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A38 역사탐방포럼, 용산기지 탐방(2019.1. 25, 금)
그렇게 춥지않고 미세먼지가 사라진 쾌청한 날씨에 KMA38 역사탐방포럼은 많은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용산기지를 방문하였습니다.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신 윤주경박사님도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고맙네요.
오늘 용산기지를 탐방한것은 유엔사와 주한미군사령부가 작년에 평택 캠프험프리 지역으로 이동한 가운데 남은 한미연합사령부가 국방부 청사지역으로 이동하기전 용산기지가 지닌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잘아시다시피 한강을 건너 남산아래 둔지산 자락(사우스포스트 엠버시클럽, 커미서리부근 지역)을 끼고 넓은 지역에 자리잡은 용산기지는 군사적인 의미외에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의 흔적이 있는곳입니다.
용산기지내엔 약 350년 이상된 석상(문인석, 무인석)들이 여러곳에 산재되어 있고 이중 일부는 지금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죽은자를 지키기위해 세워지는 석상으로 보아 이 지역은 오랜 과거부터 낮은 구릉지아래 한강을 바라보며 대규모의 묘지를 조성했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연합사 본청에서 캠프코이너쪽으로 넘어가는 남산 남쪽 마루언덕엔 남방土龍壇(남단)이 몇개 남은 석상의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공간으로 보아 일대에 제단과 건물이 세워졌을거라 추정되지만 원형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남단은 조선태조때 만들어진 이후 조선말기까지 종묘와 사직제사 다음으로 중요한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왕이 기우제 등을 지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당시 조선은 한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동서남북중앙 다섯 토룡 제단에서 각각 한날 한시에 기우제(오방토룡기우제)를 지냈습니다. 용산기지내에 조선 왕이 직접 와서 기우제를 지낸 남단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 역사성을 보존하는 노력이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됩니다.
1905년 이전까진 이태원을 포함한 둔지산 자락 용산은 조선의 땅이었지만 국운이 쇠약해진 구한말 강점의 시대 일본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군사기지화 시켰습니다. 특히 1915년 조선에 2개사단(19, 20사단) 상주배치를 결정하면서 1922년까지 기지를 확장시켰고 이곳 용산엔 20사단을 주둔시켰습니다. 20사단 사령부 HQ는 지금 사우스포스트 하텔하우스 지역에 위치했고 하텔하우스 건물이 들어선곳은 당시 20사단장의 관사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하텔하우스 초입엔 석조초소가 남아있습니다. 예하 78연대는 지금의 연합사와 주한미군사령부 건물지역, 79연대는 전쟁기념관 인접 구육본지역, 포병연대는 캠프코이너, 기마연대는 반포 지역에 있었습니다. 78연대의 한막사였던 주한미군사령부 건물엔 평택이전으로 부대명칭 글씨가 없어지고 미8군 마크(과거엔 일본 육군의 붉은 별마크가 동일 위치에 있었음)만 남아있군요. 사우스포스트 한미연합사 연습처지역은 일본 주둔군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이후 미군이 주둔할 당시엔 미7사단 HQ가 있었고 6.25전쟁전엔 한국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위치하여 이 건물들을 이용했습니다. 지금 연습처 건물은 박정희 대통령이 문관으로 재직당시 정보작전 상황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구한말에서 6.25전쟁까지 이어지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최초 일본의 조선총독 관저가 연습처 구릉좌측 지금의 121미8군병원 건물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주둔군 사령부와 총독관저는 땅속 터널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둔지산 자락엔 지금도 일본군 위수감옥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백범을 암살한 현역신분의 안두희가 한때 수감되었던 장소입니다. 연합사본청뒤 남산쪽에서 한강방향으로 흐르는 만초천지류엔 일본군 78연대 게이트 흔적이 석조물로 남아있고, 인접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고풍스럽게 서있는 JUSMAG-K 건물은 이전 일본군 장교 기숙사로 사용되었다가 한때 병원, 광복후엔 미소공동위원회 구소련대표들이 숙소로 이용한 곳입니다. 캠프코이너 지역은 2024년까지 미대사관이 이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평택 캠프험프리 시대가 열리고 군사기지를 시민의 휴식장소로 변모코자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용산기지가 역사적, 생태적 도시균형을 갖춘 소중한 자산으로 거듭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방문을 환대해준 김병주 연합사 부사령관에게 감사드립니다. 연합사령관이 4개 직위(연합사령관, 유엔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 주한미군선임장교)를 갖고있다는 한미연합사령부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한미동맹의 가치, 미래의 희망을 소신있게 밝혀주어 감사했습니다. 한미가 공산주의가 도발한 전쟁을 함께 치루며 혈맹의 관계를 유지한 이래 1978년 한미연합사가 탄생한 의미를 되새기고, 남북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될때까지 앞으로 한미가 해야할 역할은 연합사 본청앞에 있는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내리신 휘호, "平和守護의 堡壘" 에 잘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탐방을 마치고 드레곤힐에서 식사시 6.25전쟁의 영웅, 미장성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백선엽장군님 내외분을 뵈었습니다. 몸은 비록 노쇠하나 두분의 마음속엔 피로지킨 조국이 굳은 한미동맹속에 영속되기를 희망하고 계실것입니다.
오늘 동기생과 함께한 역사탐방, 배움과 결의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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