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최초의 생각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그 첫 번째 글이 ‘KAIST 강의실에서 마주한 충격적 지식 빈곤’이다. 나는 국부(國富)의 비밀이 “그 나라 영토의 크기나 인구의 수가 아니라, 그 나라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 첫 발걸음이다.
2008년 KAIST MBA 첫 수업 이병태 교수님의 강의는 충격이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강의 내용이 아니라 강의 자료 맨 끝에 있는 참고문헌이었다. 참고문헌에 어떻게 내가 읽어본 논문이나 책이 한 권도 없는지? 나도 이 분야에서 일한 지가 어언 10년이 훌쩍 넘었고, 읽을 만큼 읽었고 경험할 만큼 했다고 자부하였는데,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의 충격으로 지금까지 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충격이 무엇일까?
우선, 사실(fact)에 대한 얕은 지식이다. 지식에 폭과 깊이가 없었다. 지식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식의 확장성 없이 한 우물만 깊숙이 파고들어 하늘만 쳐다보는 청맹과니가 된 꼴이었다. 방향성을 잃은 것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더 답답한 사람이 된 것이다.
북학파 실학자들이 북경에 들어가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 유리창이다. 유리창에는 천하에서 모든 책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 충격적 자아비판이 없었다면 그들은 새로운 학문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나도 그랬다. ‘이병태’란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방대한 지식에 놀란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두 번째는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다. 한 우물만 판 지식으로는 관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령 모르면 배우면 된다. 검색하고, 찾아보고 물으면 되지만, 관점은 그런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학문,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한 꺼풀을 벗기면 또 한 꺼풀이 나오는 다층적이며, 어느 시점에서 어느 곳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다면적이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니 처음에는 ‘전산’이라 했고, 세월이 지나니 ‘정보화(IT)’라 했고, 이제 다시 ‘디지털’이라 부른다. 왜 그럴까? 사실이 바뀐 것일까? 아니다. 관점이 바뀐 것이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질문이 달라야 하고, 대답이 달라야 한다. 바로 그 사실을 깨닫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마지막은 ‘쑥부쟁이론’이다. 가을 들녘을 온통 장식하고 있는 꽃이 쑥부쟁이다. 쑥부쟁이는 홀로 피지 않는다. 여럿이 모여 핀다. 배움도 그렇다. 어쩌면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思而不學則殆)’라는 가설이 맞다. 좋은 도반(道伴, 함께 도를 닦는 사람)이 있어야 편협된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는 강민구 판사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맨 마지막 단계가 ‘고수’와 만남이라 했듯이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편협한 지식인이 된 것은 홀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디를 가나 책을 들고 다녔다. 등산을 가도 배낭 속에 책이 있었고, 이마트를 가도 책을 들고 갔다. 거기서 노란 형광펜으로 마구마구 동그라미를 그으면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독서 노트에 기록한다. 어느 책 몇 페이지에 무엇무엇이 있다고, 그런 글 뭉치가 3,000여 개가 넘는다. 블로그에 저장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단어를 검색하면 줄줄이 모두 나온다.
#부자 #사회주의 #부사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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