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ang-hoon Kim
기술의 발전은 늘 그렇듯 세상을 바꿔놓는다. 바뀐 세상에선 평범한 이웃이 비범한 영웅이 되곤 한다. 젊은 귀농인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판로를 개쳑하고, 인터넷으로 자신만의 갤러리를 연 청년도 나온다. ‘빅 스몰’의 저자 김상훈이 자신만의 플랫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에디터 주.
(1회) 나는 혼자서 세상을 바꿨다
올해 설에는 식구들과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 탓에 매년 설마다 들르던 처가에는 불가피하게 인사를 못 드리게 됐다. 고민하던 중에 내 마음이라도 읽은 듯 스마트폰의 벨이 울렸다. 문자메시지였다. “구례한울농장이 설맞이 단감 할인을 하고 있습니다.”
한울농장지기인 한경민은 젊은 농부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단감과 매실을 기른다. 처음부터 농부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냈고 흙 대신 흙을 재료로 삼은 실리콘으로 조립한 컴퓨터를 전공하도록 시켰다. 그리곤 당연히 아들이 대기업에 입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농사를 짓고 싶다며 고향으로 내려왔다. 나이 서른에 귀농한 아들을 본 아버지는 펄펄 뛰었다. 말이 되느냐고. 아들에겐 말이 되는 일이었다. 아들은 흙이 좋았으니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한경민은 농사를 짓는다. 다만 조금 다른 방법으로 짓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인터넷에 올린다. 끈질기게 남들과 다른 농법을 고집하는 그의 과일은 이제 고정 팬도 갖게 됐다. 중간도매상이 밭째로 송두리째 과일을 사들이던 시절엔 불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에 직접 소비자를 만난다. 시장에 가지 않아도 농장에서 잠깐 휴대전화 전파를 잡으면 그곳이 곧 그만의 전용 시장이 된다.
하지만 사실 그들도 그 나라에선 우리와 비슷한 보통 사람이었다. 다만 좀 더 끈기있게 포기하지 않고 버텼고, 좀 더 용기있게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했을 뿐. 한국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당연히 이곳에도 많다. 수천억 원의 재산은 아직 만들지 못했을지라도, 의미있는 걸음은 남보다 앞서서 세상에 내딛는 우리 주위의 조금 다른 보통 이웃 말이다.
그리고 그 보통 이웃이야말로 현대의 영웅이다. 앞으로 소개할 사람들 가운데에는 빵 만드는 법을 배우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젊은이가 있다. 전문대를 나왔고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지 못해서 화가들의 리그에 끼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시장을 찾은 작가다. 낮에는 대기업 직원이지만 밤에는 종교적 열정으로 소프트웨어 커뮤니티를 만들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인생도 있다.
한국의 공개 소프트웨어 붐은 이런 사람들이 일으켰다. 국문학을 전공하다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청년은 어떨까. 그는 지금 컴퓨터라면 무슨 괴물 기계인 듯 두려워 하는 비전공자들에게 영어의 ABC를 가르치듯 프로그래밍을 무료로 가르친다. 기술이 두려웠던 사람들이 이렇게 쉬운 길을 깨닫는다.
이들의 성공은 수천억 원의 재산은 아닐지 몰라도 그보다 더 큰 성공이라 할 법하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고, 지금도 전진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평범한 우리 주위의 이웃들이 이제는 보편화된 인터넷과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기술을 이용해 비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영감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누구나 스스로 기업가다. 이는 전통적인 기업가와는 다른 의미다. 이들에겐 생산수단도, 대규모 자본도, 거대한 유통망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모든 건 평균화된 기술과 서비스가 하나둘 대신해 준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손을 내밀면 닿는 곳에 있는 이런 기술에 대한 작은 이해와 이를 활용하겠다는 작은 용기가 전부였다.
기술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소개할 이들의 작지만 커다란 성공담이 수많은 또다른 성공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