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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에대해 생각해본다..(2019. 1. 5, 토)

도보사랑 2019. 1. 5. 22:49

건국에대해 생각해본다..(2019.1. 5, 토)

 

지금의 중국대륙 크기는 마지막 왕조 淸때 만들어졌다. 희토류를 비롯한 다양하고 엄청난 지하자원을 가진 중국영토의 건설자는 만주족(여진족)이었다. 우리에겐 후금을 건국한 누루하치, 그의 8번째 아들 청태종(홍타이지)이 귀에 익숙하다. 무역상인으로 출발하여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여진족을 한민족으로 통합한 누루하치,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에 태어나 용맹과 지략으로 漢族을 정복한 홍타이지... 특히, 홍타이지는 삼전도에서 조선 인조를 치욕의 三拜九叩頭로 굴복시킨 인물이다.

 

청의 민족 여진족은 금나라가 1234년 몽골에 망한이후 나라 없는 설움을 톡톡히 맛보았다. 원과 명의 지배하에서 소규모 부락단위로 갈래갈래 찢어져 살면서 수백년간 조선과 명의 변경을 침범, 약탈하거나 원조를 받는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여진족은 17세기가 열리자마자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만주 땅을 통일한 다음 몽골과 조선을 굴복시키고 중원을 석권해 대륙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는 40년이라는 기간에 기적처럼 이뤄낸 성과이다. 도대체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만주족은 "족속 전체가 대륙의 지배층이 되겠다"는 웅대한 생각으로 국가전략을 수립했고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로 이를 추진했다.

 

건국과관련 우리의 현대사는 어떠한가. 1910년 여진족의 금나라처럼 우리도 나라를 잃었다. 1945년 연합군의 승리와 우리의 독립투쟁으로 나라는 되찾았지만 진정한 건국은 아직 미완성의 느낌이다. 한민족간 전쟁을 치루고 좌우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어온 오늘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더 든다. 우리에게도 지도자는 있었지만 진정한 통합의 정신을 가진 지도자는 없었다. 갈래갈래 흩어져 궁핍하게 살았던 여진족을 통합하여 후금을 세웠던 누루하치, 그의 뜻을 이어 큰세계로 나아간 홍타이지같은 인물이 없었다.

 

최근 건국시점 논란만 보아도 그렇다. 나라가 언제 세워졌느냐는 문제를 두고 문재인 정부는 1919년 임정수립때를 주장해왔다. 좌파는 우남과 백범의 대립을 이유로 1948년의 의미를 부정한다. 문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경축사에서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게 역사의 진실일까.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1919년 건국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임정은 나라의 3요소(영토, 국민, 주권)중 영토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김구 역시 1919년 건국론의 주창자가 아니였음을 김구의 직접적 발언등 여러 기록에서 밝히고있다. 오히려 이승만이 1948년 정부수립시 1919년의 법통정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점에서

"48년 건국론"이 이승만 추종 친일파의 음모라는 주장은 무너진다. 시각을 돌려 해방정국하 건준(조선건국준비위)을 만든 여운형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운형은 "임정은 스스로 자멸한 단체이며, 해외의 안전지대에 있었다. 임정보다 고생을 많이한 유수한 독립단체가 많았다"며 사실과 다른 모욕에 가까운 발언을 한적이있다.

 

임정정신의 핵심은 통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과 김구, 두 지도자는 모두 건국의 아버지다. 두사람의 오랜 동행이 한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다행히 이틀전 청와대는 올해를 건국 100주년이 아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전 문대통령의 역사관을 번복한것이다. 최근 경제악화 등으로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건국논쟁을 둘러싼 정치적인 소모전이 부담스러워 일시 후퇴한 발표가 아니고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새출발이었음 좋겠다.

 

비록 역사는 짧았지만 장대한 꿈을 꾸어 민족을 통합, 진정한 나라를 세워 세계사의 무대로 나아간 淸을 통해 우리의 건국현대사를 되돌아보고, 한국가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어떠한 정신을 가져야하는지 생각을 모아보았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