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납세, 金堉을 생각해본다..(2019. 1. 18, 금)
국가재정건전성...정부가 납세의 의무를 가진 국민들로부터 합리적으로 세금을 걷어들여 미래를 예측하며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나라 살림살이를 잘하는것은 國治의 기본이다. 최근 문정부가 이전 정부가 확보한 넉넉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나라빚(국채) 발행을 시도하고, 각종 세금을 과도하게 납부토록 함으로써 국민들은 정부의 국가재정 운용에 불신과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백성들의 삶이 말할수없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백성을 구제하고 건전한 나라재정을 확보하고자 노력한 김육의 흔적, 대동법시행기념비(비석엔 朝鮮國 領議政 金公堉 大同均役 萬世不忘碑라고 적혀있다)가 있는 素砂마을에 갔다. 주위 낮은 구릉지에 배밭이 있는 평택시 소사마을은 고구려땐 砂伏忽, 신라 경덕왕때는 赤城으로 불리운 곳으로써 평평하고 넓은 들이 있고, 마을어귀로부터 바닷가인 浦斤(포승지역으로 추정)까지 백리길이 되며 조선시대엔 驛站상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효종 대의 명재상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은 시련속에 성장한 인물이다. 김육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13살 때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강원도와 평안도를 오가며 피난 생활을 했고, 15살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흉년에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아버지의 유해를 임시로 안장한 후 어머니와 함께 피신을 다녔고 19세에는 장손으로서 할머니의 상주가 되었으며 21세에는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집은 가난하여 부모의 묘를 합장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흙을 져서 날라야 했다. 1605년 소과에 급제해 성균관 유생이 된 김육은 당시 정권 실세였던 대북파의 영수 정인홍(鄭仁弘)에 찍혀서 대과 응시자격을 박탈당함으로써 관직 생활에 대한 기대를 접고 온 가족을 이끌고 경기도 가평 잠곡으로 들어가 직접 농사를 짓고 숯을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자연속 잠곡에서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고 불행이 계속되었다. 태어난 아들이 7개월 만에 죽었고 딸 역시 2년 만에 눈을 감는 등 참담한 시간이 이어졌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절망이 짙게 더해진 상황에서 보통 사람은 운명에 체념하고 자기를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멈춘다. 하지만 김육은 달랐다.
김육은 12살 때 소학(小學)을 읽다가 “보잘것없는 관직에 있는 선비라도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는데 뜻을 둔다면 반드시 다른 이들을 구제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는 구절에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그는 잠곡에서 주경야독, 46세에 장원급제하였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하면서도 필사적으로 학문을 닦았다. 피폐한 백성들 곁에서 그들과 애환을 함께 했고 어떻게 하면 백성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이름 없는 촌부로 늙어 죽을지라도 자신이 꿈꾸는 바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동법은 이러한 그의 삶에서 탄생되었다. 대동법은 지방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내던것을 쌀, 베, 혹은 돈으로 통일하여 바치게한 납세제도이다. 조선시대의 과세제도는 토지에서 조세(組稅), 개인에게는 역(役), 집집마다는 공물(貢物)을 징수하여 국가경비를 조달하는것이 원칙이었다. 이중 공물(특산물)은 나라수입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는데 공물의 생산, 조달과 납부 과정의 어려움등으로 공납청부업자가 납부를 대신하고 후에 해당 고을에 내려가 댓가를 징수하는 방납(防納)이 유행하였다. 이과정에서 방납인들이 폭리를 취하는 바람에 백성들의 부담은 가중되었고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떠돌게되고, 조정의 재정수입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대동법은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 재정의 안정성을 기하고자 시행된 것으로써 김육자신의 인생역정을 굳은 의지로 극복하고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직접 체험한 결과의 산물인것이다.
조선의 역사엔 세종, 김육처럼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고 사랑한 사람,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땐 정치권을 보지않고 오로지 적만 보고 싸우면서 목숨을 바친 이순신, 곽재우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이러한 인물들이 나왔음 좋겠다.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어 찬바람 부는 거리를 헤매고있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떻게하면 안정된 고용과 투자를 유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기업인들 사이에서 국가재정 운영의 책임을 지고있는 정부는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피땀어린 돈을 엉뚱한 곳에 헛되게 써지말고, 국가미래의 방향키를 잘잡아 나라를 안정되고 부강하게 이끌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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