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과 정동길(2019. 3. 29, 금)
덕수궁은 임진왜란과 구한말, 조선이 가장 어려웠을때 으뜸 궁궐로서 국가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선조, 광해군, 고종, 순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조는 임진란시 경복궁을 비롯한 주요 궁궐들이 불타 없어지자 월산대군 후손들이 살던 이곳 넓은 고택들을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다 아들 광해가 궁궐의 규모로 증축하였다. 어전아래 재상들의 품계가 적힌 석조들이 늘어선 가운데 나라행사를 거행하던 중화전, 선조가 거처하다 승화한 이층 목조의 석어당,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한 즉조당, 고종의 흔적이 담긴 건축물들(편전인 준명당, 침전으로 사용하다 1919년에 승화한 함녕전, 외교사절을 맞이한 덕흥전 등)이 있다. 고종의 업무공간으로 영국인 건축가 하딩이 설계한 현대식 건물인 석조전을 바라보면 급변하던 국제정세속에서 개항과 쇄국, 흥과 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분투하던 고종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돌담길을 따라 미국대사관저, 제일교회, 구러시아공사관, 캐나다대사관, 이화여고등이 자리잡고 있는 정동길을 걸으면 역사의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엔 조선 禮學의 대가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의 생가터도 있다. 성리학에 기반한 조선의 禮, 이후 청의 고증학과 서구문물에 영향받아 실리를 추구하고자했던 실학파의 대두... 조선역사에 있어서 반전이 필요했던 시기였음을 생각 해보게된다
고금을 막론하고 한국가의 흥망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으며 미래를 통찰하고, 제대로된 인물을 발탁하는 지도자의 역량 여부에따라 좌우되었다. 역사를 보는 눈도 울분과 보복, 분열보단 溫故知新의 정신으로 반성과 통합, 과거 집착보다 미래로 나아감을 중시하는 것이 바람직 할것이다. 모든 문제와 잘못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기때문이다.
따스한 햇빛이 내리는 돌담길과 한 외국인의 라이브 쇼 음률이 참 조화롭다. 덕수궁과 정동길이 수도서울의 아픔이 아닌 많은 국내외 사람들이 찾는 희망의 공간으로 영원히 이어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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