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욕을 마친 후 탈의실에서 어떤 부자간(父子間)을 만났는데 꼭 필리피노들처럼 보여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아이가 먼저 밖에 나가서 "아빠, 빨리 와요."라고 외치므로 비로소 한국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으며 여기 오게 된 계기가 몇년전에 패키지여행의 한 코스로 여길 왔던 것이 인연이 되어 매년 겨울이면 기족들을 데리고 와서 1박 2일간 머물다가 간다는 것이며 1박 2일의 요금이 1인당 80달러라고 하였다.
우리 가족과 현미가 수영장 순례를 모두 마치고 탈의실로 올 무렵부터 비가 오더니 점점 더 빗줄기가 굵어진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아예 소나기로 변해 있었다.
쉬이 그칠 비가 아니길래 우산을 달라고해서 받쳐들고 주차장으로 걸어왔는데 아직 간식(間食)을 줄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시내의 몰오프 아시아(Mall Of Asia)라는 대형유통센타에서 오후 4시에 뱁스부부와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말에 따라서 3시간의 고가(高價) 온천관광은 종지부를 찍고 용약 메트로마닐라시티를 향해 출발했다.
차창밖으로는 계속하여 소나기가 내렸으며 나는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었는데 창문을 닫은 에어컨버스, 문을 열고 다니는 값이 저렴한 버스, 노란택시, 흰택시, 트라이시클, 매연을 사정없이 내뿜는 지푸니, 거기에 운전사는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열심히 발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테디캡까지 길에 나와 거센 소나기를 맞으면서 어디론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저런 모든 교통수단들은 죄다 모종의 흥정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러니 자주 길이 막힐수 밖에는 없었는데 우리의 용맹무쌍한 기사는 조금만 틈이 보이면 알아서 추월을 감행하곤하여 등골이 오싹하고 아슬아슬하게 그걸 바라보는 나는 뒷좌석에서도 운전에 동참하는 듯이 공범의식마저 들곤 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들어버리고 유일하게 잠이 들지 않은 현미와 얘기를 좀 했더니 시끄럽다고 얘기조차 하질 말랜다.
여긴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헌법(憲法)상에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해도 너무 한다. 에이 제길, ㅆㅂㅆㅂ 이다.
현미는 한양공대를 나왔지만 전공이 교통공학과라선지 교통사고조사계장을 경험했던 나와는 도로구조나 설계, 신호체계까지도 얘기해보니까 많이 통하는 점이 있었다.
드디어 빗길을 달려 오후 4시경에 몰오프아시아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차를 보내면서 차에 짐을 두고 몸만 내려서 약속장소인 맥도날드햄버거 앞으로 간다.
우리 안산에서 제일 크다는 쇼핑장소로서 고잔 E 마트를 꼽는데 그걸 10개쯤 합쳐놓은 위용(威容)과 많은 사람들의 물결에는 새삼 놀랐으며 동양최대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오늘이 뱁스의 생일이라고 해서 들렀던 레드리본 (Red Ribbon)이란 제과점에서 생일케익을 사는 데는 정말로 왕짜증이 났다.
원래 바쁘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람들이라지만 이건 완전히 닐리리야, 세월아, 네월아에다가 얼마나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또한 많이 걸리는지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참을 수 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나 속으로는 종업원들을 수도 없이 목을 잘랐다가 붙였다가 했으니 그래도 반분은 풀린 셈이다.
정말로 내가 사장이라면 저렇게 싸가지 없는 종업원, 굼뜨고 멍청하며 손속도 느린 사람들에게 월급을 줘가면서 부릴 수가 있을까?
아마 속이 터져버릴 것이었다.
케익값도 490페소이니 1만 5천원정도로 아무리 쵸코렛으로 범벅을 했다고 치더라도 현지 물가와 비교할 경우 결코 싼 값이 아니었다.
가을이는 필리핀에 있을 때에 여기에 와서 시장을 보곤했다면서 여러 곳을 소개할 눈치이다.
만약 케익가게처럼 느려터졌다면 음식이고 뭐고 없을텐데 우선 뱁스를 만났으니 아이스키림이나 팥빙수를 먹자는 의견은 일치되어 중국계 (차이니스 푸드 프랜차이즈, 華商)인 챠오킹(超群, Chow King)에 들어가서 할로할로 (한국의 팥빙수와같음)를 주문했는데 여기는 아까 들렀던 케익점과는 종업원들의 태도부터 달랐다.
팥빙수라고 하지만 사실은 팥은 안들어가고 과일, 젤리와 얼음으로 만든 죽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었다. 맛이 무척 달았고 개당 가격은 60페소로서 음식의 질과 재료를 비교하면 적당하다고 보였다.
이제는 렌트카를 다시 불러내어 저녁식사장소인 씨푸드(Sea Food) 전문상가로 이동할 차례였다.
생선전문요리를 하는 상가에는 출발후 금방 도착한것으로 보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듯 싶었다.
그때가 이미 오후 6시(18 :00)가 다되었으므로 우린 저녁식사를 마친 후 20 :00까지는 호텔까지 도착해야 하는 것이어서 다소는 서두를 필요도 있었다.
상가에서는 생선을 사서 앞에 위치한 요리점에 갖고 가면 요리를 해주고 술과 밥도 나온다.
그런데 생선을 고르는 것이나 요리를 하는 것이 입맛에 안맞는다면 오늘 일정은 완전히 초를 쳐버리게 된다.
그래서 오랜 흥정끝에 다금바리종류라는 생선 두마리와 큰새우(대하는 아니었고 중하정도 크기였음)등 2천페소분량을 사서 들고 바로 앞집으로 들어갔다.
요리를 4가지로 해주는데 밥까지 합해서 1천페소를 주기로 했고 맥주를 두병만 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낮에 마셨던 산 미구엘맥주를 병으로 여섯개나 오픈을 시켜갖고 와버려서 생일케익을 자르면서 축하노래를 불러주고 건배도 했지만 두병은 끝내 남겨놓고 나왔다.
우리가 한국사람들이란 것을 알고 게이로 보이는 자식이 노래방기계로 노바디(No Body, 원더걸스)라는 노랠 틀어준다.
여기서 4접시의 새우와 다금바리 요리값에 1,000페소를 지불했으니 저녁식사에 우리 돈으로 총 9만원을 지출했던 셈이다.
생선으로 만든 탕수와 새우찜은 그런대로 맛있었는데 다금바리찜은 인기가 완전히 꽝이었다.
그런데 진짜 웃기는 것은 그렇게 많은 밥을 단 한톨도 안남기고 뱁스부부가 다해치웠다는 사실이었다.
내 앞에 앉은 뱁스남편이란 녀석은 밥을 정말로 많이 먹었고 뱁스도 여자인 주제에 밥을 두차례나 덜어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 생선을 국물까지 밥위에 숟갈로 쳐가면서 먹었다.
이윽고 7시쯤 되었을 무렵 남은 음식들을 싸달라고 해서 뱁스부부가 갖고 갈수있도록 했는데 호텔에 도착하고 또 그린벨트라는 명품쇼핑센타에 갔을 때까지도 무슨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그걸 끼고 다니면서도 한시도 그걸 놓지 않고 흡족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니 순간적이나마 그가 아내를 잘둔 덕분에 엄청나게 수지를 맞은 졸부형상(猝富形像)의 남자쯤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우린 렌트카의 요금을 결재한 후 차량을 보냈는데 방에 올라와보니 청소도 안해놨고 나갈때 그대로여서 크게 실망을 했지만 바로 거리로 나가 명품점(그린벨트)을 관광하고 사진도 찍으며 지푸니도 한번 직접 타보기로 했다.
일행 7명의 요금이 49페소였으니 정말로 값싼 서민용의 교통수단임은 틀림없었지만 달릴 때는 몰랐던 것이 신호에 걸려 서있을 때의 고역(苦役)스러움이었다.
특히 옆에 같은 지푸니가 한대라도 서있으면 매연의 고통은 두배로 증폭된다.
골치가 지끈거리는 것이 도시매연의 주범이며 다시는 탈 게 아니라는 생각과 반드시 구조를 변경하던가 과감하게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가 시급하다고 보였다.
그린벨트(Green Belt)라면 우린 도시의 무한정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책정한 개발제한구역쯤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떠올리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곳에서는 가장 번화가의 고급명품쇼핑몰을 지칭하는 의미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화려한 네온싸인과 현란하게 치장한 쇼핑객들의 모습, 필리핀의 상류층들만 방문한다는 의미에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여자들은 한결같이 늘씬하며 미모도 거의 하얀계통의 피부가 받쳐주어 우리나라의 강남(江南)을 연상시켰으며 우린 거기에서 사진도 제법 많이 찍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데 지푸니를 타려고 했더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도저히 순번을 기다릴 수가 없어 어렵게 택시에 타고 뱁스부부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재5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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