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세상에 뱉어내고 있습니까?

도보사랑 2019. 7. 30. 15:43

저와 문학적 소양을 함께 나누면서 삶을 사유하고 성찰하는 멋진 장군님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드리겠습니다.

 

매일 페북으로 전달되는 인산편지, 제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읽어보는 글입니다. 이런 군인들도 있구나하고 감탄하면서 읽어보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저와 글로써 인연을 맺은이후 지금 전 김장군이 소속된 육군군사연구소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戰史와 관련된 학술, 편찬 업무, 인문학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소통과 공감의 시대에 상호 관계를 맺는것은 참 중요합니다.

 

오늘 공감할수 있는 좋은 김장군의 글이 올라왔기에 독수리형제, 속초팀과 공유하고 싶어 전달해봅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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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인산편지: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세상에 뱉어내고 있습니까?]

 

닭갈비 / 인산 김인수

 

뜨거운 불판 위에서 익혀져서야

내내 품고 있던 기름을 뱉어낸다

 

섞여 있던 채소까지 어우러져서야

비로소 먹음직스런 음식이 된다

 

여름 내 백숙으로 탕으로 우리에게 와서

땀 흘린 몸 보하며 보탬이 되더니

오늘은 불에 달구어져 입맛을 돋구는구나

 

이 저녁 닭갈비는

가진 것 내어 주는 나눔이다

내 식구들을 이어주는 사랑이다

 

☆ 저는 지금 있는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건 이곳에서 세 번째 근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2년 전입니다. 최전방 철원에서 대대장을 마치고 인사담당 부서의 실무장교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고 있던 부서는 육군본부에서도 일이 가장 많고, 야근은 물론 휴일까지 출근하여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부서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장교들은 으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 세 끼를 지하 간부식당에서 사 먹으며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3년을 꼬박 근무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좋아하는 책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고, 글을 쓰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죠! 다른 형식의 글을 썼습니다. 보고서, 회의록 같은 것 말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자주 글을 썼던 터라 당시 제가 모시던 과장님으로부터 보고서를 잘 쓴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고, 과장님의 보직이 끝나서 다른 곳으로 가실 때에는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고서를 잘 쓰는 후배장교였다고 극찬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이런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헌데 그러면 뭘해 아무 소용없잖아 ..." 정말 오래 전에 유행했던 비비라는 가수의 '하늘땅 별땅'이라는 노래입니다. 혹시 우리 독자님들은 이 노래를 알고 계십니까?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진급이 안 되어 용인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제가 보고서를 손에서 내려놓고 글다운 글을 쓴 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계룡대를 떠나며'라는 제목의 말 그대로 고별사였습니다.

 

저는 이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고, 육군본부 전체의 수많은 선후배들께 메일로 보냈습니다. 반응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뜨거운 격려와 성원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제가 다시 읽어봐도 정말 명문일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글을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같이 근무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동병상련으로 인했을 겁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밤을 지새며 육군을 위해 헌신했던 그 축적의 시간들을 함께 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제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같은 장교가 진급이 안 되면 누가 진급을 하느냐고 과분한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글을 써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보냈던 글과 제게 답장을 보내주셨던 분들의 글을 일일이 다 출력하여 하나의 바인더로 만들어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냐구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달렸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진급 낙천이라는 좌절의 상황에서도 저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나, 절망스런 현실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귀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육군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헌신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와 훌륭하고 멋진 상급자들, 동료들과 함께 근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 저의 작은 노력으로 인해 육군의 선진병영문화가 정착되고, 인명사고가 대폭 줄어들어들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가 전부였습니다.

 

"남자가 태어나서 나라의 쓰임을 받으면 목숨을 바칠 것이요, 쓰임을 받지 못하면 물러나 밭을 간들 어떠하리요." 라는 이순신 장군님의 심정으로 계룡대를 떠나는 진솔한 제 마음을 담아 전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호응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접 과에 있었던 어느 한 부사관은 (당시는 상사님이었고, 지금은 원사님입니다.) 제게 꼭 살아서 다시 돌아오라는 말도 남길 정도였습니다. 훗날 진급하여 연대장을 마치고 다시 육군본부 과장으로 왔을 때 저는 그 원사님과 반갑게 재회하면서 살아돌아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육본을 떠난 후 용인을 거쳐 육군훈련소 김유신연대장으로 부임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기회가 좋았던 건 매주 연대장이 부모님들께 보내는 편지를 써서 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장교가 지금까지 올렸던 샘플을 가져왔습니다. 한 장으로 된 다분히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편지였습니다. 짤막한 인사와 한 주간의 훈련 결과,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훈련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자칫 제 앞에 근무했던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여기까지만 말씀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매 주 금요일 오후만 되면 연대장이 직접 편지를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훗날 그 장교는 제게 한 두번 하시다가 그만두시겠지 라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날 때까지 제가 직접 썼습니다. 그것도한 장이 아니라 무려 일곱, 여덟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제목을 김유신연대장이 부모님들께 드리는 연애편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우리 훈련병 아들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오롯이 담았습니다. 매일 매일 훈련장을 찾아 훈련병 아들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과 나누었던 시간들을 담았습니다. 정말이지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이면 쓸 수 없는 생생한 내용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니 이 편지에 대한 반응은 또 어땠을까요? 또 자랑같지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 편지에는 부모님들이 답장을 달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수많은 부모님들이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제 편지를 읽을 생각에 한 주를 기다린다는 부모님, 편지를 출력하여 식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매일 읽으신다는 부모님, 심지어는 아들보다 연대장이 더 보고싶어서 수료식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신다는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다른 연대에 있는 훈련병 아들들의 부모님들께도 소문이 나서 제게 답장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육군본부, 국방부로 편지를 보내서 저를 칭찬하고, 저와 함께 근무하는 김유신연대의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들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편지들도 다 출력하여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편지들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낸다면 군에 들어올 우리 아들들, 부모님들께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아들들의 군 생활을 받아들이시지 않을까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대장 시절에 부모님들께 보냈던 편지가 계기가 되어 제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제 편지를 읽으신 스승님께서 저를 추천하셨고, 2014년 화백문학 수필부문 신인작가상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인산편지 가족 여러분!

 

오늘은 유독 제 자랑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러나 추호도 과장이 없는 사실이기에 그냥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인산편지 독자님들 중에는 그 당시 훈련병, 분대장, 간부들도 많고 부모님들도 계시기에 보탤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한다고, 잘난 체 한다고 혼을 내시면 그것 또한 달게 받겠습니다.

 

얼마 전에 함께 근무했던 분께 제 졸저 '지금, 당신이 행복해야 할 이유'와 몇 권의 책을 보내드렸더니 고맙다고 닭갈비를 보내오셨습니다. 전역 후에 춘천에서 살고 계신데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닭갈비를 맛보라고 귀한 선물을 주신 겁니다.

 

그 닭갈비를 받으니 몇 년 전에 쓴 제 졸시 '닭갈비'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산편지 독자님들께 소개합니다.

 

닭갈비가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 입에 들어올 수 있는 이유는 닭갈비가 품고 있는 것들을 뱉어내기 때문일 겁니다. 육즙이라고 하나요? 기름도 포함되겠지요? 그런 것들을 뱉어내어 주위 것들과 버무려지니까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것만 잔뜩 움켜쥐고 살면서 조금도 뱉어내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뱉어내지 않으면 닭갈비도 지글지글 맛있게 익기는 커녕 금방 퍽퍽해지고 불에 타버리고 말 겁니다.

 

뱉어내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뱉어내는 시간들로 채워가길 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몸과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뱉어 내어 자연, 세상, 사람들과 함께 버무려지고, 어우러지도록 하는 삶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음을 담아 오늘 인산이 당신께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세상에 뱉어내고 있습니까?"

 

선함을 뱉어내십시오. 섬김을 뱉어내십시오. 겸손을 뱉어내십시오. 양보를 뱉어내십시오. 은혜를 뱉어내십시오. 사랑을 뱉어내십시오. 당신의 품속에 깊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마시고 마음껏 마음껏 뱉어내야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조금 길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벌금, 행금, 소금, 신금, 기금, 즐금, 꿀금입니다. 우리 인산편지 독자님들 모두 모두 주말 행복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인산편지는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인산 김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