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들은 마지막 관광인 수족관 관광에 나선다.
지금 시간이 오후 2시 20분인데 여섯시까지 관람을 하게되니까 구경할 시간도 비교적 넉넉하다고 생각되었다.
택시를 잡아서 이동을 했는데 역시 따갈로어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현미가 교섭창구로 나서더니 미터기요금에 나오는 것보다 20페소를 더주기로 하고 흥정을 마쳐 택시에 올랐다.
택시라는 말의 이행시를 들어는 봤는가?
어느 여자에게 흑심을 품은 남자가 진달래라는 제목의 삼행시를 들려주자 여자가 택시란 이행시로 화답을 했다라는 말인데 진달래는 " 진짜 달라면 줄래? "라는 약어였고 답변인 택시는 "택도 없다. 시벌 놈아."라는 표현이었더란다.
우린 그런 택도없는 차를 타고 마닐라만에 위치한 오션 아리움( Ocean Arium)에 도착을 했고 입장권이 코스에 따라서 값의 차등이 있었지만 우리가 끊은 풀코스는 4가지의 볼거리 전부를 종합한 것이어서 1인당 500페소라는 적지 않은 금액에 입장권을 구입해 개찰구를 거친 뒤 들어가자마자 아마존의 피라루쿠란 대형 담수어종(淡水魚種)을 필두로 하여 해수어(海水魚)까지 주욱 관람을 했는데 첫번째 관(館)에서 가장 압권은 대형수족관에서 상어와 가오리가 천천히 유영하는 가운데 미녀 2명이 다리부위를 마치 인어(人魚)처럼 꾸미고 수족관의 양쪽에서 한명씩 수중쇼를 하는 광경으로 여기저기서 온통 카메라 불빛이 미녀들을 향해 쏟아져 카메라 플래쉬세례가 멈출 줄을 몰랐다.
어종별로는 열대해수어인 나비고기종류가 가장 많았는데 예쁜 색깔의 물고기들이 춤추듯 수족관내에서 해엄을 치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기에 사진들을 찍느라 쉽게 자리를 뜰수조차 없었다.
이때까지도 현미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오기로 했던 뱁스는 아침부터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다.
가을이의 말로는 뱁스가 옛날에도 한번 연락이 안되면 무척 애를 먹었다는데 오늘도 또 버릇이 도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기가 먼저 오라고 했고 생일이라기에 축하까지 해줬으며 제법 거나하게 만찬을 접대해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냥 실망을 시켜줘도 좋은 것일까?
내심으로는 우리가 귀국을 할때에 공항으로 가기 전쯤 해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최소한의 페소화만 남기고 나머지는 죄다 주고 가자고 할 마음이었는데 하는 행동을 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차라리 그럴 돈이 있다면 남김없이 현미에게 줘야만 훨씬 앞으로의 관계라도 계속해서 좋은 쪽으로 연결이 되리라.
오히려 현미에게는 따갈로어를 좀 안다는 이유로 택시비와 물건값등의 부담만 자꾸 끼치게 되므로서 지금까지 쓴돈만 해도 몇천 페소정도는 너끈하게 쓰게 하였고 관광객들인 주제에 오히려 공부를 하려고 온 유학생에게 폐를 끼친다는 미안함만 연이어 착착 적금(積金)처럼 되어가는 실정이었다.
수족관에는 복어종류도 많았으며 희귀어종도 꽤나 많이 전시가 되었으므로 나는 알고있는 상식선에서 그런 것들을 애들에게 설명하느라 나름대로 분주했다.
두번째 관(館)이 바로 종류는 몇가지가 안되는데 해파리종류만을 별도로 모아놓은 곳으로 귀여운 소형의 해파리들이우산같은 머리를 폈다가 오무리면서 헤엄치는 것이 아주 보기가 좋았으며 어떤 곳은 거울을 사방에 붙여놓는 등으로 눈이 부시게 시설을 잘해놔서 오히려 우린 여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번째인 물개쇼가 4시반경에 공연시작이라 조금 시간이 남았으므로 마닐라만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해변풍경도 감상을 했는데 몰 오프 아시아에서는 우중충해보였던 하늘도 여기에서는 활짝 개어 먼바다까지 조망권이 확 트였고 다만 아쉬운 것은 연안이라선지 바닷물의 오염이 너무 심각하더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물속에 만약 수족관의 고기를 여과장치도 없이 담가둔다면 단 몇시간도 안걸려 모조리 떼죽음을 하리라고 보였다.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제리스 그릴(Jerrys Grill)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밖에 전시된 음식물의 사진만 보고 생오징어 양념구이를 주문하고 나는 맥주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쥬스를 한잔씩하고 나와서 개장시간에 맞춰 물개쇼장에 입장을 했다.
물개쇼는 별반 특이한 점이 없이 평범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하는 물개쇼나 돌고래쇼가 훨씬 난이도나 훈련도가 높다고 보였으며 거기에서 나와 다시 물개우리로 옮겨 마지막 네번째 관(館)의 관람을 마치고 오션 아리움앞에 있는 시민공원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공원은 우리나라에 비해서 시설물들이 훨씬 빈약했는데 더욱 볼썽 사나웠던 풍경은 공원에 나온 행락객보다 장사꾼숫자들이 훨씬 더 많더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연말연시에는 하늘에 연(鳶)을 날리는 풍경이 있었던지 집에서 직접 손으로 만든 연이 아닌 박쥐, 솔개, 비행기모형등의 각종 기계로 찍어낸 연들이 더러 하늘에 떠있었는데 공원 잔디들은 얼마나 밟혔는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
지겨운 총소리는 이제 바로 가까이에서 들려와서 따라 다니면서까지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래서 얼른 자리를 떠서 현미네 기숙사쪽을 향해서 왔는데 마지막으로 필리핀에서 하는 식사인 만큼 여기 원주민들의 식사처럼 해보자고 하여 돼지고기 꼬치구이와 햄버거를 시켰더니 나온 것이라곤 달랑 꼬치구이 하나에 밥뿐이었고 오히려 햄버거가 더욱 충실한 식사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도 밥한톨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웠으며 가을이는 밥이 리필이 된다고 하는 말만 믿고 밥만 마구 먹더니 밥을 리필을 해달라고 하자 우리가 먹었던 마늘밥은 리필이 안된다고 하여 순간적으로 머쓱해지고 말았다. 옆의 좌석에서는 우리나라의 된장국처럼 생긴 따뜻한 국물을 떠먹거나 밥을 말아서 먹길래 국물맛을 보자고 했다가 맛만 보고 깜짝 놀라서 숫가락을 얼른 놨다.
냉면육수처럼 생겼지만 맛이 너무 시큼했고 아무런 맛도 없는데 거기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니 좀체로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필리핀사람들의 식사인 돼지고기구이는 달랑 돼지고기 엄지손톱크기 일곱점을 양념발라서 구운 것인데 50페소이니 우리돈 1,500원 정도로 김밥한줄 정도의 값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반찬을 여러가지 놓고 먹는다는 것을 기대하면 절대로 안된다.
수북하게 쌓인 밥위에 고작 고기 몇점이나 닭다리 한개를 얹어서 먹는 것이 고작인 그들의 식사는 대개가 50 - 60페소의 1시간 임금에 해당되는 값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18 :20경이 되어 현미방으로 가서 가방들을 찾아 메트로코리아측 경비원이 불러다 준 택시를 400페소에 흥정하여 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아뿔싸, 이 때의 광경만은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더라는 의미에서 목불인견이었더니라.
그리 길진 않았으되 필리핀의 밤과 낮을, 특히 사방에서 총소리가 울리던 밤을 베르자야호텔에서 같이 보냈으며 야외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서로 담소하던 지인(知人)들과 헤어져서 혼자 남게되는 현미의 소리없는 눈물과 그 울음에 애써서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화답하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만 판화처럼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으며 오히려 걱정했던 것보다 더욱 막히지 않은 공항로를 이용하여 택시는 겨우 25분만에 질주를 마치고 우리들이 귀국수속을 아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던 것이다.
이젠 숨기고만 싶었고 내 눈에서 눈물이 울컥나오던 내 새끼의 필리핀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아, 글쎄 말이지.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드러난 일이라니까 그러시네.
공항에 오다가 보니 가을이가 여기 있을 적에 머물렀다던 곳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러니까 말이 하기 좋아서 마닐라일 뿐, 메트로 마닐라의 한쪽 귀퉁이쪽에 있는 빈민가(貧民街)를 지나치게끔 코스가 되어 있더라구.
갑자기 가을이가 옆자리의 엄마를 부르더니 그러더란 말이여.
"엄마, 나 여기서 살면서 많이 울었다?.
밥 먹으면서 혼자 울 때가 제일 슬펐었다구.
반찬이 입에 맞지도 않고 돈은 어떻게던지 아껴야 할것만 같았어.
여기에서 돈을 아껴야 정작 내 언어연수의 목적지인 캐나다에 가서 고생을 덜 할것 같다 싶으니까 매번 끼니를 반찬이라곤 달랑 가지 볶은 것 하나 놓고 밥을 먹었는데 처음엔 그냥 먹을만 했었어.
근데 어떤 날 아침인가 갑자기 부탄가스가 가지를 볶던 도중 떨어졌는데 그날이 휴일이라 가게들도 안열었고 옆방 애들은 죄다 아침부터 어디론가 놀러 나가버렸지, 사방이 더욱 적막해보이고 부탄가스 한통을 구할 곳조차 없는 거야.
아침밥을 먹긴 해야겠는데 설익은 가지나물 한가지와 밥을 먹으면서 너무 슬퍼지길래 혼자서 막 울어버렸어." .
그 때 만약 무심결에라도 내가 뒤를 돌아봤다면 뭔가 큰 사단이 날것만 같았어.
내가 소리 안나게 철철 눈물을 흘리면서 앞좌석에서 혼자 질질 울고 있었거든?
불쌍한 내 새끼야.
니가 설익은 가지나물 하나 달랑놓고 울면서 밥먹고 있었을 때 나는 아마 기름진 안주를 놓고 술을 먹었는지도 몰라.
이 애비는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란다.
정말로 미안하구나 얘야.
이곳 생활에 고생이 너무 많았었구나.
이런 기억들을 하나하나 주워담거나 반추하기 위해서라도 우린 여행을 다녀야 하는 거란다.
그게 바로 우리의 인생을 다른 걱정거리에서 해방시켜주거나 진짜 어려운 근심덩어리를 만났을 때 해결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내 사랑하는 큰 딸아.(제9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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