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이해할 수가 없다

도보사랑 2014. 3. 14. 11:27

이해할 수가 없다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지지난 주 일요일에 약수터 가는 길에 인도 한 가운데를 파헤친 것을 보았다. 자전거 길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인도가 꽤나 넓어 가운데 자전거 길이 들어갈 만하다. 십년 전인가 한 가운데를 자전거 길이라면서 아스콘을 씌웠다. 1,2년이 지나 아스콘이 벗겨지자 그 위에 아스콘을 두껍게 씌우는 공사를 다시 했다. 그걸로 끝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얼마 뒤 다시 아스콘을 걷어내고 길바닥을 파더니 양쪽에 화강석을 대고 그 속에 콘크리트를 퍼부었다. 콘크리트가 굳자 그 위에 또 아스콘을 씌웠다. 지지난 주에 본 곳은 미처 화강석을 대지 못한 곳이라, 다시 뜯어내고 화강석을 댄 공사를 벌인 것이었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들여 자전거 길을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연락부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구청에서는 거치대를 만들고 약간 촌스러운 녹색 자전거를 곳곳에 세워 놓고 타라고 권유하지만, 처음에만 반짝 했을 뿐, 그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본 지 오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한 청소년들은 학교에 갔고, 어른들은 대개 일터로 갔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들은 자전거를 별로 타지 않는다. 당연히 생각나는 것은 비용이다. 주민이 12만 정도 되는 곳이니 꽤나 넓은 지역이다. 여러 차례 자전거 길을 만드는 공사를 벌였고, 자전거와 거치대까지 마련했으니, 막대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소용없는 공사들, 풍요로운 세상, 목숨 끊는 사람들

  약수터 가는 곳에 주민들이 운동하는 곳이 있다. 그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이 있고, 옹벽 안쪽에는 가공한 돌을 정교하게 깐 넓은 길이 있다. 산과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호젓한 산길이 이렇게 변한 것은 그곳에 길을 넓힌다면서 공사를 한 뒤다. 여름에 비가 오자 공사한 곳에 토사가 무너져 다시 공사를 했고, 어느 해 폭우가 쏟아진 뒤에는 완전히 무너져 오랫동안 길을 막았다. 그러던 것을 큰돈을 들여 옹벽을 쌓고 아주 대로를 낸 것이다. 여기도 숱한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 호젓한 산길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면 막대한 돈을 들여 자연을 훼손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내가 사는 동네만의 일이 아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본 경인운하도 그렇다. 4대강 사업도 같은 것이다. 아무 소용도 없는 토목사업에 세금을 쏟아 부으며 자연을 파괴한 것일 뿐이다. 이런 일이 아마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별무소용한 곳에 막대한 돈을 뿌리니, 정말 풍요로운 세상이다. 하지만 이 풍요로운 세상에 가난에 몰려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지난 달 말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세 모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복지의 사각지대니, 대통령의 지시니 뭐니 하고 떠들었지만 아마도 그것은 순간의 호들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잊고 말 것이다. 워낙 기막힌 사건이 많은 나라니까 말이다.

복지는 배려하는 마음과 공감 능력에서 나오는데

  복지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 국가적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과 공감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경쟁과 돈벌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길 뿐이다. 그들이 이미 ‘승자’이므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안락하고 호사스럽다. 이 사회의 풍요는 그들의 것이지, 대다수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경쟁에서 배제된 절대 다수 사람들의 일상적 고통을 알 리가 없다. 특히 세습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사람들은 이른바 ‘서민’들의 고통은 저 딴 세상의 이야기일 터이다. 그들 대부분에게 배려와 공감 능력이 있을 수가 없다.

  별무소용의 공사에 천문학적 돈을 써대면서도 한쪽에서는 가난에 몰린 국민이 죽어가도록 방치하는 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정치는, 천하의 가장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사람(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 늙어서 남편 없는 과부, 늙어서 자식 없는 독거노인, 부모 없는 고아)을 먼저 배려했다고 하였다. 우리의 정치는 어떤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 별별 핑계를 대어 막으면서 왜 무소용의 토목사업은 그렇게도 좋아하시는가. 높으신 나리들은 스스로 이해가 되시는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