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연휴때 쏴대는 총알값이나 폭죽만 아끼더라도 국민소득은 상당히 배가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오늘 일정은 쇼핑과 해양수족관의 관람이 주요 테마이니  우리를 좀 오늘 하루만이라도 특별히 봐주면 안되겠냐? (제6편 끝)

출처 : ♥오로라의 향연♥
글쓴이 : 냉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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