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에 남한산성 도보(2018.11. 3, 토)
그해겨울, 갈수없는길과 가야하는길은 포개져있었다.
죽어서 살것인가,
살아서 죽을것인가.
임금은 삼전도에서 항복했고,
받아들일수 없는것을 받아들였다.
조선은 청의 신하가 되었고,
주권은 능욕당했다.
치욕은 크고 깊었다.
견딜수 없는것을 견디어야 하는것이 삶의 길이라면,
견딜수 없는것은 없는것인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작가가 못다한 말이다. 오늘 고교 학오름 동기의 번개 산행에 남한산성길을 제대로 걸었다. 산성둘레길은 약 8.7Km인데 서문~남문~동문~북문에 이르는 전 구간을 걷고 북문장터에서 식사후 버스를 타지않고 산성역에 이르는 산길을 또 걸어 전체 약 15Km 산행을 하였다.
조선역사 치욕의 현장이기에 친구들은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라를 걱정하는 말들을 쏟아내었다. '가짜뉴스로 정권을 찬탈한 세력이 가짜뉴스를 통제하려한다. 이 나라엔 진정한 장군들이 없고 몸조심하는 공무원같은 군조직에 안보를 맡기니 심히 걱정된다...등등이다' 길을 걸으며 자연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생명력이 넘치는것 같다. 중간중간 우리가 살아온 길을 회상하며 역사속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하는 대화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수가 없다. 산성이 축조된 역사적 배경과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하고 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와 홍타이지에게 삼전도에서 치런 삼배구구도의 치욕사까지 겹쳐지는 우리의 대화는 약 5시간의 산행길을 살아있는 역사의 무대로 너무나 빠르게 안내했다.
걸으면서 산성의 지휘소인 수어장대, 영조가 치욕의 역사를 잊지말자며 세웠던 무망루, 낮은 구릉지역에서 3면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막기위해 축성한 옹성(치), 125개에 이르는 군포(초소, 지금은 다 없어지고 1개만 남아있다), 성벽의 총안구등 남한산성의 방어시설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용골대가 홍타이지가 오기전까지 공성을위해 포진지를 설치한 산의 위치가 어디였는지도 궁금했다.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상상할수 밖에... 인조가 머물렀던 행궁은 북문에서 내려와 꽤넓은 장터공간 지역 산쪽에 있었다. 인조는 김상헌과 최명길 사이에서 길고 깊었던 그해 겨울을 어떤 심정으로 보냈는지, 성문을 나와 굴복의 현장인 삼전도로 마차를 이끌었을때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그렇게 멀지않은 1630년대 조선의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상상해본 오늘의 산행을 주선한 친구가 고맙다. 어제 친구는 단톡방에서 '남한산성 한바뀌 하실분, 몸만오시면 빈대떡에 막걸리 딱 2잔씩'이라며 초대를 했다. 갑작스런 번개산행이었지만 나에겐 오래전부터 가고싶었던 산성길이었기에 그 초대가 너무나 고마웠다. 마신 막걸리는 2잔이 아니었고, 안주도 두부전, 빈대떡, 파전에 국수까지 넘치고 넘쳤다. 귀가길이 염려되어 시원한 포카리 음료수까지 챙겨주는 친구의 마음씀이 참 고맙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내년 해외산행을 논의한 뜻깊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초대해준 친구 명열아, 고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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