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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과 태극기물결(2019. 2. 2, 토)

도보사랑 2019. 2. 3. 18:02

탑골공원과 태극기 물결(2019. 2. 2, 토)

 

"최후의 한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 공약3장의 두번째 결의 내용이다. 100년전 탑골공원에서 밝힌 우리의 독립의지... 오늘은 탑골공원에서 멀지않은 광화문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군요. 역사의 흐름, 물줄기는 당대의 국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

 

탑골공원은 조선 圓覺寺가 있었던 장소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 11) 조계종의 본산이었던 흥복사 터에 땅을 더넓혀 원각사를 짓고, 2년뒤 1467년에 13층 석탑(지금은 10층 석탑으로 남아있다)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했다. 세조가 원각사를 지은 경위를 담은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 2)에 세워졌다. 비석앞면 글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김수온이, 뒤면글은 서거정이 썻다.

 

원각사터에 남아있는 12m 높이의 십층석탑엔 아름다운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탑아래에는 용과 연꽃 무늬,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이 새겨져있다.

 

1902년(광무 6) 탑골공원안에 지은 팔각형 정자인 팔각정에서 100년전 동학의 3대교조 손병희는 33인 민족대표들의 이름으로 3.1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당시 33인의 민족대표들이 그 장소에 전부 참석한것은 아니라고 한다. 민족의 거사, 거국적 항거에 대표자들이 참석하지 않았다는것은 역사의 오점이다.

 

조선 세조의 불심(왕조권력을 위해 형제와 조카의 피를 요구한것에대한 속죄의 마음이겠지요), 3.1 독립운동에 이어, 매주 민족대표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나라를 걱정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종로, 광화문의 역사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