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고부터는 불안한 정정을 반영하는지 공항진입로에서부터 출입구까지만 해도 총을 멘 근무자들이 택시의 트렁크와 심지어는 운전사의 시트밑까지 삼엄하게 검문을 하였고 그후로도 안전장치를 여러차례나 통과하여 아홉시부터 시작한다는 티켓교환및 수하물발송에 대비하고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가 너무 빨리 도착해서인지 제주항공수속을 하는 쪽의 의자에는 앉아있는 사람조차 별반 보이질 않았다.
나는 필리핀여행기의 마지막장면을 차분하게 앉아서 여행기노트에 옮겨적는 중이었는데 사람들 몇명이 여덟시 20분도 안되어 제주항공 창구로 가고 있는 모습이 보여 우리도 얼른 세번째로 대열에 합류를 했더니 대기하는 인원은 우리의 뒤로 순식간에 100여명이나 늘어서서 수속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번 선두를 잡기가 어렵지 선두자리의 계속 유지는 아주 쉬운 편이었다.
나도 고집이 있지 끝까지라도 기다려주지 못할 바가 아니었으므로 그 자리에 아예 편하게 주저 앉아서 선두자리를 고수하였는데 거지반 아홉시가 넘어서야 필리핀사람 종사원들이 나와서 수하물접수 수속및 항공권 교부를 시작한다.
나는 맨앞에 자리를 잡았기에 내심 기대하고는 있었지만 우리의 좌석이 첫번째줄 창쪽 두좌석과 두번째줄의 안쪽 두좌석으로 바로 앞뒤에 배정이 되었다.
이것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까지 성공예감이 통하는 느낌을 약속하는 신호같은 것이었다.
여기 공항내부로 들어오는 것과 더불어 지겹던 총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롤송과도 그만 자연적으로 이별이 되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어느 사이에 그런 소음에 익숙해져버린 우리의 청각기능이었으며 너무 조용하니까 오히려 더 이상해자는 것 같았다.
우린 선두자리의 여세를 몰아서 세관검색대도 빨리 통과를 하였고 보세구역내로 들어왔지만 내부의 면세상가들은 이미 전부 철시를 해버린 상태였다.
가영이와 가을이는 아예 의자에 길게 누워버렸고 나는 마지막으로 여행기를 정리중이며 아내는 큰것을 보려는지 화장실에 갔다.
자정이 되기 훨씬전부터 시내쪽의 밤하늘에는 간간히 불꽃쇼가 폋쳐지더니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할 무렵(00 :00경)엔 가장 절정을 이룬다.
전후좌우 어느 방향도 불꽃이 안올라오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아니, 이 친구들은 1년 뼈빠지게 벌어서 불꼴놀이 하는 데다가 돈을 다 써버리는 것은 아닐까?
무슨 불꽃놀이 장소가 한두곳도 아니고 밤하늘을 온통 수놓듯이 시내전역의 불꽃놀이가 한꺼번에 벌어져서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도 잠시 미루고 그 광경을 쳐다 보다가 여객기내부에 입장을 했는데 1번줄의 창가에 앉아서 보니까 오히려 밖에서보다도 더 잘보인다.
그리고 우리를 태운 여객기가 하늘로 날아 올라서 고공에서 바라보는 메트로마닐라시의 전역은 마치 스타워즈라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곳곳에서 올라오는 불꽃과 발밑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불꽃류의 현란함이 어울려 더욱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아내는 기내에서 파는 면세양주 두병을 30만원에 구입을 하더니 내게 혹시 윗분들 중 여행을 다녀온 인사를 드릴 분이 계시면 드리라고 건네주는데 이것 또한 정말로 감사하고도 고마운 일이로구나.
비행기는 올때처럼 같은 기종의 2302편이었고 기상의 악화때문인지 자주 요동을 치며 좌우로 흔들리기도 했지만 무사하게 운항하여 05 :10경이 되자 다소 불안하게 착지를 하여 가슴이 순간적으로 철렁했으나 인천공항에 안착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가족은 이번에는 오히려 너무 빨리 비행기에서 내리는 바람에 수하물을 찾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먼저 수속을 받고 실었던 가방이라선지 다소 늦게 나온 가방들을 모아서 카트에 싣고 세관을 통과하자마자 7번게이트의 안산행버스를 타는 곳으로 로 나오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영하 8도 추위가 엄습하였다.
28도의 나라에서 왔으니 4시간만에 물경 36도나 차이가 나는 곳으로 와버린 것이었다.
안산으로 가는 첫차는 06 :20분 태화 리무진 버스였는데 시간맞춰 마침 알맞게 나온 셈이었으며 안산터미날에 도착한 시간은 07 :10경이고 바로 택시로 집에 온 시간이 07 :35경, 집에 오니 디올이가 거의 실성이라도 할 지경으로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얼핏 봤어도 오줌을 10개소가 넘게 그것도 주로 식탁주변에다가 집중적으로 실례를 해놨다.
에이 정말로 개같은 녀석, 참으로 형편없는 똥개같으니라구.
우리 가족의 신년인사회는 필리핀의 니노이 아키노공항에서 서로간에 신년덕담을 나누었던 걸로 시작이 되었는데 올해에 가족들이 함께 풀어나갈 화두를 정리하자면 가족간의 끈끈한 정리(情離)를 최고정상의 수준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이번 여행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유지해나가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실현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흔히 우리는 인생자체를 여행(旅行)에 비유하곤 한다.
여행에는 가다가 무슨 사고가 나거나, 병(病)이 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집에 도둑이 들어 빈집을 죄다 털어가버리거나 여권을 잃어버려서 귀국을 못하게 될것 같은 걱정에다가 가족간에 여행갔다가 현지에서 싸워버리므로서 오히려 여행전보다 더욱 사이가 나빠지는 걸 우려하는등 종합선물보따리로 한가득 근심의 화근덩어리가 여행을 가기 전보다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근심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여행을 포기해버리면 그 뿐이다.
하지만 인생은 싫건, 좋건 여행의 연속이며 전혀 여행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더라도 근심을 아예 털어놓고 홀가분하게 떠나버리거나 여행을 통하여 근심의 해결능력을 배양하고 오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 되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에 가을이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여행은 과거의 신산스러웠던 경험을 일깨워주므로서 현재와 미래가 더욱 알차고 발전적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거나 앞으로의 대처방법을 제시해주는 순(順)기능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차제에 이번 여행을 종료하면서 평소에 너무 잘들해줘서 고마웠지만 그에 대한 표현을 못해왔던 우리 가족들에게 올 신묘년(辛卯) 한해에도 더욱 힘차고 내실있게 살아보자는 다짐을 해두고 싶다.
이제 나는 두어시간 동안 집에 앉아있다가 수원으로 종재를 태우려고 가야 하며 저녁에는 사무실로 근무도 나가야만 한다.
종재까지 집에 온다면 우리 가족의 신년 초하룻날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여행내내 종재만 떠올리면 죄스러웠고 마음속 깊이 무겁게 잠재해있던 앙금조차도 활짝 가셔질 것 같다.
그리고 종재로 인하여 그동안 아내가 겪어야만 했을 마음속 깊은 곳의 상흔(傷痕)들도 앞으로 같이 살아가는 동안 따뜻하게 보듬고 안아주어서 자연치유에 가깝도록까지는 만회기회를 제공할 의무도 평생동안 나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더불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부부간의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우리보다는 더욱 오랫동안 종재에게 가족간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다가서줄 가을이와 가영이에겐 차마 부탁조차 어려운 짐을 안기게 되는 것인바, 거기에 대한 부모로서의 배려도 충분히 심사숙고를 해둬야만 할것이다.
절대 가족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청탁을 하지 못할 바가 이런 것이란 의미에서도 더욱 소중한 내 가족들아.
우리의 다가오는 미래는 너욱 생동감있고 알찬 것으로 꾸며 가보지 않으련?
마지막으로 올해에 추진한다는 것에는 약간의 무리수가 따르겠지만 적어도 내년쯤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일주일에서 열흘간의 가족여행을 기필코 성사시켜 보자꾸나.
또 한번 더 가슴속의 뜨거운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하겠다.
내 아내여 !
그리고 우리의 분신인 1남 2녀의 아들, 딸들아 !
西西歷紀元 2011年 1月 2日날에
집집에서 여행기를 최종 마무리 하면서
朴 年 基 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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